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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①지지율 1위 고건…'행정 달인'2005-09-25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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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80년 5·18 때 어디 있었나?'

①지지율 1위 고건…'행정 달인' 의 아킬레스건은?

조선닷컴은 2007년 대선 유력 후보 4명을 연속 비판하는 특집 기사를 연재합니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이유 10가지’입니다. ‘… 안 되는 이유 10가지’는 현재와 미래의 풍향계를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관전 사항을 정리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조선닷컴이 집중 해부할 네 명의 후보는 고건 전 국무총리,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입니다. /편집자


2007년 대선 예비후보 여론조사만 보면 고건 전 총리는 차기 대통령 자리를 맡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말 이후 이런 저런, 10여 차례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고 전 총리는 1위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고 전 총리는 지난 8월 22일 한겨레의 여론 조사에서 30%, 같은 달 18일 동아일보 조사에서 35%의 지지를 얻었다. 같은 조사에서 2위를 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지지율(16%, 15.1%)의 2배가 넘는 높은 인기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8일 실시한 조사에서 고 전 총리는 민주당 간판으로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풍부한 경험과 경륜, 대통령 권한대행 때 보여준 리더십, 노 대통령과 차별되는 안정적 이미지 등이 고 전 총리 인기의 원동력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여론조사상의 인기가 실제 대선에서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 전 총리는 대통령이 되기 어려울 것”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무엇이 그의 여론지지도를 꺼지기 쉬운 거품으로 보이게 하는 것일까.

◆ 난세(亂世) 때마다 사라져

2003년 2월 고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 때 논란이 됐지만, ‘난세 때의 처신’이 대선 때는 더욱 휘발성 강한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크다. 고 전 총리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3일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1980년 5·17 비상계엄확대 조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1주일간 잠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가위기 때마다 몸을 숨겼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에 고 전 총리는 “박 대통령 서거 때에는 박근혜 씨 지시에 따라 청와대 본관에 마련된 빈소에서 3일간 장례준비를 했다”고 해명하고 있고, 5.17 행적에 대해서는 “군정에 참여할 수 없어 운전기사를 통해 사표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의 “군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해명은, 전두환 정권에서 그가 중용됐다는 점에서 다소 빛이 바랜다는 분석이다.

◆ 69세 대통령 후보

1938년생인 고 전 총리는 대선이 치러지는 2007년 만 69세가 된다. 이명박, 박근혜, 정동영, 이해찬, 김근태 등 대선 경쟁 상대로 꼽히는 인물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다. 국가 지도자의 나이가 어려지고 있는 세계적 추세로 볼 때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연륜에서 나오는 안정감은 노 대통령과 대비되는 고 전 총리의 강점 중 하나다. 그러나 치열한 홍보전이 벌어질 대선이 가까워질 수록 젊은 유권자들이 거리를 둘 가능성도 있다.

◆ 병풍(兵風)이 최대 걸림돌?


고 전 총리가 넘어야 할 큰 산 중 하나는 바로 병역문제다. 군면제 처분을 받은 고 전 총리 자신 뿐만 아니라 둘째 아들의 병역 문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고 전 총리는 1958년 서울대 재학 중 갑종(현재 1급) 판결을 받았다가 62년 병역법 개정으로 제1보충역으로 자동 편입된 뒤 71년 고령(32세)으로 면제 처분을 받았다. 병적기록에는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미하령(未下令)’으로 적혀 있다.

병역 문제에 대해 고 전 총리는 “4·19와 5·16 군사정변으로 이어진 특수 상황이어서 많은 병역기피자들이 한꺼번에 입대하는 바람에 입영 대기 중이던 내겐 영장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62년 이후 10년간 영장이 나오지 않은 경위에 대해 지금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가 많다.

고 전 총리의 차남은 현역 입영 판정을 받았다가 3년 후 신경성 질환으로 면제 판정을 받아 역시 논란이 됐다. 장남은 석사장교로 6개월간의 기본군사훈련을 받고 전역했고, 3남은 단기사병으로 18개월간 복무했다.

우리 국민들이 병역 문제에 유독 민감하다는 것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출마한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이미 확인됐다. 따라서 병역문제는 고건 전 총리에겐 대통령 출마에 앞서 한번쯤 짚어볼 대목이다.

◆ ‘행정의 달인’인가 ‘처세의 달인’인가

고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7명의 대통령 밑에서 고위 관직에 오른 진기록의 소유자다. 총리와 서울시장을 각각 두 차례 지냈고, 최연소 도지사, 교통·농수산·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행정의 달인’이다.

관료로서 화려한 고 전 총리의 이력을 두고 일부에서는 ‘처세의 달인’ ‘무사안일의 표본’이라는 비판을 내리기도 한다. 소신파, 직언파였다면 과연 살아남았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지적이다. 본격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 이 대목도 적잖은 공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 87년 민주화운동 강경진압설

그는 1987년 ‘6.10 민주화운동’ 당시 내무부장관이었다. 일부에서는 고 전 총리가 6·10 운동을 “야당, 일부 종교인, 좌경불순세력이 결합한 집회”로 규정,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명동성당 시위 등에 대해 평화적 해결을 주장했고 내 생각이 결국 6·29선언의 토대가 됐다”고 반박했다.

◆수서 특혜분양 사건 의혹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0년 한보그룹에 수서택지를 특혜 분양하는 과정에 당시 서울시장인 고 전 총리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당시 고 시장이 청와대 눈치만 살피다가 당정회의, 건설부 질의, 국회 청원 등으로 시간을 끌면서 한보 로비의 불길을 잡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특혜 요구를 거부하다가 외압에 의해 오히려 시장직에서 경질됐다”고 주장한다.

◆ ‘IMF 국무총리’란 오명

고 전 총리가 97년 IMF 환란 당시 국무총리로 재직한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일부에서는 고 전 총리가 외환위기에 대해 사전보고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국무총리가 내각을 총괄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주요 경제정책 과정에 참여하지 못해 왔다는 관행을 들어 사전 예방에 나서지 못한 이유를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실무적인 책임 소재의 논란과 별도로, 국가적 외환 위기 때 국무총리 자리를 제대로 수행했나에 대해선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 책임질 일은 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책결정을 본인 스스로 하지 않고, 위원회나 일회성 심사단을 구성해 결정하는 고 전 총리의 업무 스타일에 대한 비판도 있다. ‘민주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결단력 부족’ ‘자기 관리를 위한 책임 회피’라는 지적도 있다.

또 고 전 총리가 고위직을 두루 거쳤지만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거나 소신 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모습을 별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자신만의 정치세력·이미지가 없다

고 전 총리의 또 다른 약점 중 하나는 바로 이렇다 할 세력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현직을 떠나 있는데다 알려진 대로 정당이나 조직 기반이 전혀 없다는 것은 당의 지원과 세력을 거느린 다른 예비주자들에 비해 불리한 여건이다.

‘고건 중심 정계개편론’을 주장하는 열린우리당 신중식 의원도 고 전 총리의 조직력이 취약하다는 것에 “외견상 맞는 지적”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신 의원은 “그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와 민선 서울시장 선거를 치렀고, 돈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없지만 균형감각과 추진력을 갖춘 전문가와 관료그룹, 자발적인 시민사회의 흐름이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어느 정파에도 쏠리지 않는 고 전 총리의 처신은 관료로서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지만 ‘대권’은 다르다. ‘무색 무취’하다는 고 전 총리의 이미지는 정치인으로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정치지도자로서 ‘카리스마가 없다’는 지적과도 통한다.

◆ 앉아서 ‘대권’을 기다리나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 1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고 전 총리가) 다음 대선에서 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아무리 뛰어난 고 전 총리라 해도 경선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가 ‘개싸움’ 같은 현실 정치 속에 뛰어들어 ‘대선 도전권’을 따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에 높은 지지율이 더해져 외부 여건은 갖춰졌지만, 막상 고 전 총리 본인이 대권을 향한 ‘가시밭길’을 걸을 각오가 돼 있는지는 미지수다. 대권은 고 전 총리가 과거 ‘추대’된 국무총리나 서울시장과는 분명 다르다는 얘기다. 피 터지게 싸워 상대를 쓰러뜨려야 올라설 수 있는 ‘쟁취하는’ 자리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비유처럼 ‘밥상 차려주면 받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력 대선주자’로서 고 전 총리의 싸움은 기존의 정치세력 안으로 들어가는 일부터 시작될 것 같다. 고 전 총리가 현재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같은 기존 정치세력을 등에 업지 않는 한 여론조사의 지지율은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과연 ‘거품 인기’일까? ‘차기 대통령감 1위 고건’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비상한 관심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출처 : 조선일보 진중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