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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5살 ‘구두닦이’ 아가씨 “사는게 즐거워요”2007-01-09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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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서 컴퓨터 전공한 윤지희씨, 아버지 구둣방에 ‘입사’ 아버지 돕던 어머니 쓰러지자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합류
“어떻게 하는지 보여드릴까요?”

서울 중앙우체국 바로 옆 1평 남짓한 구둣방. 윤지희(여·25)씨가 목장갑을 낀다. 솔에 구두약을 묻혀 구두를 쓱쓱 문지르자 낡아 떨어진 구두가 5분 안에 ‘반짝반짝’ 새 구두. 이 아가씨, 예사롭지 않다.

“4단계가 있어요. 먼저 솔로 약을 칠하고요. 다음에 천으로 구두에 있는 때를 빼요. 다시 손으로 약을 바르고, 열심히 문지르는 거죠. 손으로 해야 약이 잘 먹고 광이 나거든요.” 수줍게 웃는 이 여성은 구둣방 ‘차기 사장’이다. 아버지가 30여 년간 고집스레 지켜온 구둣방. 딸 지희씨는 어렸을 때부터 어깨 너머로 일하는 아버지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런 윤씨가 아버지를 이어 구두미화원이 된 건 지난해 12월이다. 아버지를 돕던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궁 안에 물혹이 커져 대수술을 받았다. “감기 한번 안 걸리던 엄마였는데 수술이라니…. 충격이었죠. 그때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가족이 우선이란 걸.”


당장 엄마를 대신해 아빠를 도울 사람이 없자 딸은 일말의 고민 없이 2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날로 그는 아버지의 든든한 사업파트너가 됐다. 물론 주위 친구들은 말렸다. “아직도 친구들은 저보고 미쳤다고들 해요” 하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해요. 사람 만나는 이 일이 제 적성에도 잘 맞거든요.” 사실 윤씨는 만능 재주꾼이다. 대학에서는 컴퓨터를 전공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중소기업에서 근무도 했다. 회사일 말고도 안 해본 게 없다. 6개월 동안 남대문 한복판에서 ‘골라골라~’를 외치며 옷도 팔아봤다.

현재 윤씨 가족은 인천 부평구의 작은 집에 살고 있지만 고통스러운 시절도 겪었다. 6살 때 달동네에서 힘겹게 살던 기억이 머리에 박혀 있다. 그 고통을 알기에 고생한 아버지에 대한 딸의 존경심은 남다르다.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없어요. 지난 30년을 아빠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5시면 구둣방으로 출근하셨죠. 술도 안 하세요.” 아버지는 늘 딸이 안쓰럽고 또 대견스럽다. “기특하죠. 요즘 젊은 사람들 이런 일 하려고 하나요? 빨리 아이 엄마가 나아야 할 텐데….” 25살 손톱에 매니큐어 대신 검은 구두약을 칠하는 윤씨. 힘든 일도 많았지만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김지영 인턴기자(숙명여대 경영행정학과 3년)]

[김지현 인턴기자(고려대 정외과 3년)]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