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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위대한 탕녀 클레오파트라2005-08-16
작성자즐거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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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어도 로마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

다.’ 이는 그녀의 미모와 야심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녀가 그다지 미인은

아니었다 한다. 그런데 어떻게 로마의 황제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를 사랑했을까? 그녀는 성적인 면에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

큼 성적매력을 지닌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를 사랑한 남자의 운명은 쾌락

을 향유한 대가로 무너지고 말았다. 위대한 탕녀. 파렴치한 여인. 음탕한

여인. 운명의 신이 내린 괴물 등등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기록은 증오심

을 갖은 로마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비판되었다. 그들은 왜 그토록 클레오

파트라를 비난했을까? 그것은 로마의 황제 안토니우스가 그녀에게 빠져

로마의 자존심을 버리고 이집트 관습과 복장을 따른 점과 로마가 지배하

던 황금알을 낳는 식민지를 타국 여인의 침대 속으로 고스란히 바쳤기 때

문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러 화려하게 치장한 배를 타

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는 장면을 연상해보면 배는 황

금빛이요 바람을 받아 부풀어 오른 자주색의 돛과 갑판의 중앙에 금실로

수놓은 장막이 좌우로 열려 있었고 그 아래 옥좌에 사랑의 여신 비너스

로 분장한 클레오파트라가 요염한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노예들은 은으

로 만든 노를 저으며 피리와 하프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고 배안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그런 경이로움에 정신이 나

간 안토니우스는 그녀에게 넋을 잃었다. 이렇듯 클레오파트라는 완벽한

연출을 하여 안토니우스에게 접근했으며 안토니우스를 만난 그녀는 그

의 마음을 사로잡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혹시 권태를 느낄

까봐 새로운 성적 쾌락을 연구하여 성적인 수단으로 사랑을 잡는데 성공

했다. 더욱이 안토니우스에겐 옥타비아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클레오파트

라보다 백배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버리고 왜 안토니우스는 클

레오파트라를 사랑했을까? 그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성적 매력과

뛰어난 화술로 안토니우스의 넋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로마 여성의 미

덕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정숙한 옥타비아가 성적 매력으로 무장한 먼

동방의 여왕의 적수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은 문헌을 통

해 그 같은 글들을 쏟아 부었다. 옥타비아 여왕은 클레오파트라의 노예

로 전락한 남편을 로마의 수치로 생각하며 두 남녀를 국가의 명예를 더럽

힌 탕아와 국제적인 창녀로 매도한 후 남편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을 벌

여 승리했고 벼랑 끝에 몰린 안토니우스는 자결하였다. 결국 12년간 클레

오파트라에게 불같은 사랑을 한 안토니우스는 사랑의 대가로 자신의 목

숨을 지불해야 했다. 안토니우스의 묘를 참배한 뒤 그녀는 바로 최후를

맞았다. 문헌에는 그녀가 독사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추정하면서 그녀의

죽음을 독사에 관한 성적인 면으로 부각 시키며 16세기 이후 화가들은 독

사가 벌거벗은 여왕의 젖가슴을 무는 자극적인 장면을 선택해 화폭에 담

기를 즐겼다. 즉,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에로티

시즘이 강하게 풍겨 바로크 시대는 이처럼 죽음과 성을 같이 표현하는 경

우가 많았고 대표적인 예가 클레오파트라였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이

집트를 위한 그녀의 몸부림이었으며 유혹에 빠진 황제의 몰락을 비난하

기 전에 자신의 매력을 이용하여 당시의 이집트를 강국으로 만든 여인에

게 그 누구도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된다. 이집트의 국민들에게는 막

강한 부를 축척시킨 영웅적인 여왕이 아니었을까?

출처: <남녀의 성과 사랑> - LJ 비뇨기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