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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특파원칼럼] 그 집 팔아 일본에서 산다면2006-11-16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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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백만(李百萬)씨는 도쿄로 이사오는 것이 옳다. 강남 주민이 서민 흉내냈다고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떠나는 것이 화끈하다. 일단 55평 강남 아파트를 20억원에 파는 것이다. 솔선수범하면 이백만씨 말대로 “부동산정책이 꼭 성공”할 수도 있다. 20억원을 엔화로 바꾸면 2억5000만엔이 손에 들어온다. 이 돈을 싸들고 표표히 짐을 꾸리면 된다.

선진국이라 생활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두려움은 깨끗이 잊어도 좋다. 우선 강남구에 버금가는 도쿄 미나토(港)구에 맨션을 산다. 우연히 강남(江南)의 일본 발음과 똑같은 재개발지역 고난(港南)에 전용 면적 145㎡짜리 매물이 나와 있다. 이백만씨가 살던 아파트 전용면적과 같다. 작년 1월에 준공했으니 새집이다.

이 집값이 1억2980만엔이다. 서울과 도쿄에서 비슷한 집을 팔고 샀더니 도쿄에선 1억2020만엔이 남은 것이다. 앞으로 이백만씨의 삶은 더 윤택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엔 강남 부자들이 가장 많이 몰고 다닌다는 ‘렉서스’ 최고급 모델을 보란 듯 뽑는 것이다. 한국 샐러리맨은 꿈도 못꾸는 1억3000만원(1625만엔)짜리 자동차다. 똑같은 자동차를 도쿄에선 965만엔에 살 수 있다. 옵션을 확 줄이면 770만엔에도 산다.

내친 김에 가루이자와(輕井澤)란 곳에 별장까지 장만하는 것이 어떨까. 가루이자와는 일본 재벌들의 유명한 별장지다. 소니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井深大)도 이곳 별장에서 여생을 보냈다. 가루이자와에 지금 매물로 나와 있는 대지 151평, 건평(전용면적) 40평형 별장값이 3200만엔이다. 도쿄 인근 지바(千葉)에 근사한 골프장 회원권을 100만엔에 구입해도 폼나지 않는가. 이렇게 미나토구 맨션, 최고급 렉서스, 가루이자와 별장, 골프장 회원권을 사들여도 도쿄에선 7755만엔이 남았다.

이제 남은 돈을 까먹으면서 살면 된다. 2004년 일본 총무성이 ‘부부가 노후에 여유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돈’에 대해 조사한 일이 있다. 결과는 월 37만9000엔이었다. 이백만씨는 남은 돈으로 선진국에서 17년을 여유 있게 지낼 수 있다.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면 이후에도 20년은 걱정 없다.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처럼 ‘외로움’을 걱정 안 해도 된다. 목적은 잘 모르겠지만 여·야당 국회의원들은 물론 대통령 선거 후보들까지 늘 드나드는 곳이 도쿄다. 그들이 오면 때때로 한국 룸살롱이 밀집한 아카사카에서 진한 술판도 벌어진다. 아무리 망신당하고 물러났다고 청와대 홍보수석까지 지낸 분을 왕따시킬까.

더 신나는 건 도쿄엔 사사건건 정부를 씹어대는 언론이 없다는 점이다. 미나토구에 전 재산 몽땅 쏟아 붓는 이상한 국민들도 없다. 물론 사사건건 세상과 거꾸로 움직이는 정부도 없다. 미나토구 주민이라고, 렉서스를 몰고 다닌다고, 가루이자와 별장과 골프장 회원권을 가졌다고 거품을 무는 정부도 없다. 그보다 도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존재는 미나토구에 살면서 “서민들은 집 사지 말라”고 컨설팅하는 간 덩어리 큰 공무원이다.

대신 도쿄에는 거품 붕괴의 쓰디쓴 교훈이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주머니에 돈이 넘쳐도 사람 사는 집을 두 배, 세 배 띄우지 못한다. 사람이 타는 자동차에 폭리를 취하지도 못한다. 경제 심리를 혹 잘못 건드릴까 정부는 전후 최장기 경기 확대 기록을 큰소리로 자랑도 못한다.

나라를 두 쪽 낼까 감히 양극화 갈등을 충동질도 못한다. 도쿄에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국민과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부가 있다. 부동산시장은 이들 사이에서 풍요로운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백만씨는 도쿄로 이사오는 것이 옳다.

출처 : 조선일보 선우정·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