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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버스를 타는 시각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나요?2005-09-02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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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버스체계 1년, 어떻게 달라졌나? ②

버스를 ‘시민의 발’이라고 하는 까닭

‘버스’를 언론에서는 ‘시민의 발’이라고 표현한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개인별로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이 어렵고 그러한 차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쇼핑, 출퇴근, 친구와의 만남 등 이동을 돕는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수단이기에 시민의 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각장애를 가진 필자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외출을 하고, 그때마다 지하철이건 버스건 택시건 복지택시건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 이동하고 있는데 어느새 버스는 나의 대중교통수단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서울시의 버스체계 개편 1주년을 맞아 나름대로 버스 이용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정리해 보고자 한다.

시각장애인을 더욱 힘들게 하는 중앙차로

시각장애인에게 버스체계의 개편이 주는 가장 큰 변화는 중앙차로제의 실시이다. 중앙차로제의 실시로 인하여 버스 승객들은 횡단보도를 반쯤 건너가서 버스를 타야 한다. 이것이 사실 손해인지 이득인지는 모르지만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두 가지 측면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로 과거에는 가는 방향이든 오는 방향이든 한번은 길을 건너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조건 길을 건너야 한다. 탈 때도 내릴 때도 길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건널목에 음향신호기의 설치도 잘되어 있지 않다. 다만 점자블록만이 어느 정도 설치되어 있는 것이 위안이라고 할까.

둘째로 모든 버스가 중앙차로로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타야할 버스가 중앙차로로 다니느냐의 여부도 큰 어려움이지만, 이를 떠나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응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뭔가 구분하게 하는 정책은 그리 좋은 정책이 아니다. 어떤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가게 하는 것보다 원스톱으로 서비스를 받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앙차로를 만들어 놓고 이 버스는 중앙차로로, 저 버스는 일반차로로 다니게 하는 것이 장애인 여부를 떠나 모든 시민의 편의를 생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중앙차로를 없애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건널목에 시각장애인과 같은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모든 버스가 중앙차로를 이용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고 일정 정도의 통일성을 확보해 주길 바란다.

왜 버스를 타는 시각장애인이 줄어들까?

시각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선로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으며 그들 중의 일부는 사망에 이르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위험한 중앙차로의 건널목에서는 왜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버스 이용 시 시각장애인들이 안전 사고를 당한다는 보도를 볼 수 없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버스를 타지 않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서도 버스를 타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물론 이유는 다양하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이유 한 가지를 들어보라면, 이는 버스 노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각장애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다시 잘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사물을 잘 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든다. 하나는 작아서 보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변과 구분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도 저시력인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이용하였지만 버스가 달라진 지금은 버스를 타는 것을 쉽게 도와줄 수 있는 저시력인이 별로 없다. 버스의 번호판 크기를 키워달라는 요구는 이미 제도개편 초기에 건의한 바 있으며 파랑, 초록, 노랑, 빨강 등으로 버스의 종류를 구분하는 만큼 번호의 색과 바탕의 색은 색대비 원리를 이용하여 구분하고 야간에도 쉽게 번로를 알아 볼 수 있게 야광 처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는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 시각장애인은 이용하지 말라는 간접적인 표현과도 같다. 이러한 이유로 버스를 타는 시각장애인이 없으니 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없는 것이 아닐까?

장애인을 배려한 도시교통계획이 절실하다.

이와 같이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버스체계의 개편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극심한 반대와 경기도와의 요금협의가 이루어지지 못해 반쪽짜리로 운영을 시작했으며 요금전산시스템의 오류도 상당부분 발견되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시민들의 협조로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이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제도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 장애인에게까지 이르고 있지 못한 것에 서운함을 느낀다. 결국 모든 사람이 편안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리한 시설은 모든 사람이 이용하기 편리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의 도시계획은 장애인을 배려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또한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잠재적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버스의 번호를 크게 하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번호를 부착하면 노안으로 시력이 약한 어르신들도 보다 편리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저상버스를 보다 많이 도입한다면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의 불편함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시행 중인 제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로 사기를 떨어뜨리기보다는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을 건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떠한 정책이 가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때, 정반합의 논리 위에 올바른 정책이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하성준 :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직업복지팀장
이 글은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http://www.accessrights.or.kr/)에서 발행하는 자유공간 91호(2005년 7월)에 실렸습니다.


출처: 프로메테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