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게시판 ▶ 세상보기
세상보기

제목재테크 최고는 재무설계.2005-09-13
작성자관리자
첨부파일1
첨부파일2
첨부파일3
첨부파일4
첨부파일5
직원들 재무상담을 의뢰한 한 벤처기업 사장이 필자에게 “가장 훌륭한 재테크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선뜻 뭐라고 답해야할 지 몰라 망설였는데, 그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결혼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애 키우고 그러면서 집도 큰 것 마련해야하고, 이런 것들이 다 큰 비용 아니냐는 주장이다. 40대 초반인데도 미혼인 자신의 현실을 미화한 재미있는 농담이었다.

“두번째 재테크 방법은, 승용차를 사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회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장인데 승용차 살 돈이 없어서 그가 차를 사지 않은 것은 아니다. 틀린 말도 아니거니와 워낙 당당하게 주장하는 터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승용차 얘기는 재무상담사들이 자주 보는 한 책에도 나오는 것이다. ‘Your Money or Your life’란 책에서 미국인인 저자는 재정 독립을 주장하는데, 재정 독립의 한 축이 ‘소비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아주 깐깐하고도 장황하게 제시하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차를 사지 마라, 직장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구하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라…. 미국인들이 흥청망청 소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건전한 중산층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직장에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라는 말도 나온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개인 재무에서도 ‘계획’이 갖는 힘은 크다. 계획이 있어야 절제할 수 있고 심리 상태도 안정된다. 그렇다고 꼭 돈을 쓰지 말자고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쓰되 미리 계획해서 돈에 끌려다니지 말고 주도하자는 뜻이다.

교사인 한 고객이 상담과정 중에 통장을 내어보이며 한 말이 생각난다. “(주변 사람들이) 돈 냄새를 참 잘 맡는 것 같아요.” 알뜰하게 아껴 적금을 탈 때쯤 되면 왜 이리 돈 달라는 사람들이 많냐는 것이다. 시동생 장가간다고, 시아버님 입원했다고, 친지분이 사업한다고…, 뭐 이런 식이란 거다.

다음 상담 때 이 고객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따님이 중학생이 되면 가족이 모두 그리스 여행을 다녀오면 어떻까요? ” 늘 남에게 돈을 주기만 했지,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써보지 않아서인지 고객은 조금 당황해 했다. 그렇지만 딸의 교육에 도움된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미리 여행사에 알아본대로 세식구 15일 여행에 400만원 정도 든다는 정보도 전해줬다. 이 가정은 3년 후 그리스 가족여행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저축을 하고 있다. 이렇게 목표가 분명하면 중도에 포기하는 일도 적고, 그 과정이 바로 즐거움이다.

물론, 적금을 탈 때 더 중요한 일이 생겨 여행을 포기할 수도 있지만, 이 과정이 모두 인생교육도 되고 살아있는 재무교육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상황에 이끌려 돈이 새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대로 돈을 통제한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것이다.

곧 추석이다. 추석도 재무설계 관점에서 보면 작은 이벤트다. 미리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를 써야 할지 예측할 수 있다. 무조건 아껴써야한다는 강박관념만 가져서는 갈등만 불러일으킨다. 심하면 부부싸움까지 간다. 계획은 빠를수록 좋고, 대화는 나눌수록 좋다. 재무설계는 단지 금융지식만을 다루는 게 아니다. 돈을 매개로 사람이 어떻게 살지를 계획하는 일이다.

이세진/포도에셋 제이리치지점 팀장

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