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내폭력 기승
“기숙사 앞으로 집합”
3월 어느 날 새벽, 삼수 끝에 Y대학에 막 입학한 여학생 윤모(23)씨와 동기들은 선배 호출을 받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모이자, 선배는 차갑게 내뱉었다. “엎드려 뻗쳐”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엎드려뻗쳐’는 새벽 내내 이어졌다. 심지어 돌아가며 뺨까지 맞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기 중 하나가 선배 문자에 답장을 늦게 보냈기 때문이랍니다. 그게 맞을 이유인가요?” 윤씨는 어이없어 했다. 이후로도 선배 폭력은 되풀이 됐고, 윤씨는 한 학기 만에 자퇴를 선택했다.
교내 폭력이 대학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선후배간 위계질서라는 미명 아래 각종 폭력·얼차려가 버젓이 이뤄진다. 대학 내 폭력은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예·체능대뿐 아니라 인문대, 공대 등 일반 대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C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모(여·26)씨는 새내기배움터, 일명 ‘오티’에서 따귀를 맞은 경험이 있다. 선배가 주는 술을 거절해서다. 이씨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냐고 하더라구요. 원래 오티 술자리는 강압적인 자리인지라 딱 한 번이라 생각하고 참았어요”라고 했다. 지난해 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한 J대학 최모(22)씨는 조별 과제를 하던 중 괜히 잘난 척 한다는 이유로 선배에게 구타 당했다. 최씨는 학업 성적조차 선배보다 못나야 하냐며 분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학생은 의외로 드물다. 피해 학생 대다수가 선배들의 폭력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 동아리 신고식에서 기합을 받았던 K대학 사회복지학과 김모(여·24)씨는 “신고식에서 얼차려는 당연하다는 분위기”라며 “다른 데 가서 말했다가는 선배는 물론 동기 사이에서 왕따가 된다”고 말했다. 선배로부터 구타를 당했다는 G대학 김모(25)씨도 “과내에서 대인 관계가 단절될까 두려워 어디 가서 말도 못한다”고 털어놨다.
특히 취업이 어려워짐에 따라 선배들과의 인맥 유지를 위해 폭력을 묵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구 D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27)씨는 작년 여름 선배의 발길질에 어깨뼈가 부러지는 중상까지 입었다. 하지만 김씨는 고소하지 않았다. “억울해도 졸업 후 취업 생각하면 참을 수밖에 없어요.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는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선배들 사이에서 매장되면 안되거든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해 학생들 역시 학내 폭력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위계질서를 잡기 위해 어느 정도의 폭력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후배들 사이에서 ‘군기반장’으로 통하는 D대학생 이모(26)씨는 “감정적인 폭력은 문제지만 단체 활동이나 학과행사를 잘 치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씨는 “맞은 애들도 막상 선배가 되면 자기 후배에게 얼차려를 주게 된다”고 덧붙였다.
대학생들이 학내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지만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은 전무한 실정이다.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교육인적자원부 내에 학교폭력대책팀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는 초·중·고등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생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고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한 성인이기 때문에 별도의 전담 기구가 설치되지 않았다”며 “대학 내 학생지원처나 상담센터를 통해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지원처나 학생상담센터에 들어오는 ‘교내 폭력’ 상담 사례는 거의 없다. 폭력 피해자들이 다녔던 대학교 상담센터 9곳을 조사했지만, 단 한 학교에서만 1년에 평균 1~2건의 교내 폭력 상담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학교나 학생회 차원에서 특별히 대책을 모색하는 곳도 찾기 힘들었다. 그저 관행이나 문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교내 성희롱·성추행에 대해서 점점 단호해지는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이준상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피해 학생들은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교내 학생상담센터를 이용할 경우 소문이 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욱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생상담센터보다는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상담소 설치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김영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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