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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각장애인과 버스기사의 맞잡은 손2005-11-04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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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배려하는 사회

2001년 2월 뉴욕 출장길에 캐나다 토론토에 들러 어느 선배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그 선배의 출근길에 따라 나서게 되었는데, 그 선배가 조용하게 말했다.
“저것 봐라.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선배의 말대로 대단히 놀라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버스기사가 정류장에 차를 세우더니, 어느 승객의 손을 잡고 함께 내렸다. 두 사람은 길을 가로질러 갔다. 그 승객이 혼자 안전하게 길을 찾아갈 수 있을 때까지 기사가 안내를 한 것이다. 승객은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시각 장애인이었다.

바쁜 출근 시간에, 버스 기사가 차를 세우고 시각 장애인을 돕는 그 광경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일반 승객들이었다. 장애인 한 사람을 위해 출근길 버스가 몇 분 동안이나 멈춰 서 있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늘 벌어지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을 뺀 그 누구도 별 관심을 갖지 않는 듯했다.

2002년 5월 토론토로 이민을 온 나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6개월 정도 일한 적이 있다. 건물 바깥으로 배달을 나가는 일이 주임무였는데, 배달 분량이 많아 작은 수레를 사용해야 했다. 내 전임자는 나에게 일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장애인이 우선이어서요, 수레가 못 가는 곳이 없어요.”

그의 말은 맞았다. 수레를 밀고 2km 정도를 걸어가도, 어느 고층 건물에 들어가도 턱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었다. 출입문에는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자동문이, 계단에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반드시 설치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사는 아파트에 시각 장애인 한 명과 맹인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점자가 등장했다. 점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사는 21층, 그리고 1층, 주차장이 있는 지하 1, 2층 단추 옆에 붙어 있었다. 수백 가구를 관리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바로 그 한 명의 입주자를 위해 엘리베이터 다섯 개 전체에 점자를 붙였다.

내가 장애인 처우 혹은 복지 문제에 대해 남들보다 좀더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다. 나의 큰아이가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이민을 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시각 장애인에 대한 버스기사의 배려를 보고 나는 이민 결심을 굳혔다. 저 아름다운 광경 하나가 한 사회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판단했다.

장애인에 관한 캐나다 사회의 처우 수준과 그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아는 사실은 이번 9월 7학년(중1)이 된 우리 아이가 어떤 종류의 교육과 대우를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의 이야기는 장애인에 대한 캐나다 사회의 인식을 드러내는 하나의 보기가 될 것이다.

우리 아이의 이름은 유명 가수 이름과 똑같은 성시경이다. 1992년 12월생으로, 세 살 때 청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한국에서 특수 교육 기관을 거쳐 일반 학교에 다니다가 4학년 초에 캐나다로 건너왔다.

2002년 9월 시경이를 일반 공립 초등학교에 보낸 뒤, 담임교사에게 면담을 청했다. 청각 장애가 있으니 배려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담임교사와 면담하러 간 아내는 깜짝 놀랐다. 교장, 교감, 담임교사, 영어 담당 교사, 교육청 담당자, 통역자까지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이다. 아내를 포함해 7명이 시경이의 상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시경이의 수업 태도를 이미 지켜본 교육청 담당자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나와 아내는 시경이에게 알맞은 교육 프로그램을 찾는 데 적어도 몇 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과 달리 캐나다의 행정 처리는 느리기 짝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회의가 열린 지 사흘 뒤 교육청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전한 내용은, 시경이가 다닐 학교가 정해졌다, 다음 주부터 그 학교로 등교하면 된다, 그 학교에는 청각 장애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특수반이 있다, 집에서 학교까지 40분쯤 걸리니 아침에 택시를 보내 주겠다, 택시비는 교육청에서 부담한다, 내일 학교에 가서 담임교사와 시경이 친구들을 미리 만나 보라 등등이었다.

속전속결이었다. 평소에는 속이 터질 정도로 느려도, 장애 어린이 교육과 같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긴급한 문제가 생기면 눈 깜짝할 사이에 해결책을 내놓았다.

시경이가 다닐 새로운 학교 또한 일반 공립 초등학교였다. 학교에는 청각 장애 특수반이 있고, 필요한 경우 일반 어린이반에 보내 통합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장애 어린이들은 다른 어린이들과 친숙해질 기회를 가지게 되고, 다른 어린이들도 장애 어린이들과 섞여 공부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시경이네 반 아이들은 모두 FM 보청기라는 특수 시스템을 사용했다. 기존 보청기에 선을 연결하면 선생님 목에 걸려 있는 고성능 마이크를 통해 소리가 더 크고 정확하게 들리게 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에서는 말로만 들었을 뿐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시경이 담임교사인 하드만 선생 또한 청각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시경이보다 청력이 더 나빠서 구화(口話)와 수화(手話)를 동시에 사용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음은 명확했다. 하드만 선생의 핸디캡을 보완하기 위해 보조 교사 모렌시 선생이 함께 아이들을 가르쳤다. 자원봉사를 나온 특수교육 전공 대학원생들도 눈에 자주 띄었다. 시경이네 반 아이들은 모두 6명이었고, 시경이 동급생은 3명이었다.

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두 차례씩 면담을 가졌다. 학기 초에는 담임교사와 부모가 만나 아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기말에는 교장, 교육청 관계자, 담임교사가 함께 만났다.

이 때문에 이중 삼중의 통역이 진행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드만 선생이 수화로 말하면, 모렌시 선생이 그것을 영어로 옮기고, 그 말을 통역자가 우리 부부에게 한국어로 옮겨주었다. 그 과정은 대단히 진지했다. 교육청에서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비싼 비용을 부담해 가며 한국어 통역자를 매번 불렀다.

시경이의 담임교사는 인공 와우수술을 하고 나면 상태가 놀랄 만큼 좋아질 것이라면서 수술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수술비용은 물론 무료이다. 시경이는 지금 어린이 전용 병원에 열흘에 한번꼴로 3개월째 다니고 있다. 6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각종 검사를 통해, 이 수술이 시경이의 상태를 호전시킬지의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난 뒤 수술을 받게 된다고 한다.

병원에 다녀오면서 시경이에게 새삼 물었다.
“너, 학교생활 재미있니?”
“재미있어요.”
“한국에서는 재미없었니?”
“재미없었어요.”
“여기서는 어떻게 재미있는데?”
“친구들과 놀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시경이는 이곳에서 대화의 통로를 찾은 것이다. 대화의 통로란 장애인을 ‘특수한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간’으로 대접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다.

시경이가 한국보다 이곳이 더 좋다고 이야기하는 까닭은 교육 시설 및 시스템 때문이 아니다. 비록 잘 들리지는 않지만 위축되지 않고 남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하는 사회적인 배려와 분위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교육자들은 사랑과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사회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맞이하고 따뜻하게 배려한다.

그 배려는 ‘장애인의 날’과 같은 날을 따로 정해 기념이나 하는 차원이 아니다. 일상생활 곳곳에 녹아 있는 인간적인 배려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시경이의 학교나 병원에만 다녀오면 늘 기분이 좋다.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출처 : OhmyNews 성우제(ysreporte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