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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미네르바와 홍길동2009-01-21
작성자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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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는 로마 신화에서 지혜와 기술, 전쟁의 여신이다. 미네르바 여신의 전령은 부엉이로 그의 어깨에 부엉이가 앉아 있는 조각상이나 그림이 많다. 신화속 상상세계의 미네르바와 이 세상에 실재해온 부엉이 콤비는 철학자 헤겔이 저서 '법철학' 서문에 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이 돼야 나래를 편다"라는 명문장을 통해 더 인구에 회자되는 것 같다. 올빼미, 소쩍새를 포함하는 부엉이류는 국제적으로 보호되고 우리나라도 7종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

검찰이 인터넷 블로거 '미네르바'를 구속한 뒤에도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네르바로 지목해 구속한 박모씨가 아닌 또 다른 미네르바와 가진 인터뷰를 시사 월간지 신동아가 2월호에 내보내면서 미네르바를 둘러싼 진실게임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박씨는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포털 사이트 다음에 올린 280편 정도를 모두 자신이 직접 썼다는 입장이다. 반면 지난해 12월에 이어 이번 2월호 신동아에서 인터뷰한 K씨는 검찰이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문제삼은 2건을 제외한 미네르바의 글 500여편을 대부분 자신이 썼다고 주장한다. K씨는 특히 미네르바가 자신을 포함한 전문가 7인 그룹이라고 말했다 한다. 미네르바가 최소한 7-8명이라는 얘기다.


미네르바의 진실공방이 전개되면서 어릴 때 재미있게 본 만화 홍길동전이 연상된다. 홍길동전은 조선 광해군 때 허균이 쓴 우리나라 첫 국문소설이다. 당시의 정치적 부패와 적서차별을 비판한 사회소설로 서자 출신의 길동이 우여곡절 끝에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불리한 출신성분 탓에 출세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길동은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활빈당의 두목이 된 뒤 신출귀몰하는 무예를 자랑하면서 탐관오리를 골라 응징하고 재물을 털어 백성에게 나눠준다. 둔갑술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사방에 동시 출몰하는 길동이 팔도에서 1명씩 자수하거나 붙잡혀 한양으로 압송돼 차별대우의 원한을 토로한 뒤 모두 짚풀단으로 변한다. 이어 주인공 길동은 병조판서를 제수받고 조선을 떠나 율도국의 왕이 돼 30년간 태평성세로 다스린다는 줄거리다.


사이버 온라인 토론방에서 논객 7-8명이 미네르바를 자처한다는 것과 소설에서 홍길동이 어느 순간 7-8명으로 둔갑해 나타난다는 스토리가 상당히 비슷하다. 인터넷에 올린 수백 건의 글 가운데 2건의 허위혐의를 지목해 필자를 구속까지 한 검찰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에 비춰 무리한 수사라는 여론이 여전하다. 불구속 수사와 공개 토론을 통해 문제점이 걸러지도록 했어야 하고 재판 과정에서 미진한 쟁점이 해소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체포 당시부터 미네르바 짝퉁 논란이 일어났고 제2, 제3의 진품 미네르바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도 분분했던 만큼 앞으로 보강수사와 함께 재판과정이 주목된다. 인터넷상의 여론조사 결과 등도 참조해야 할 것이다.


홍길동전 자체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다소 과장된 내용의 소설일뿐이나 주인공 모델로 삼은 의적 홍길동은 소설 이전에 실재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지금의 전남 장성군은 홍길동의 생가를 복원 보존해 축제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미네르바는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다소 거칠게 표현한 스타일의 글발은 일부 비판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달을 가르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의 모양이나 색깔을 헐뜯는 세태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미네르바는 특정 개인의 문제를 떠나 소통과 신뢰가 부족한 이 시대의 사회현상이다. 한명이 잡혔다고 미네르바 신드롬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이유다. 때마침 이번 부분 개각을 통해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정책 수뇌부가 바뀌었다. 앞으로 정부 당국의 정책이 제대로 된 전문가들과의 치열한 토론을 거치고 국민들과 소통하는 가운데 합리적으로 집행돼 더욱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출처: (서울=연합뉴스) 채삼석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