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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침대와 온돌2007-02-23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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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금 춘제(春節)의 막바지 연휴에 와 있다. 춘제는 여러모로 한국의 설과 닮은꼴이다. 민족대이동을 연상케 하는 춘윈(春運)이 있고, 한 해의 건강과 복을 축원하는 덕담이 있다. 아랫사람에게 건내는 야쑤이첸(壓歲錢)은 세뱃돈에 해당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다. 세배하는 방법이다. 중국사람들은 엎드려 절하지 않는다. 선 채로 두 손을 모아 복을 기원하면 그만이다.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중국의 침대와 한국의 온돌, 두 주거양식의 차이가 세배방식의 차이를 만드는 데 일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문호 린위탕(林語堂)은 “침상에서 발을 높이 올려놓고 자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온돌생활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 적어도 장년층을 넘긴 한국인들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 문구다. 침상 대신 온돌 구들장 아랫목에 배를 깔고 드러누워야 했으니까.

중국의 침대문화는 서양의 그것 만큼이나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이 침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이라고 한다. 따뜻한 허난(河南)과 후베이(湖北) 등 중원과 남부를 중심으로 침대문화를 이끌어온 것은 주거문화사적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침대는 신분을 구분짓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17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시대의 명품인 ‘웨어의 거대한 침대(great bed of ware)’의 길이에는 못미치더라도 쯔진청(紫禁城) 자오타이뎬(交泰殿) 안쪽에서는 황후의 위세를 짐작케 하는 크고 화려한 침상을 구경할 수 있다.

베이징(北京) 시내 전통가옥인 쓰허위안(四合院)에도, 골목길 후퉁(胡同)에 자리잡은 평범한 집에도 침대는 없어서는 안될 품목이다. 홍콩이나 상하이(上海) 같은 대도시 부호들의 저택에도 내륙 벽촌의 다 쓰러져가는 가옥 안에서도 침대는 어김 없이 발견된다. 부자들의 침대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섬세한 부조로 장식돼 있다면 농촌의 침대는 때로 얼룩진 담요에 덮인 채 흙 바닥 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온돌로 대표되는 한국의 주거문화는 이와는 판이하다. 온돌은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동북부에서 사용되다가 4∼5세기경 고구려와 백제 쪽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발해 궁궐터나 고구려 벽화 등에서 온돌양식의 역사적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불로 방바닥을 지진 뒤 온기와 열을 전도시켜 방 전체를 훈훈하게 해주는 온돌은 공동주택이 즐비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고대 주거지의 가람배치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고려 중·후기에 전면온돌이 등장했고 아궁이가 방 안에서 밖으로 분리돼 나왔다. 일과 놀이가 구분되고 가사노동의 상당부분이 방 밖으로 이전되면서 방은 쉼터로 변모했다. 명절엔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안방이나 건넌방 구들장에 발바닥을 맞대고 앉아 온돌의 온기를 느끼며 음식을 함께 먹고 윷놀이 같은 놀이를 즐긴다.

문화의 차이는 생활양식의 차이를 낳고 정서와 가치관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랜 침대생활에 따른 입식(立式)문화를 채용하는 중국인들의 경우 부자의 저택이나 빈촌의 가옥 어딜 둘러봐도 엎드려 절을 할 환경을 찾기 힘들다. 반면 한국의 온돌은 좌식(座式)문화 나아가서는 와식(臥式)문화를 가져왔다. 방에는 상석도 있고 하석도 있어서 앉은 위치에 따라 집안의 서열이 갈렸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들이 아랫목의 집안 어른들에게 절을 하고 덕담을 듣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전통으로 자리잡게 됐다.

오가는 것이 인사와 세뱃돈 만은 아니다. 확실히 한국의 설은 중국의 춘제와는 달리 ‘온돌의 훈기’를 나누는 그 무엇이 있다. 한국인들에게 체질처럼 각인된 공동체적 심성과 중국인들에게 천성처럼 치부되는 개인주의적 성향도 온돌과 침대라는 주거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정치행위나 경제활동에 있어 한국인에게는 팀워크가, 중국인에게는 개인 플레이가 작동원리가 되고 있는 건 어떤가. 폭죽소리가 유난히도 요란한 22일 밤, 춘제 연휴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단상(斷想)들이다.

출처 :문화일보 허민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