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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삼성 이재용의 '주홍글씨' 지우려면2005-11-03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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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수 칼럼] '편법 상속·증여' 해법의 열쇠는 삼성이 쥐고 있다

"요즘 삼성 안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JY(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재용씨의 영문 이니셜)일 것이다." 삼성그룹 한 고위임원의 얘기다.

이게 무슨 말일까? 'X파일 사건'이다, '편법 상속·증여'다, '지배구조 논란'이다 해서 삼성이 어려움에 처한 게 사실이지만, 재용씨는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 최고의 청년 부자이다. 보유재산이 이미 수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이 한국 최고기업인 삼성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후계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의 얘기일 뿐이다. 그의 이마에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편법 상속·증여'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현 상황에서 경영권 승계가 원만히 이루어지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의 앞에는 넘어야 할 거칠고 높은 산들이 줄줄이 놓여 있다.

당장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헐값 발행과 관련해 전현직 경영진들이 배임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재용씨 부자와 삼성의 핵심 경영진을 겨냥해 검찰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삼성SDS와 서울통신기술의 경영진 역시 참여연대에 의해 배임죄로 고발됐다. 이들 기업이 신종금융상품을 가지고 행한 '세금없는 대물림' 작전은 에버랜드와 완전 닮은꼴이다.

이재용 상무에게 씌여진 '편법상속,증여'라는 '주홍글씨'

검찰은 수년간 시민단체의 잇단 고소·고발에도 불구하고 삼성 관련 수사를 외면해 왔지만 더 이상은 어렵게 됐다. 삼성SDS나 서울통신기술의 사채 헐값발행 혐의는 에버랜드보다 더욱 뚜렷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사채를 헐값으로 발행한 시점을 전후로 해서 발행가의 4~8배나 되는 높은 가격으로 제3자 간에 거래가 있었음이 이미 명백한 증거로 나와 있다.

재용씨로서는 세상의 비난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게 억울할 수밖에 없다. 세금 안 내고 재용씨에게 소유·경영권을 물려주려 한 것은 재용씨 본인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와 핵심 참모들이다. 삼성의 소유·경영권 세습이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에 재용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변명이 안된다는 점이다.

최태원 SK회장은 SK글로벌의 분식회계와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관련해 실형을 살았다. 비록 원죄는 그의 아버지와 전문 경영인들이 저지른 것이었지만, 최 회장은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그 부채도 함께 물려받는 것이다. 더구나 재용씨는 세금없는 대물림의 직접적인 수혜자이다.

지금의 삼성 사태로 인해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은 재용씨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재용씨는 10년 가까이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본인도 열심이라고 한다. 더욱이 겸손함까지 갖추고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는 아직 젊다. 그의 미래는 활짝 열려있다.

삼성 사태에 속타는 재용씨. 억울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 재용씨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망설일 것 없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국민이 바라는 해답을 내놔야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한겨레>는 삼성의 세금없는 대물림의 문제점을 끈질기게 제기해왔다. 또 뛰어난 경영실적을 무색하게 만드는 총수 1인 중심의 후진적 지배구조로는 진정한 초일류기업이 될 수 없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삼성은 무시하고,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그리고 귀찮아했다. 그런 오만과 안이함이 지금이 위기를 자초했다.

안타까운 것은 재용씨에게는 아직 사태 해결을 주도할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벌그룹에서 오너인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그 아들은 회장이든 부회장이든 직함에 상관없이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문율이다.

그럼 누가 나서야 하나? 삼성의 총수이자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다. 하지만 그는 'X파일' 사건이 터지자 신병치료를 명분으로 미국으로 피해 버렸다. 언제 귀국할지 기약도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기업의 총수로서 당당한 모습이 아닐 뿐더러, 아들의 미래를 열어줘야 하는 아버지로서도 책임있는 모습이 아니다.

또 한 사람 사태해결의 열쇠를 쥔 주인공은 삼성의 2인자인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해법을 모색하는 기미는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삼성이 IMF 사태를 맞았을 때, 남보다 앞선 개혁으로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은 기민함과 현명함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억울하다거나,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얘기마저 흘러나온다.

10여 년 전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운동을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쳤다. 하지만 이제 참여연대가 내건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적 명제가 됐다. 그것은 참여연대가 잘 나서가 아니라, 그것이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경영실적 만으로은 안 된다. 열쇠는 삼성에...

삼성은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된다.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은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단지 뛰어난 경영실적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앞에서는 최고경영자가 고무장갑에 털모자를 쓰고 달동네 독거노인들의 월동용 연탄을 나르며 연탄가루가 범벅이 된 굵은 땀을 흘리면서, 뒤에서는 불법행위를 한다면, 누가 나눔과 상생경영의 진정성을 믿겠는가?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자동차업체인 혼다의 목표가 '사회적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라는 점은 음미할 만하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삼성이 우리 국민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에게 "이 시대 삼성이라는 기업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라는 말을 듣기를 바란다.

그 열쇠는 삼성이 쥐고 있다. 다행히 국민들은 삼성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삼성은 변하면 살 수 있다. 삼성에 해답이 보이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하기 때문이다.

죽기를 각오하면 살 길이 보인다고 했던가. 먼저 이대로는 재용씨로의 경영권 승계가 어렵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재용씨로의 경영권 승계를 가능케 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본부장이 그 답을 내놓아야 한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아직 힘이 미약한 재용씨가 직접 나서야 한다.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15만 삼성인들과 한국경제를 위해.


곽정수 기자는 <한겨레> 대기업 전문기자입니다.

촐처 :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