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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산을 종주한 슬비와 상규에게2005-08-25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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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챙겨놓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 너희들의 뒷모습이 비장해 보였다. 일행을 태운 다영이 아빠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멀리 검푸른 새벽 공기가 옅은 물색으로 변하고 있었단다.

너희들이 가고 나자 이제부터 엄마 휴가가 시작이구나 싶었지. 하지만 조금 지나니까 가지가지 걱정이 밀려오더라. 슬비는 그동안 뒷동산에도 한 번 오르지 않았고 상규도 갈라진 발바닥이 채 아물지 않았는데 어찌 그 높은 산을 오르려나 했단다. 침낭에 수건과 긴 옷가지, 우비, 롤매트와 물통 등 등반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꽉 채운 배낭이 제법 묵직한데 상규는 소풍가는 표정이 되어 싱글벙글 이었지.

조그마한 교회 셋이 합쳐서 처음엔 중고등학생들만 등반을 한다고 했지만 초등학교 6학년도 있다고 하니 5학년인 상규도 갈 생각을 했겠지. 너희들이 1차로 먼저 가고나면 부모들은 그 다음날에 가기로 했단다.

너희 둘이 없는 그날, 집안은 텅 빈 것 같고 지금쯤 산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일정표를 보고 ‘노고단 지나 뱀사골 넘어 천왕봉을 간다’고 짐작만 할 뿐이었어. 밤이 되어 다영이 아빠에게 걸려온 전화로는,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그날에 오를 등반을 잘 마쳤다는 거였어. 더 묻고 싶어도 전화상태가 고르지 않아 긴 통화는 할 수 없었지. 상규가 걱정스럽긴 했지만 인솔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있어 든든했고 또 제 누나와 같이 있으니 서로 의지가 되겠지 생각했단다.


다음 날은 주일이었어. 교회 예배가 끝난 오후 우리 부모들이 출발한 시간은 두 시였단다. 차는 한참을 달려 거의 세 시간 즈음해서는 이정표에 실상사도 보이고 지리산이란 글자도 보이더라. 차에서 내리니 이미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한 손에는 스키 탈 때 쓰는 것 같은 지팡이를 쥔 사람도 있었고 두 손에 모두 쥔 사람도 있었어. 저 지리산이란 데가 지팡이에 의지해서 오르내릴 만큼 힘든가보다, 그때는 그렇게만 생각했지.

입장권을 내기 전 근처 가게에서 랜턴을 사고 우리는 백무동 야영지로 올라갔단다. 야영지 한 군데 자리를 잡자 아빠와 목사님 등 어른들은 너희들이 가고 있는 세석산장으로 향해 간다고 했어. 그곳에서 같이 합류하고 하룻밤을 보낸 뒤에 그 다음날 천왕봉까지 갔다가 이곳 백무동 야영지에서 모두 만나기로 한거지. 아빠 일행이 떠난 시간은 오후 다섯 시야. 아빠는 지리산 종주를 십년 전에 했고 다시 도전하는 기분이라고 하더라만, 엄마는 마흔을 훨씬 넘긴 지금에서야 그 지리산을 처음 와봤단다.

엄마가 알고 있는 지리산이란, 소설 속에 나오는 빨치산들이 생활했던 곳이라는 것과 어느 시인이 산행 중에 물이 넘쳐 사고를 당한 곳이라는 것뿐이지. 예전에 엄마 친구로부터 지리산 뱀사골이 나와 있는 엽서를 받은 기억도 어제 일처럼 떠올랐단다. 너희들은 첫날, 성삼재에서 노고단, 임걸령과 뱀사골을 거쳐 뱀사골 대피소에서 하루를 묶었고, 다음날 토끼봉으로 출발해서 명선봉 벽소령 그리고 세석대피소와 장터목까지 가는 동안 점심과 저녁을 그곳에서 보냈겠구나.



나중에 알았지만 아빠는 출발 후 다섯시간이 지난, 밤 열시가 되서야 너희들이 있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고 하더라. 등에는 무거운 짐으로 몸은 자꾸 널브러지고 어두워진 밤길을 랜턴 빛에 의지해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올라갔으니, 아빠가 너희들을 만났을 땐 참 반갑기도 했을 거야.

겨우 하룻밤 떨어져 있었지만, 버스타고 가서 만난 것도 아니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에서 보는 식구들의 얼굴에서 또 다른 감회가 있었겠지. 그곳에서 저녁을 지어먹고 정리를 하고 나니 밤 열한 시가 다 되었다지?

휴가가 절정일 때라 야영지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로 복작거리는데 아빠는 바닥에 몸 하나 누이고 하늘을 바라보니 별들이 쏟아질 것 같다고 했어. 너희들도 그 총총 박혀있는 별을 봤겠지. 흙만 덮으면 무덤이 따로 없을 정도로 몸이 피곤한데 갑자기 비가 내리는 바람에 텐트 없이 ‘비박’을 하는 사람들은 딱 애벌레 모양이었다고 하더구나.



▲꼬맹이들과 엄마들은 백무동 야영장에서 2차로 올라간 사람들과 연락이 안 되어 애를 태우기도 했지만, 잘 올라갔으리라 믿었단다. 밤이 되자 서늘해지는 기온 때문에 텐트 안으로 들어와 두툼한 옷을 껴입고 누워 있자니 잠이 어디 쉽게 오겠니?
텐트 안은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 사랑방이 되었어. 간간이 텐트 위로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바로 옆에서 내달리는 것 같았지.

셋째날 아침이 되자 우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찍 일어나 밥을 지어먹고 그릇을 말끔히 씻고 차 한 잔을 하고 나니 그때가 일곱 시였단다. 올라간 사람들은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했는데, 날씨가 계속 흐리고 비는 오락가락 하는 중에 정말 해맞이를 했을까?

조금 있으면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와 점심을 같이 먹을 생각으로 백무동에서 야영했던 사람들은 짐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어. 일정표에는 근사한 점심을 먹는다고 했는데 이곳에 남아있는 우리들은 그 점심이 어떤 메뉴일까 궁금했지.

그런데 점심때가 한참 지나고도 사람들은 내려올 줄을 몰랐어. 이따금씩 배낭에 짐을 잔뜩 꾸리고 내려오는 학생들이 보이면 혹시 쟤네들이 아닐까 유심히 쳐다보기도 했단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핸드폰으로는 밧데리가 다 떨어지거나 통화권을 벗어났다 해서 더 이상 통화는 되지 않았어. 혹시 공중전화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입장료 받는 곳에 있는 공중전화기가 있는 곳까지 내리락 오르락 했는데 같은 지리산에 있으면서도 결국은 통화를 못했구나.

백무동 야영장에 쳤던 텐트 두 개를 다 걷고 우리는 돗자리 하나를 깔았어. 사람들이 내려오는 대로 바로 움직이려고 말이야. 근데 감감 무소식이다보니 아무래도 쌓던 짐을 다시 풀어 밥을 해먹어야 했단다. 모두 배가 고팠고 올라간 사람들이 늦어질 것 같았어. 때가 훨씬 지났으니 그곳 산에서도 점심을 해먹겠구나 생각했거든.

조금 남은 오이지무침과 깻잎김치, 구운 김을 찬밥과 함께 조금씩 나눠먹고 우리는 산에 오른 가족들을 생각했단다. 다들 아무 사고 없이 내려오라고 마음의 기도를 하면서.

오후 다섯 시가 훨씬 지나 여섯시가 다 될 때, 낯익은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어. 상규보다 한 학년이 위인 6학년 아이와 그 아빠가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우리는 너무 반갑고 이제 다들 내려오는구나 생각했지. 아이는 두 볼이 붉다 못해 검붉은 빛이었어. 오는 길에 너무 더워 계곡에 몸을 담그면서 왔는지 온몸이 흥건하게 젖어 있고 운동화 앞 축은 다 해져있었단다. 지쳐서 쓰러질 듯한 얼굴에 눈빛만 반짝이는 아이가 너희들 모습 같아서 울컥 목이 메이더구나.

“정말 힘들었는데 천왕봉까지 다들 올라갔어요!”


▲백무동에서 남아 산에 오른 사람들을 기다리던 우리들은 궁금했던 식구들 소식을 듣고 산행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만 할 뿐이었어. 남아 있던 일행은 하산하는 길을 달리해 내려간다고 소식을 전해들었지. 혹시나 식구들을 산에서 볼까 했던 마음을 접고 우리는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바로 대전으로 향했단다. 집에 오니 밤 열한시 반, 거실에는 식구들이 떠나기 전의 자취들이 그대로 있건만 이제 고요히 가라앉은 집안 공기가 곧 지리산의 굳센 포효로 바뀔 것 같은 기분이었어.

새벽 한 시, 현관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너희들과 아빠의 의기에 찬 기운이 온 몸에 확 끼치며 야윈 듯 검붉게 타버린 얼굴과 눈빛을 보는 순간, 엄마는 ‘너희들이 정말 해냈구나!’ 하며 박수를 치는 심정으로 너희들을 맞았단다. 탄성과 신음이 겹쳐 나오는 너희들의 얘기는 너무나 많고 벅차서 엄마도 천왕봉 너머까지 지리산 종주를 한 것 같았어.

십년 동안 오를 산길을 단 사흘에 끝낸 것 같다는 슬비는 내내 신고 있던 등산화를 벗으니 발이 너무 가벼워 날아갈 듯 하다고 했지. 상규도 이제 계족산이나 계룡산은 아주 잘 갈 것 같다고 했어. 상규는 아직도 등에 배낭을 짊어진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더구나.



▲처음에 낯설고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 지금 그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특별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힘들었던 기억 너머로 서로에게 힘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겠지. 어떤 것이든 정말 큰 것을 겪고 경험하고 나면 살면서 온갖 걱정이나 근심은 훨씬 수월하게 넘길 수 있는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상을 떨어져 나와 보니 밖의 생활이 얼마나 고단한지, 내 집에서의 휴식이 얼마나 달콤한지 이제야 알겠다는 너희들, 특히 일행 중에서 제일 어린 상규가 지리산 종주를 했다는 것이 이 엄마는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지리산 종주를 무사히 마친 이 여름이 너희들 인생을 비추는 아름다운 빛이 되길 빈다!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이 글은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지리산을 종주했던 여러분들을 격려하면서 편지형식으로 쓴 기행문입니다.


출처 : OhmyNews 한미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