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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역대 예비·학력고사 수석들 지금은 뭐하나?2005-09-25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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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이 서울 법대 나와 법조인::)

1980년 초중반만 하더라도 ‘학력고사 수석=서울 법대’라는 공 식이 지켜졌다. 겨울이 되면 각종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입시험의 ‘전국 수석’들은 어김 없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 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서울 법대에 입학했다. 1980~1984년 5년간 계속 전국 수석을 차지한 학생들이 서울 법대에 입학했을 정도였다. ‘수재들은 권력지향적’이라는 비난이 나오기까지 했 다. 예비고사나 학력고사에서 전체 수석을 차지해 세간의 부러움 을 독차지했던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1969년부터 시작된 예비고사와 82~93년 치러진 학력고사에서 전 체 수석을 차지한 ‘수재’들이 가장 많이 택한 직업은 예상대로 ‘법조인’이지만 생각만큼 숫자는 많지 않다. 역대 전체 수석 들중 모두 6명이 현재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장 선배는 1973년 예비고사에서 전체 1등을 차지한 허익열 변 호사. 197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곧바로 변호사를 시작했다 . 현재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 소속이다. 앞서 1972년도 전국 차석을 차지했던 천정배 법무장관은 서울대 법대에도 수석합격 ‘목포수재’라고 불린다. 1980년 수석을 차지한 김기영씨 역시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김&장에서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당시 차석을 했던 임수빈씨도 사법고시에 합격, 현재 부산 지검 부장검사를 하고 있다.

다음해 수석 오관석씨는 김기영씨보다 2년 빠른 1983년 사법시험 에 붙었다. 그도 서울형사지법,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 등을 거쳐 1999년 김&장에 들어갔다. 오씨가 쓴 ‘문제식 민법 상·하’라는 교재는 한때 사법연수원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봐야 할 정도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1982년 전체 수석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다. ‘제주도가 낳은 천재’로 불렸던 원 의원은 학생운동 을 하느라 휴학과 복학을 거듭했다. 이 때문에 서울 법대에 입학 한 지 10년만인 1992년에야 사법시험에 붙었지만 이때도 ‘수석 합격’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사법연수원 수료후 검사의 길을 ?쳬?서울지검과 부산지검에서 근무하던 그는 98년 사표를 썼다.

그리고 2000년 한나라당 후보로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또한번 화제를 낳았다.

이후 2년간 수석을 차지한 사람들은 모두 현직 판사로 재직중이 다. 1983년 학력고사 사상 최고점인 340점 만점에 339점을 받은 홍승면씨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담임선생님도 영어 담당 이고, 아버지도 영어 선생님인데 영어에서 한 문제를 틀려 ‘죄 송’하다”는 소감을 밝혀 부러움 섞인 ‘질시’를 사기도 했다.

서울 법대 입학 3년만인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서울민 사지법, 서울형사지법, 법원행정처인사담당관 등 요직을 거쳐 현 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다. 1984년 수석인 장순욱씨 역시 서울 법대에 입학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대구지 법, 포항지원, 수원지법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해외 연수중이다.

1999년 41회 사법시험에 합격, 현재 대전지검 검사로 일하고 있 는 최지석씨는 예비고사나 학력고사는 아니지만 1994년도 수능과 본고사를 합해 서울대 법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대입시험 전국 수석’이라는 꼬리표는 이들에게 있어 하나의 ‘자부심’이자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 출신인 한 법조인은 “‘누군가가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 가 스스로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 것 같다” 고 말했다.

특히 우수한 인재들이 즐비한 법조계에서 ‘수석’이었다는 사실 만으로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장점임에 틀림이 없다.

반면 학창시절에는 단점도 많았다고 한다. 또래들 사이에서는 일 종의 ‘공인’처럼 부각된 것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수석 출신 이 법조인은 “미팅을 나가서 매너가 안 좋아도 ‘수 석이라더니…’라는 말이 나오고, 성적이 떨어지거나 사법시험에 불합격해도 ‘수석이었다면서…’라는 말이 나와 부담스러웠다 ”고 술회했다.

출처 : 문화일보 김재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