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게시판 ▶ 세상보기
세상보기

제목청각장애 발레리나, 다시 나래펴다2007-03-08
작성자관리자
첨부파일1
첨부파일2
첨부파일3
첨부파일4
첨부파일5
강진희씨, 창작발레단 만들어 단장으로 활동
한때는 ‘프리마돈나’로 활약 세상의 따가운 시선에 좌절 칩거 장애인 후배에 희망주고자 재기

그녀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발레를 멈출 수는 없었다. 모든 음(音)이 완벽하게 차단된 고요의 세계에서 춤추던 ‘청각 장애인 발레리나’ 강진희(35)씨. 대학 무용과를 나와 프리마돈나로 활약하다가 2004년 8월 어느 날 돌연 무대에서 사라졌던 그녀가 긴 휴식에 마침표를 찍고 최근 재기의 날갯짓을 시작했다.지난달 중순 경기도 양주 자택 근처 교회에 자신이 창단한 창작발레단인 ‘조이 발레 선교단’ 사무실 겸 연습실을 차리고 발레단장으로 본격 활동을 개시했다. 공개 오디션을 통해 20대 발레리나 2명(비장애인)도 단원으로 뽑았다. 인원을 늘려 올해부터는 공연도 시작할 예정이다.

다시 춤추는 그녀를 만나러 자택이 있는 경기도 양주를 찾아갔다. 물 빠진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평범한 30대 주부 차림새였지만 긴 두 팔을 우아하게 내저으며 발레 동작을 취할 땐 무대에 선 프리마돈나 그대로였다.

한양대 무용과를 나와 ‘조승미 발레단’의 프리마돈나로 활동해 오던 그녀가 발레 슈즈를 벗었던 건 장애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잘못된 시선 때문이었다. 발음을 정확히 하기 어려운 그녀는 수화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아픈 기억의 실타래를 띄엄띄엄 풀어놓았다. “절 싫어한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춤을 잘 춰도 ‘쟤…는…청각 장애인…이야’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상을 타도 (잘해서 수상한 게 아니라) 안 들리는데 춤을 추니…까 받은 거야’ 했고요…. 더…이상은 제가… 설 자리가 없어서….”

무대를 떠난 뒤엔 나사렛대학원 사회복지과에 입학해 공부하며 딸(11)을 키우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보고 춤 추고 싶다고 느낀 장애인 후배도 있었을 텐데…. 혹시 그들이 나 때문에 절망해 포기하면 어쩌나…. 그래서 다시 시작했어요.”

스스로의 말대로 그녀는 같은 처지의 후배들에게 희망을 준 여성이다. 태어날때부터 자동차 경적 소리(100㏈)조차 못 듣는 그녀는 중1 때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발레를 시작했다. “보청기를 끼면 ‘아, 곡이 시작됐구나…끝났구나…’ 강약 정도는 느끼죠.” 속으로 하나, 둘, 셋 세면 턴하고, 얼마쯤 쉬다가 점프 하는 식으로 빠르기에 적응했다. 발레 공연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리듬을 ‘눈으로 느꼈다’.

무대에서 박수 소리를 음악 소리로 착각하거나 음악이 끊긴 줄 모르고 계속 춤춘 일도 있었다. 그럴수록 강씨는 하루 10시간씩 연습에 몰두했다. 발톱 열 개가 빠져 나갔다. 같은 청각 장애인이면서 화가인 남편이 우유 배달까지 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춤춘 끝에 무대 위에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녀는 요즘 아침마다 연습실에 ‘출근’한다. 20여 년간 반복해온 동작들을 하나씩 되풀이하다 보면 몸이 어느새 희미해졌던 발레의 기억을 되찾아간다. “‘이걸 왜…시작했지’ 하는 생각,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다시 하는 건 세상에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 제 유일한 ‘무기’는 이것 하나뿐이니까요. 이젠 죽을… 때까지 맘껏 춤추고 싶어요.”

▲ 2004년 8월 어느 날, 돌연 무대에서 사라졌던 그녀가 긴 휴식에 마침표를 찍고 재기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강씨는 지난해 4월부터 ‘조이 발레 선교단’을 직접 창단해 본격적인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공개 오디션을 통해 모집한 20대 발레리나 2명(비장애인) 등 총 3명뿐인 소규모 창작 발레단이지만 인원을 늘려 올해부턴 공연을 시작할 예정.

출처 : 조선일보/주완중 기자, 오윤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