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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홀로’ 그리고 ‘함께’ 사는 집2006-11-15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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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삶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피를 나눈 가족처럼 사귀고, 이해타산이 맞지 않아도 아낌없이 나누고, 자신보다 못한 이를 귀하게 섬기는 삶입니다.

저에게는 민들레 식구들이 있습니다. 민들레 식구들은 민들레국수집의 VIP 손님이었습니다. 허름한 방 하나를 세 얻을 만하면 우리 손님들 중에서 민들레 식구가 되실 분을 한 분씩 늘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민들레 식구들이 어느새 열댓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민들레 식구들은 따로 따로 삽니다. 오랜 노숙생활로 여럿이 함께 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들레 식구들도 이웃을 품어줄 여유가 생기면 서로 사귀고 나누고 섬기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자립을 합니다.

‘홀로’ 그리고 ‘함께’ 살 수 있는 느슨한 민들레 집도 있습니다. 인천 연수구 옥련동에 있는 민들레 집입니다. 2005년 5월에 아주 고마운 분으로부터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허락을 얻었습니다. 재개발이 되면 집을 비워주기로 하고 방이 세 개나 있는 독채를 얻었습니다. 산 중턱에 텃밭도 딸려 있습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아주 전망 좋은 집입니다.

옥련동 민들레 집에는 각자의 개인 방이 있습니다. 공동으로 할 일은 서로 나누어서 합니다.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고참인 선호씨(39)는 텃밭을 가꾸고, 강아지를 돌보고, 정신 장애가 있는 정규씨와 뇌병변 장애가 있는 영길씨가 약을 잘 먹는지, 상태는 어떤지 보살펴줍니다.

정신 장애 3급인 정규씨(52)는 십수년을 정신병원에서 지냈습니다. 민들레 식구가 된 지 한 해가 되었습니다. 민들레 식구들의 도움으로 아주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5월부터는 민들레국수집 주방보조로 일을 합니다. 맛있는 반찬을 나르고 담배와 용돈도 나눠주는 민들레 집의 재정담당이기도 합니다. 아침 저녁 약을 먹을 때는 꼭 선호씨가 있는 데서 약을 먹습니다.

요즘이 생애에서 제일 행복하다며 웃는 얼굴이 어찌나 맑고 천진스러운지 아기 같습니다. 새 식구인 영길씨(47)는 민들레 집의 웃음보따리입니다. 식사와 청소를 도맡아서 합니다. 그런데 오래 전의 교통사고로 기억이 깜빡거립니다. 그래서 장애진단을 받아보도록 했더니 뇌병변 장애 6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기초생활수급권 신청을 해 놓았습니다. 서로 사귀고 나누고 섬기기. 생애에 이처럼 행복했던 때가 없었다는 옥련동 민들레 식구들의 웃음 가득한 이야기에서 삶의 위기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봅니다.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올림〉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