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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당신이 고급인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소?"2005-11-03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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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로 벌어오는 돈보다, 더 중요한 아내의 내조

퇴근 후, 현관문을 열자 왠지 모를 냉기가 코끝에 와 닿았다. 늘 반갑게 나를 반겨주었던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잘 정돈된 신발들, 집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단지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식탁 위에 놓인 편지 한 통이었다. 아내가 쓴 편지였다.

편지에서 아내는 아르바이트를 가기 때문에 저녁을 챙겨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과 막내 녀석을 잘 챙겨 달라는 부탁의 말을 간략하게 적어 놓았을 뿐,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를 않았다. 요즘 들어 아내는 경제적으로 힘든 탓인지 나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보, 혹시 일할 곳이 없어요? 아무 일이라도 좋아요."

처음에는 그 말이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넋두리인 줄만 알았다. 그리고 맞벌이를 하지 않는다고 살림만 하는 아내에게 핀잔이나 구박을 준 적이 없는 나로서는 아내의 그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아내의 자격지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 아파트 주위에는 유난히도 맞벌이를 하는 가정들이 많다. 따라서 아내는 늘 자신의 무능력 때문에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이 처량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의 학원비라도 벌 요량으로 식당일을 자처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말려도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그리고 하루 종일 고생하고 받은 일당 5만원을 손에 쥐고 좋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이후로 아내는 돈벌이가 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덤벼들었다. 그 일자리가 어떻게 누군가로부터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가끔 식당 일이 있으면 식탁 위에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나가곤 하였다. 아마 오늘도 식당 일자리가 생긴 모양이다.

밤 9시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한편으로 불안한 생각이 들어 아파트 복도에 나가 밖을 내다보기도 하였다. 잠시 뒤 누군가의 인기척에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였다. 아내의 어깨는 생각보다 더 축 처져 보였다. 오늘 일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옷에서 나는 고기 비린내 때문에 아내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를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리고 양손은 물집이 생겨 만지면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아내는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애써 번 일당으로 보이는 듯한 봉투를 지갑에서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돈 몇 만 원을 꺼내며 용돈으로 쓰라며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이 용돈은 결혼 이후 아내가 직접 벌어 내게 준 첫 번째 용돈이기도 하였다.

아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내가 준 용돈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아내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아내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보도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보, 돈벌기 힘들지? 앞으로는 이런 일 하지 말아요."
"아니요. 힘이 들 때마다 당신과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여보, 당신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오."
"무슨 이야기를 요?"
"당신이 고급인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소?"
"저 같은 것이 무슨 고급 인력? 농담하지 마세요."
"당신의 가사 노동 가치가 월 130만원이라면 믿겠소."
"설마요?"

아내는 내 말이 믿어지지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서 아내에게 거기에 따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아내는 이해가 된 듯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사실은 그랬다. 내가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내가 내조를 잘하고 있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함을 누리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에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 작은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출처 : OhmyNews 김환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