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간첩' 국정원 내부 만류에도 영장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의 사퇴를 둘러싼 '음모론' '외압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청와대 일부 참모진이 386 간첩사건 수사의 파장을 의식해 김 원장의 퇴진을 밀어붙였다는 게 음모론의 핵심이다. 청와대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원장은 왜 이 시점에 간첩사건을 터트렸을까. 국정원 핵심 관계자는 30일 "김 원장이 신념에 따라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지난해 8월부터 1년 넘게 내사(內査)해 오면서 간첩 사건이란 확신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영장청구 시점을 놓고도 내부에서 '시기상조론'이 나왔다.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수사를 전담해온 대공 수사라인을 중심으로 "좀 더 시간을 두고 동태를 면밀히 살피면서 관련자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을 때 영장을 청구하자"는 주장을 내놨다. 하지만 김 원장은"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영장청구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주변에선 북한의 핵실험(10월 9일)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김 원장이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정치권 일각에선 미국 책임론이 나오고, 국민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고 전했다. 간부회의 석상에서도 여러 번 "이전에는 몰랐는데 국정원에 와보니 우리 사회의 실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부 내에, 아니 국정원 내에도 간첩이 없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고 그는 전했다. 대북 기밀정보를 총괄하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사회 전반의 해이해진 안보의식을 묵과할 수 없다는 나름의 신념이 결국 간첩사건 공론화로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김 원장이 요로를 통해 나름대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 했지만 번번이 좌절되자 극약처방을 쓴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김 원장은 정부.청와대의 대북 온건파와 적잖은 마찰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에서 김 원장은 자신의 교체 가능성을 감지한 것 같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최근 외교안보팀 개편 얘기가 나오면서 일부 언론에 건강 이상설이 보도된 데 대해 불쾌한 심경을 내비쳤다고 한다. 자신이 물러나기 전에 간첩단 사건을 공론화해 국민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국회 국정감사와 맞물려 공론화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란 점도 결심을 앞당긴 한 요인이 됐다고 한다.
김 원장은 청와대가 자신의 사퇴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한 뒤에도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고 있다.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들에겐 "훗날 이 사건이 다시 수사대상이 되더라도 떳떳할 수 있도록 증거를 확보해 철저히 수사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 종교적 신념이 깔렸을 것=김 원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한 측근은 "북한 핵실험을 보는 김 원장의 시각에는 기독교적 소명의식이 배어 있다"며 "386 간첩사건에 대한 김 원장의 단호함에는 그런 종교적 신념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29일 저녁엔 서울중앙지검 안창호 2차장 내외를 서울 내곡동 원장 공관으로 불러 저녁을 같이했다. 김 원장은 안 차장이 방문했을 때 공관 앞마당에 손수 가꾼 조그만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있었다고 한다. 안 차장은 검찰에서 이번 간첩사건을 총괄 지휘하는 현장 지휘관이다. 간첩사건을 지휘하는 국정원과 검찰의 지휘부가 따로 만난 것은 이례적이다.
◆ 김승규 원장=전남 광양 출신으로 미션스쿨인 순천 매산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시 12회(1970년)에 합격한 이후 28년간 검사로 일했다. 지난해 7월 법무부 장관에서 국정원장으로 옮겼다. 하루도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보수 성향의 청렴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출처 : [중앙일보 이정민.김종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