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게시판 ▶ 세상보기
세상보기

제목이외수의 감성편지-누구에게나 아침은 온다2006-10-09
작성자관리자
첨부파일1
첨부파일2
첨부파일3
첨부파일4
첨부파일5
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의 건강 때문에 아내가 엄청난 거금을 들여 의료기기 하나를 사 드렸는데 그만 뜻하지 않은 불상사를 초래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뇌졸중을 앓으셨기 때문에 오른쪽 팔다리의 감각이 매우 둔감하신 편이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온도를 60도로 조정하시고 한 시간 동안이나 방치해 두시는 바람에 결국 아버지께서 다리에 4도 화상을 입으셨다. 상처는 심하게 덧이 나서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피부이식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일단 입원을 시켜드렸다.

“이식수술을 하면 굉장히 아프겠지요. 제가요. 겁쟁이라서요. 안 아프게 수술을 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담당의사가 회진을 올 때마다 아버지는 걱정이 태산 같으시다. 요즘 아버지는 어린애나 다름이 없는 언행을 자주 일삼으신다. 무통주사가 있으니까 아무 걱정 마시라는 의사의 말에도 아버지는 절대로 태산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아내는 간호사 출신이다. 아버지는 의사의 말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도 아내의 말은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에미야, 무통주사를 맞으면 정말로 안 아플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어보신다.

“그럼요. 아버님.”

아내는 무통주사를 신청한 영수증을 보여 드리면서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심을 시켜 드린다. 그래도 아버지는 태산을 완전무결하게 떨쳐 버리지는 못하겠다는 표정이시다. 육이오 때 세우신 전공으로 화랑무공훈장까지 받으신 아버지께서 어린애처럼 심약하신 모습을 보이실 때마다 나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가슴에 얼음물이 고인다.

아내와 여동생을 따라 엘지마트에 쇼핑을 갔다. 한얼이 친구 우영이가 운전을 했다. 입원해 계실 동안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매장은 공설운동장처럼 넓어 보였다.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자 나는 공연히 신바람이 나서 쇼핑용 손수레에 등산용 스테인레스 컵을 두개씩이나 주워담고 스위스제 만능칼도 챙겨넣고 자동차가 고장났을 때 도로에 비치하는 비상용 삼각대도 주워담았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사용하실 포크도 하나 장만하고(아버지는 수족이 불편하셔서 수저를 사용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식사 때는 반드시 포크를 사용하신다) 아내가 쓸만한 주방용품 몇 가지도 챙겨 넣었다.

아내는 여동생 옷을 고르는 일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세상에, 옷을 고르는데 얼마나 시간을 잡아먹는지, 나는 다리가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앉아서 쉴만한 설치물은 보이지 않았다.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네 번이나 담배를 태워야 했다.

“앗, 이외수씨다. 안녕하세요.”

담배를 피우는 동안 쇼핑을 나온 젊은 부부들이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어쩐지 쪽팔린다는 생각이 들어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일도 자제하고 우영이와 쇼핑용 손수레를 밀면서 실내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아이들이 오락 삼매경에 빠져 있는 매장에 당도한다. 각종 프로그램들이 즐비하다. 나는 진얼이에게 핸드폰을 때린다.

오늘도 기쁜 일만 그대에게.

출처: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