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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말기암도 담담한 삶 "두딸 위한 기도의 힘"2005-08-26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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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박병두(50, 가명)씨는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새벽기도를 나간다. 15분 동안의 산책길, 그에게 그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내일 당장 사라질 수도 있는 자신의 육신이 걸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새벽바람이 얼굴에 닿을 때 행복하다.

한 남자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시련이었다. 근 20년 동안 건축현장에서 일을 한 박씨는 2003년 5월 퇴근길에 갑자기 쓰러졌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4개월의 정밀진단을 받았다. 위암말기. 담당의사는 ‘3개월 길어야 6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선고했다.

“담담했어요. 정말, 담담했어요. 가슴이 막막하지도 않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지도 않고….”

지난 세월이 병에 대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을까. 박씨의 아내는 1997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아내가 막내딸을 임신했을 때 결혼 전 앓았던 뇌종양이 재발했다. 병원에서는 ‘아이를 버리고 아내를 살려야 한다’고 했지만 아내는 자신의 생명을 버렸다. 수술 과정에서 박씨의 아내는 과다출혈을 했고 4년여의 투병생활을 뒤로 아내는 박씨 곁을 떠났다.

“당신에게 아이들 맡기고 나는 그만가요.” 아내의 마지막 말이었다. “재혼하지 않고 아이들 클 때까지 내가 뒷바라지 한다”고 아내에게 다짐했지만 이제 박씨는 하루 앞을 내다볼 없는 처지다. 그래도 박씨는 “수술이라도 제대로 받게 해줬어야 했는데…”라며 8년 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남들이 보고 부러워 할 정도로 금슬이 좋았던 부부였다. 싸울 일도 없었다. 평화롭고 단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13년 전, 큰딸 정희(15, 가명)에게 닥친 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2살이었던 정희가 이웃집 아이들과 싱크대 위에서 놀다가 뒤로 넘어졌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은 점점 둔해졌고 이후 정희는 정신지체 4급 판정을 받았다. 현재 정희는 장애인학교에 다닌다.


“어떨 때는 집에 환자가 세명이 있었어요. 아내가 병원에 있던 터라 정신지체인 큰 아이를 봐줄 사람도 없고 갓난아이는 칭얼거리고… 집에 환자가 있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24시간 소홀할 수가 없죠. 정희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요.”

말기암 선고를 받은 박씨가 병원에 있는 사이 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정희는 살이 찌기 시작했다. 스스로 식사조절이 안 돼, 중1인 여자아이가 70kg이 넘게 나간적도 있었다. “집에서 언니와 소꿉장난도 하고 잘 놀아주는” 작은 딸 선희(12)는 아직까지 어리광을 부리며 막내티를 낸다.

“선희는 고집이 세고 말을 좀 안 듣는 편이에요. 불편한 언니에게 ‘언니 물 갔다 줘’할 때가 있고 자기 앞에 물건이 있어도 ‘아빠 지우개 좀 줘’ 그럽니다. 그래도 ‘뭐 해달라’고 말했다가 조금 생각한 뒤 그만둬요.”

“저는 알아요. 제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박씨는 봉사활동을 통해서 삶의 기쁨을 되찾고 있다. 그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아이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의 사정을 알게 된 이웃분의 소개로 한밭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도시락을 집으로 꼬박꼬박 배달해준 게 계기였다.

“낯을 가리는 정희가 집에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분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할 정도로 고마웠나 봐요. 제가 없는 사이 주변 분들의 도움에 더욱 감사했죠.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저도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2~3차례 결식아동과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도시락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200개가 넘는 도시락을 씻고, 닦고 밥과 반찬을 정성스레 담는다. 다른 자원봉사자의 손이 모자랄 경우 하루 종일 일할 때도 있다.

그가 봉사활동을 시작한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박씨의 몸에 있는 종양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그대로 멈춘 상태다. “어제 보낸 도시락이 무겁게 돌아 올 때는 속상하기도 하다”는 그는 목숨을 다해 사랑의 도시락을 담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끝까지 살아야죠.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큰 아이 문제며 마냥 말괄량이인 막내 딸, 그리고 제 앞길에 놓인 걸림돌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야 하죠. 저는 알아요. 제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아내가 떠난 빈자리,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집에서 박병두씨가 철모르는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언제까지 살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밝게 살아가는 박병두씨. 말기 암 환자인 그에게서 삶의 단단한 뿌리를 발견한다.

※ 박병두씨 가족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시길 원하시는 분은 월드비전(☎ 02-784-2004)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출처 : [파이뉴스 백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