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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이고, 고마 이래 사는 게 훨씬 낫다 카이"2005-09-23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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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여행기"

"아가씨 혼자 다니다가 손이라도 타면 어짤라고 그라노? 와, 실연했나?"

주왕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게 날아온 질문이다. 한 할머니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던지 기어코 물어 보신다. 청송 버스터미널에서 주왕산까지 손님이라곤 달랑 4명뿐이었고 기사 아저씨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말동무나 하자고 내 가방을 아저씨 뒷자리로 옮겨 버린 뒤라 난 어쩔 수 없이 할머니들의 관심에 초점이 되고 말았다.

주름진 검은 얼굴에 묻은 근심이 너무 진지해 차마 외면하지도 못하고 "그냥 주왕산이 좋아서요"하고 만다. 이런 순간에 "사실은 여기가 제 고향이에요"라고 했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다. 어느 동네서 났느냐, 아버지가 누구냐, 고향은 언제 떠났느냐, 하는 일은 무어냐…. 당신 친손녀를 만난 듯 그렇게 이것저것 물어올 것이 자명한 일이라 머뭇머뭇 웃고 말았다.

"그라지 말고, 나중에는 같이 온나. 혼자 댕기먼 뭔 재미고?"
결국 할머니는 그 말이 하고 싶으셨던 게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당신 혈육인 듯 그렇게 살갑게 한 마디 하고 싶으셨던 게다.

그래, 내 고향은 청송이다. 경북 청송군 부남면이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푸른 소나무의 땅, 청송. 하지만 사람들은 청송 이야기를 꺼내면 하나같이 "아, 거기 교도소 있는 데지?" 라고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순하고 아름다운 고향 마을은 사람들에겐 그저 암울한 감옥이 있는 곳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그러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주산지에서 촬영한 덕분에 "아, 거기 나무가 물 속에서 자라는 호수 있는 데지?"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청송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알게 된 건 기쁘지만 찾는 이 없어 한없이 조용하고 예뻤던 주산지가 소란해지기 시작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나무들과 경쟁 않고 물에서 살기로 한 '왕버들'

어쨌든 나는 혼자서 내 고향 청송엘 가끔 다녀온다. 고향 마을에선 지금도 사촌오빠가 농사를 짓고 있지만 대개는 그냥 혼자 조용히 주왕산이나 주산지에 들렀다가 돌아오곤 한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꼬박 6시간이 걸리는 곳인데, 지금도 주산지를 처음 만났던 그 해 가을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이 처음 열린 곳이 바로 거기인 것처럼 신비로운 곳, 주산지의 왕버들은 세상 어느 곳에서 자라는 그 어떤 나무들보다 장엄한 생명력을 안고 서 있었다.

주산지는 주왕산 국립공원 서남쪽에 있는 못인데, 1720년 숙종 46년에 만들기 시작해 그 이듬해에 공사를 마친 인공호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 곳에 갇힌 물과 나무들은 인공의 냄새를 완전히 잃고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땅으로 거듭났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은 여기에서 용이 나왔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지만, 지금도 근처 60가구의 농사를 책임지고 있는 저수지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집 온 후 30년 동안, 아무리 가물어도 주산지의 물이 가물어 농사를 짓지 못했던 해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해 주던 민박집 아주머니 말이 떠오른다.

1만 평에 이르는 주산지는 주왕산 연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나무숲에 둘러싸여 한없이 고즈넉하다. 주산지가 가장 아름다운 시각은 아무래도 이른 아침, 안개가 채 걷히기 전이다. 온통 하얀 산안개, 물안개가 어우러져 천상의 한 자락을 보여 주는 순간, 150살이 넘은 왕버들이 물에 기대 초록으로 반짝거리는 그 찰나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이제 막 새 잎을 올리는 어린 버들부터 썩어 가는 고목까지,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굵기와 모양을 보여 주는 왕버들이 물 속에서 자라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참나무나 소나무에 비해 특별한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 나무라 숲에서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지 않고 물에서 살기로 작정한 왕버들의 결정은 얼마나 탁월한 것인가. 왕버들 줄기를 마구 쪼면서 주산지의 아침을 깨우는 딱따구리 소리조차 고요 속에 묻혀 사라지는 순간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앉아 있었더랬다.


중국 동진에서 도망쳐 온 '주왕'의 이름을 딴 '주왕산'

지난 겨울엔 주왕산으로 바로 가지 않고 청송읍에 잠깐 내렸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는데도 어찌 된 셈인지 바람은 참 달고 따뜻한 날이었다. 낡고 삐거덕거리는 터미널 건물을 그대로 빼닮은 사람들이 난로 주위에 오종종 모여 앉아 있었고, 몇 십 년 동안 한 번도 새로 칠하지 않은 것 같은 낡은 벽, 멀쩡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낡은 의자, 그리고 낡은 사람들이 하염없이 반가웠던 날….

"어디 가니껴? 날이 이래가 움직꺼리기 안 힘든겨?"
"장날도 아인데 뭐 하러 나왔능교?"
오랜만에 듣는 고향 말투가 정겨웠다. '최고 배상금 5천만원'이라 적어 놓은 범죄자 수배 전단만이 새것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 낡고 초라한 풍경이 고마웠다고 말하면 속 편한 소리 한다고 나를 욕할까?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주왕산으로 향하는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왔다. 기사 아저씨는 타고 내리는 사람들 모두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고, 빈 들에 나와 농기구를 챙기는 할아버지를 보고는 창을 내려 "뭐 하니껴어어어?"라고 길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번잡한 도시에서 익명으로 숨어 사는 데 익숙해져 버린 나에게는 얼마나 기분 좋은 소란이었는지 모른다.

날도 궂은데 곧 어두워질 것이 걱정스러워서 산에 올라가는 것은 포기하고는 다음 날, 해 뜨기 전에 서둘러 일어나 산으로 향했다. 깊은 산에서 불어오는 이른 아침의 바람을 폐 깊숙이 담아 넣으면서 주왕산에 올랐다.


주왕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계곡이 깊고, 산세가 출중해 걷는 걸음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망개나무, 소나리, 도아땅딸보메뚜기, 하늘나방 같은 고귀한 생명들이 깃들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동진에서 도망쳐 온 '주왕'의 이름을 딴 이 산에 주왕의 아들 '대전'의 이름을 따서 지은 대전사가 있고, 그 뒤로 주왕이 깃발을 꽂은 곳이라 해서 '기암'이라 하는 바위절벽이 웅장하게 솟아 있다.


대전사를 지나고, 제1폭포에 가까워지자 핸드폰에는 곧 '통화권 이탈' 표시가 떴다. 전화기를 끄고, 내가 두고 온 문명의 세계를 끈다. 시계를 볼 수 없으니 내 몸은 자연이 일러 주는 시간에 더 충실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다.

제1폭포에서 시원한 폭포 소리에 귀를 씻고, 제3폭포까지 내처 걸었다. 폭포를 지나자마자 '내원마을' 표지판이 나타났다. 전기 없는 청정 마을, 내원마을에 도착했다. 임진왜란 때 도망 온 사람들이 꾸민 마을이라는데 그 난리통에 어쩜 이렇게 아늑하고 포근한 자리를 잡았는지, 참 용하다 싶다.


전기 들어와 봐, 당장 테레비만 보고 있을걸

폐교된 내원분교 바로 옆에 있는 '내원산방'에 짐을 풀었다. 산방 주인 이상해씨 부부는 이 곳에 삶터를 꾸민 지 21년째라 했다. 멋지게 생긴 개 '곰순이'와 녀석이 낳은 두 마리 강아지도 함께 살고 있었다. 전기 없이 사는 거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이래 살다 보니 이게 편해졌어. 전기 들어온다고 해 봐. 당장 테레비 들여놓고 애국가 나올 때까지 보고 있을걸? 전기 들어오면 군불 때겠어? 전기장판 쓰고 말지. 그라고 전기밥솥에 냉장고에 전기스토브에…. 아이고, 고마 이래 사는 게 훨씬 낫다 카이."

여름엔 냉장고가 없으니 밭에서 갓 뽑은 신선한 것들을 알맞게 먹고 남기지 않는 생활이 자연스레 몸에 익었고 겨울엔 장작 잔뜩 쌓아 놓고 밤마다 따스한 연기 피워 올리며 군불 때는 생활이 몸에 익었으니 상관없다고 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9가구 사람들이 죄 그렇다고 했다. 이런 곳이 한 곳쯤 남아 있어 주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공원관리법 때문에 전기 없이 살고 있는데, 그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얻고 있는 듯했다.

아줌마가 맛있게 끓여 주신 만두국을 먹고 커피도 한 잔 얻어 마시고 내원분교에 가서 난롯가에 자리를 잡았다. 내원분교는 이 마을에 사람들이 좀더 많이 살았던 지난 시절엔 학교로 제대로 기능하다가 사람들이 이 곳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1980년에 문을 닫았다. 그 시절의 책상과 의자, 사진들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그곳이 학교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곰순이의 두 딸도 내 발치에 와서 엎드렸다.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을 읽다가, "나는 내가 보내고 있는 이 단순한 순간의 시간을 온전히 즐긴다. 나는 행복이란 물과도 같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기적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대목에서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할 수 있는 튼튼한 내 몸과 훌쩍 떠날 수 있는 내 자유와 곳곳에 펼쳐져 내 오감을 두드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자연과 뭇 생명들에 대한 감사로 충만해지는 순간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행복한 순간을 찾지 못하는 까닭은 너무 높거나 혹은 너무 낮은 곳을 보느라 적당한 눈높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밝은 햇살이 포근하게 들이치는 분교 안에서 내 일상의 기적, 행복을 만났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에게 놀림을 당하다

이 곳의 화장실은 문이 고장 나 바람에 덜컹거린다. 볼일 보는 동안에도 화장실 문을 잡고 있어야 해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잠깐 손에 힘을 뺀 사이 바람이 와서 문을 아예 활짝 열어젖혀 버렸다. 나무들이, 돌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얼레리꼴레리 나를 놀렸다. 놀림을 받으면서도 그냥 피식피식 웃으며 시원하게 볼일 봤다.

태양이 사위어가는 시각, 기타를 치며 손님들과 노래를 하는 산방의 주인아저씨의 목소리와 밥 짓는 냄새가 분교까지 흘러와 나도 산방으로 건너갔다. 군불 땐 방바닥은 그야말로 쩔쩔 끓는다. 군불 때는 연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촛불은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내 그림자도 이리저리 흔들리게 한다. 연기와 함께 실려 오는 희미한 송진 냄새가 고소하고 따스하다.

5시를 조금 넘자 산골짜기는 완전한 암흑이다. 촛불 아래서 저녁을 서둘러 먹고 나서는 할일이 아무것도 없다. 달은 무척이나 밝아서 산골짜기를 환하게 감싸고 있다. 달빛을 받아 환하게 반짝이는 눈밭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밤하늘에 덩그렇게 저 혼자 떠올라 세상을 밝히는 커다란 가로등, 보름달은 나를 보고 배시시 웃고 산 그림자는 부드럽게 돌아앉아 나를 살포시 감싸 준다. 완벽한 아름다움 앞에서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원마을에 밤이 깊어 간다.


전설도 품고 사람도 품은 품 너른 고향 땅에 다시 갈 때는 착한 내 고향 마을 할머니들 다시 걱정 않으시게 내 반쪽 손을 잡고 함께 가리라, 꽃 좋고 열매 고운 내 좋은 땅 함께 가리라 작심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것이던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마음의 도반이 찾아질 때까지 끝없이 홀로 찾아가야 할 내 고향 청송 이야기, 즐겁게들 들으셨는지?


출처 : 오마이뉴스 김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