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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원하는 만큼 공짜로? 민들레 국수집.2005-08-26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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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어?” “에이, 거짓말!”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 있는 ‘민들레 국수집’은 원하는 만큼 배부를 때까지 공짜로 밥을 먹을 수 있다. 오전, 오후 두 번가도 면박을 주는 일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도 변함없이 기쁜 마음으로 손님을 반긴다. 후식으로 커피, 요구르트도 준다.

세상 사람들이 못 믿겠다며 ‘에이, 거짓말’이라고 한 소리씩 하는 민들레 국수집. 이 무료 식당이 문을 연 날이 공교롭게도 2003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식당 주인장인 서영남 환속수사는 만우절에 문을 연 이유를 “거짓말 같은 일을 한번 저질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말은 유쾌하게 전해도 그의 처음 마음이야 변함이 없다. “그저 배고픈 분들한테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대접하고파” 시작한 일.

서영남 수사는 수도원에서 25년간 수사로 생활하다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환속했다. 노숙자를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 국수집’을 연지도 2년여가 흘렀다. 그가 쓴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2005. 더북컴퍼니)에는 무료식당을 운영하면서 집 없고 갈 곳 없는 이들에게 매일 따뜻한 밥을 대접해주며 나누었던 알토란같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서 수사는 민들레 국수집을 시작으로 자립 공동체 ‘민들레의 집’에 이어 노숙자들을 위한 공간 ‘민들레 쉼터’을 운영하고 있다. 무료식당은 민들레 홀씨처럼 사랑의 꽃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고 문턱이 성할 날이 없을 정도로 ‘손님’으로 북적거린다. 물론, 거의 공짜 손님이다.

3평도 안 되는 공간, 넉넉하게 앉을 곳도 없는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이 하루에 백명이 넘는다. 손님 가운데는 알콜 중독자, 노숙자, 정신지체아, 독거노인처럼 힘 없고 ‘빽’ 없고 갈 곳없는 이들이 줄기차게 찾아오고 있다.


“간판 만드는 것이 오죽 비쌉니까? 새로 달기도 뭣해서 ‘후리 건축설비’(이전 상호) 글자만 떼고 민들레 국수집 글자를 새로 만들어서 붙였어요. 간판을 자세히 보면요, 민들레 국수집 글자 안쪽에 후리 건축설비 글자 자국이 남아 있어요. 설비 사무실 만들 때 간판에 비해 글자가 너무 작다고 했는데 이제 보니 국수집 간판으로 쓰려고 그랬나 봐요.”

특히 이렇게 허술한 간판을 단 노숙자를 위한 무료식당에 VIP 고객이 있다니 의아한 일이다. 국수집 식당 안쪽 하얀 칠판에는 ‘VIP 고객명단’이 빼꼭히 적혀있다. 서 수사는 한 번 온 손님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어놓고 잊어버리면 다시 외우고 또 외우기를 반복하면서 다시 오는 이들이 있으면 그의 이름을 꼭 불러주었다. 그 이유가 애틋하다.

“이름이 뭐고 말이 무엇인가?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던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자기 존재감을 점점 잊으면서 홀로 설 용기를 잃고 자포자기하기 쉽다. 그런 이들에겐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필요하다.”

때문에 서 수사는 말을 주저하는 노숙자들에게 다가가 말문을 열 수 있도록 한마디라도 더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민들레 국수집을 찾아 온 이들은 자연스레 이름과 나이, 잘 먹는 음식과 살고 있는 곳, 살아 온 이야기를 서 수사에게 털어놓으며 닫힌 마음을 열게 된다.

책을 통해 서수사는 “동정과 사랑의 차이는 겉보기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동정 받는 사람은 시들고 사랑받는 이는 살아난다”며 “민들레 국수집에서 식사하는 귀한 손님들에게 하나 둘 삶의 희망이 되살아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행색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을 반기는 무료식당, 술 냄새 풍기는 노숙자를 VIP 고객으로 모시는 곳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알면 알수록 속이 궁금해지는 민들레 국수집은 세상 가장 낮은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서영남 수사는 ‘나눔’이 결코 물질적인 풍요가 있을 때 건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파이뉴스 백민호 기자(mino100@p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