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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80살에 중학 졸업한 할머니 ‘한의사 될거라우‘2005-08-26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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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움의 기회를 놓쳐 평생 한이 된 이 시대 만학도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곳이 바로 마포구 대흥동에 위치한 양원주부학교이다. 현재 2425명의 ‘주부 학생’이 재학 중인데 이달 24일 543명이 졸업을 했고 이들은 한 단계 높은 교육 과정을 밟게 된다.

며칠 전 이번 졸업자와 재학생중에 특별한 사연이 있다는 제보를 이 학교 도덕 과목을 담당하는 장진숙 교사로부터 전해 듣고 그들과 전화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특별한 사연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배우기 위해 분투하는 분들의 노력담이다. 장 교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참으로 감동적이고 진한 사연을 간직한 분들이 매우 많다”고 밝혔다.

첫 번째 이야기를 풀어놓을 학생은 이 학교에서 최고령인 양정자(80)할머니이다. 양할머니는 지난해 5월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최고령으로 합격해 화제를 모아 각 방송과 온, 오프라인 신문 등 수많은 언론매체에서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았던 주인공이다. 양 할머니가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 과정을 끝내고 이번에 졸업을 하게 됐다.

기자는 양 할머니를 맨 첫 인터뷰 대상자로 꼽았다. 그러데 처음 전화 시도를 할 때 약간 걱정이 됐다. 80세의 고령이라 인터뷰를 잘 할 수 있을까 한 것. 하지만 단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양 할머니는 또렷또렷하게 기자와 대화를 나누어 나이를 무색케했다.

1926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양 할머니는 각각 세살과 열 살 때 부모님을 잃고 외가집 등을 오가며 어렵게 자란 탓에 배움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배워야 산다`는 강한 의지는 불처럼 타올랐지만 생계 앞에서 불꽃은 순식간에 꺼졌고 배움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자식들이 학교에 들어갈 무렵 김 할머니는 학교 어디 나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척 창피했다.

세월이 흘러 나이 70정도 됐을 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신경통, 관절염으로 고생을 했다.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자 할머니는 침을 사다가 팔, 무릎, 허벅지 등 아픈 곳 이곳저곳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할머니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몰라요. 그때는 너무 아파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무데나 침을 꽂았죠. 침 잘못 꽂아서 죽던지 신경통, 관절염으로 아파 죽던지 그냥 운명에 맡기기로 했죠. 그런데 아무렇게나 침을 꽂았는데도 죽지는 않고 오히려 아픈 곳이 나아지지 뭐예요.”

그러고나서 그 지독했던 관절염도 없어지고. 신경통도 덜해져 이곳저곳을 더 잘 돌아다닐 수 있었다. 양 할머니는 필생즉사(筆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 즉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몸으로 체득해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고 우여곡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침놓은 곳이 잘못돼 수술을 받기도 하고 허벅지에 놓은 침이 부러져 살 속으로 들어가 몇 년 동안 그냥 지내기도 했다.

그 후로 할머니는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침술을 공부했다. 처음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바로 이 침 때문이란다. 침놓는 기술을 정식으로 배우고 한의사가 돼 나중에 또래의 노인들에게 침놓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게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이다.

여하튼 자녀들을 성장시키고 사회적 기반이 다져진 이후, 나이 일흔 아홉에 시작한 늦깎이 공부는 쉽지 않았다. 가나다라부터 시작해 국어, 수학, 영어까지 공부하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열심히 따라하고, 집에서 손주들 도움도 받고 열성으로 공부를 한 결과 심봉사 눈 뜨이듯 조금씩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공부라는 게 마치 하늘과 땅처럼 나한테는 무척 높고 힘들며 막막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조금씩 재미를 더해가니까 공부에도 맛이 느껴지더라고요.”

이번 중학교 검정고시 과정 졸업 소감에 대해 묻자 웃으며 “졸업한다고 뭐 끝인가요? 고등학교 검정고시 과정 또 공부하고 대학 검정교시 까지 끝내고 한의사가 되면 그때부터 또 시작하는 거지요. 아직 갈길 멀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양 할머니의 거침없는 말씀을 들으며 메모하던 기자는 잠시 펜을 내려놓고 할머니의 말씀을 경청만 했다. 그러는 동안 젊디젊은 기자는 양 할머니처럼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무엇인가에 도전을 해본 기억이 있나 더듬어 보았다. 그 열정을 무게로 잰다면 아마도 양 할머니가 더 무거워보였다.

출처 : [파이뉴스 윤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