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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삼성 공화국’과 자유민주주의 (2)2005-07-27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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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성의 칼럼<상식론>

삼성이 결정·추구하는 건 우리사회서 무조건 관철돼

1. 기업가와 자유민주주의
한마디로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위해 봉사한다. 이러한 속성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한 것이긴 하겠지만 자유민주주의 하에서는 사회적 ‘특권 계층’이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을 통제하도록 조장된다.

미국의 보수적 정치학자인 린드브롬(Charles Lindblom)은 자신의 ‘정치와 시장’ (Politics and Markets)이라는 저서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서도 자본가가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체제 밑에서 “특권”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설득력 있게 파헤친다.

우선 그는 기업가가 전체 사회의 공공 복지에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회적 생산과 분배의 주요 부분 - 예컨대 일자리, 물가, 생산, 성장, 생활수준, 경제적 안정 등 -에 대한 결정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정부의 주 임무는 이 기업가들이 그들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지원하는 데 있다. 따라서 기업가들에게 특권적 지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린드브롬은 “시장경제체제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도력이 자주 기업의 리더십에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실상 기업가는 정부의 필수적인 협력자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의 권위를 뛰어넘는 권력행사의 실질적인 주체로까지 등장한다. 예컨대 현대 정주영 회장의 이른바 ‘소떼 방북’은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여론형성 영향력 큰 언론·방송 매체도 대기업 장악

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에 가령 ‘언론 재벌’이라든가 ‘재벌 언론’이라는 호칭이 널리 퍼져있는 것처럼 사회의 여론형성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언론 방송 매체 역시 바로 이들 기업가들의 수중에 놓여 있다. 그를 통해 기업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또 그것을 지원하는 세력들의 입장이 대대적으로 또 교묘하게 홍보·선전된다.

기업가가 이러한 막중한 사회적 특권과 영향력을 걸머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인이나 정당은 이들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들 또한 기업가의 충실한 대변자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체제 또는 정치와 경제의 유착 등에 대한 비판은 저지당하거나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대부분의 강제적·규범적 사회통제 수단 역시 거의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적 정치구조는 결국 가진 자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하게 된다. 그러므로 불평등은 선천적이다.

따라서 ‘자유경쟁’과 ‘기회의 균등’이라는 자유민주주의적 구호에도 불구하고(또한 그 때문에)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부추겨지고 깊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억제된다. 왜냐하면 국가 자체가 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2. 삼성의 위력

그런데 삼성의 실체는 과연 어떠한가.
삼성의 매출액은 국가 총생산의 17%에 이른다. 주가총액은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2.4%, 수출 비중은 한국 수출 총액의 20.7%를 차지한다. 삼성이 망하면 한국경제가 쓰러질 수밖에 없는 놀라운 수치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삼성 계열사들은 해당업종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에 걸맞게 삼성의 사회·경제적 기여 또한 막강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국부 증진과 경제성장에 대한 직접적인 기여 말고도 세금 납부를 통한 재정 수입의 확대, 새로운 일자리 창출, 인재의 리쿠르트와 훈련 등만으로도 현대사회에서의 기업의 역할과 책임을 다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이에 걸맞게 우리 사회에서 삼성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교육, 육영, 언론, 출판, 스포츠, 문화, 예술, 환경, 사회봉사, 불우이웃 돕기 등 가히 전 방위적이라 할 수 있다.

한겨레신문의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정계, 관계, 검찰, 법원, 언론 등 우리 사회 엘리트들을 꾸준히 관리하고 있는 곳은 삼성의 구조조정본부다. 이곳은 삼성의 권부다”. 아울러 그는 정부에 대한 삼성의 로비는 재경부와 금융감독당국, 공정거래위원회 등 핵심 경제부처에 집중돼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특히 금융감독원 내부 직원들이 소위 ‘진학반’과 ‘취업반’이라는 두 가지 타입의 부류로 나뉜다는 언급이다. ‘진학반’은 상부와 삼성에 잘 보여 승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고, ‘취업반’은 평소 삼성에 잘 보였다가 기관을 그만 두게 되면 삼성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곽 기자는 밝혔다.

그가 말하는 ‘삼성공화국 현상’이란 것은 “삼성이 추구하고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우리 사회에서 관철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나아가 곽 기자는 삼성의 논리가 우리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다고 역설하며 삼성 이익이 마치 사회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아울러 검찰과 법원, 국회, 정부 부처와 정권 핵심부까지 삼성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 있음을 강하게 비판한다.


최대 광고주인 삼성의 영향력 거의 절대적 수준

삼성이 정치인, 법조계, 학계 등에 대해 자금지원, 골프, 술집접대 등의 방식을 통해 인맥을 구축하고 인맥 구축 실적을 승진에 반영해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언론 현실도 비관적이다.
광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국 언론은 자본의 영향력에 극도로 취약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최대 광고주인 삼성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인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2004년 주요 언론매체에 대한 삼성의 광고비는 3091억 원으로 지상파 텔레비전 광고매출의 9%, 13개 종합·경제지 매출총액의 6.48%에 이르고 있어, 진보적 언론을 포함한 모든 언론들이 삼성에 구속당할 수밖에 없다는 냉소적인 탄식까지 터져 나오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과 조·중·동 등 언론재벌간에 ‘동맹체제’까지 형성되어 있어 삼성의 불법적 노조 금지를 ‘무 노조 경영’이라고 미화하는데 앞장서기도 한다.

지금 우리 국민은 국가권력을 뛰어넘는 이러한 ‘삼성의 위력과 영향력’에 대해 대단히 자조적인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삼성공화국’이라는 호칭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부가 ‘삼성의 하위파트너’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비판이 널리 퍼져 있다.
부의 독점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국가경제와 국민 모두를 위해 지배구조, 경영권 변칙 승계, 무 노조 문제 등, 삼성이 안고 있는 여러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절실히 요구한다.


3. 어떻게 할 것인가

삼성 지도부는 얼마 전 ‘삼성공화국’이나 ‘삼성 싹쓸이론’ 등의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사회적 평가에 대해 대책회의를 가진 후, 자신이 고안해낸 대책을 언론에 공표했다.

삼성은 “단 1%의 반대세력도 포용하는 겸손한 1등이 되겠다”고 몸을 낮추며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상생과 나눔 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다짐했다. 나아가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청취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다양화하고 사회공헌 활동과 협력업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도록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삼성은 아직 현실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이 그저 원론 수준의 대책 제시로 만족하는 눈치다.

도대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재벌 총수들은 주식 1주로 7주의 권리를 행사하며 또 2% 안팎의 적은 지분으로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그룹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 이유를 국민들이 애타게 알고 싶어하는데도 금감위나 재경부는 삼성의 경영권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러한 요인이 ‘삼성공화국’, ‘삼성제국’이란 말을 나돌게 하는 근본 이유일 것이다.


정부, 국회서 재검토 조건으로 금융산업 구조개선법 의결

지난 7월 5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삼성 봐주기’ 지적을 받고 있는 정부의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 처리가 큰 논란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삼성공화국’ 파문의 불길이 국무회의까지 번진 셈이다. 금산법 개정안은 형식상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나 특혜 논란을 빚고 있는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국회 심의과정에서 재검토한다는 조건이 붙은 채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어느 정부 고위관계자가 7일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금산법 개정안 논의를 앞두고 갑자기 ‘일부 부칙조항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계열사 지분 불법보유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이 있다’며, 한덕수 재경부 장관과 윤증현 금감위원장에게 설명을 지시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두 사람이 제대로 설명을 못하자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에게 설명하도록 했고, 이 위원장은 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재경부 실무진들이 해명성 설명을 덧붙이긴 했으나 노 대통령은 “무슨 일 처리를 이렇게 하느냐”고 역정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특정 재벌에 대한 특혜 시비가 제기되는 민감한 법안에 대해 관련 부처간에 충분한 사전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국무회에서까지 논란이 이어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이해찬 국무총리가 나서서 “국무회의 상정 안건이 부결된 전례가 없다”며, “이미 박영선 의원이 별도 개정안을 제출하고 참여연대에서 입법청원을 한만큼 국회 심의과정에서 재검토하자”고 제안해 가까스로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정부의 한 관계자가 “금산법 개정안이 형식상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나 내용적으로는 부결된 것과 같고 잘해야 조건부 통과로 보면 된다”면서, “국무회의에 상정되는 법률안건은 사전에 관련부처와 각계 전문가 사이에 충분히 논의된 다음 통과의례로 다뤄지는데, 이번 금산법 개정안은 재경부에서 뒤늦게 부칙조항을 신설하는 바람에 관련 국무위원들조차 내용을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는 보도가 뒤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 개정안은 부칙 각 조항마다 삼성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아니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삼성의 요구를 조목조목 그대로 ‘받아쓰기’한 것과 다름없다”는 혹독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테면 정부가 삼성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유지와 경영권 보호를 위해 총대를 맨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인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개정안이 9월 정기국회에서 심의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재경부 개정안을 모두 거부해야 할 것이다. 국회마저 삼성의 권력 앞에 굴복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그를 통해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정치’를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재벌과 국가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헌법 제119조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제119조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공의 목적을 위한 국가의 경제 개입은 헌법적으로 정당하다는 말이다.


개인에 경제력 집중되면 국가통제마저 어려워져

이러한 헌법 정신을 살려 우리의 경제정책은 국민복지를 꾸준히 증대하고, 국민경제의 소득에 대해 모든 국민이 공정히 참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모든 국민들이 비인간적인 예속과 착취가 없는 자유 속에서의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조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히 재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왜냐하면 경제력의 집중은 그것이 사적 개인의 손에 놓여질 경우 국가의 통제를 무색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사적 기업의 정치적 힘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엄청난 부와 수많은 노동자를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은 단순한 경제행위를 넘어서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을 예속시킬 힘까지 장악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대기업이 존재하는 곳에는 자유경쟁이 발붙일 틈을 찾지 못한다. 나아가 이러한 대기업의 힘은 급기야는 국가권력의 탈취로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적 원칙의 훼손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기업의 힘을 억제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경제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와 사회가 강력한 대기업의 제물로 전락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특히 ‘삼성공화국’이 안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효율적인 국가의 개입과 삼성 내 노동조합 건설을 촉구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던 리처드 켈리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몹시 중요하기 때문에 시장의 자발적인 활동에만 맡겨둘 수 없다”고 역설한 적이 있다. 시장이 개인이나 집단의 독점적 지배 하에 놓이는 경우 국가로부터의 적절한 개입은 필수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능하다면 경쟁을, 필요하다면 통제를!’, 이것이 우리 사회의 경제 구호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치인들 역시 기업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수성가’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정치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삼성을 개혁함으로써 삼성이 갖고 있는 성장의 견인차로서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를 발전시켜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삼성 죽이기’가 아니라 ‘국민 살리기’다.(끝)

◎ 박호성 교수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민주화기념사업회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출처:국정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