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대 역사학과 쑹청유(宋成有) 교수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동북공정’의 역사 인식에 대해 반박한 것은, 지난 2002년 동북공정 시작 이래 고구려사 문제에 관해 침묵하고 있던 중국 역사학계의 주류(主流)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중간의 고대사 문제와 관련 있는 중국 연구자들은 편의상 A그룹(동북 지역 고대사 연구자), B그룹(베이징 국경사 연구자), C그룹(베이징 고대사 연구자)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고구려사 왜곡을 시작한 쪽은 A그룹이었다. 쑨진지(孫進己) 선양(瀋陽) 동아연구중심 주임은 1980년대 초 ‘중국 역사 지도집’으로 유명한 탄지샹(譚其驤)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 제기되자 이를 고구려사 연구에 적용했다.
현재 중국의 판도 안에 있는 모든 역사상의 국가와 민족은 중국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겅톄화(耿鐵華) 퉁화(通化)사범대 교수가 합류했다. 지안(集安) 박물관 부관장 출신인 그는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고구려 왜곡에 나섰다.
그런데 1995년 퉁화에서 ‘제1차 전국 고구려 학술대회’가 열리면서 B그룹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동북공정’의 설계자로 불리는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의 마다정(馬大正)은 원래 전공이 고대사가 아니라 청대사였으나, ‘서북공정’격인 신장·위구르 지역의 중국사 편입을 끝낸 뒤 동북지방 연구로 투입된 ‘국경 공정 전문가’였다.
마다정은 휘하의 리성(厲聲)·리다롱(李大龍) 등과 함께 본격적인 고구려사 왜곡에 착수, 2003년 고구려사 왜곡의 완성으로 평가되는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속론’을 발간했다. 창춘(長春) 동북사범대의 류허우성(劉厚生)·쑨치린(孫啓林)·리더산(李德山)과 조선족 출신 권혁수(權赫秀) 등 A그룹 학자들이 여기에 적극 동참했다. 현재 동북공정의 ‘양대 거두’는 마다정과 겅톄화다.
하지만 ‘동북공정’이 본격화되면서 A그룹의 학자들은 미묘한 분화를 겪었다. 옌볜대 조선족 학자들이 내놓은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은 고구려사가 중국사인 동시에 한국사라는 논리로, 자신들의 이중적 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구려사 왜곡의 원조격인 쑨진지가 2000년 이후 이쪽으로 기울어졌다.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은 “한국 학계의 연구 성과를 접한 뒤 생각이 조금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이론은 쑨진지의 딸 쑨훙(孫泓)과 류쯔민(劉子敏) 옌볜대 교수 등이 계승했으나 동북공정 내에서는 ‘비주류’에 속한다.
한편 정치적 색채가 비교적 엷었던 C그룹의 학자들은 1997년 베이징대가 출간한 ‘중한관계사’ 등에서 계속 “고구려사는 한국사”라는 기존 중국 학계의 정설을 수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2년 국가적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동북공정의 공식 출범 이후에는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동북공정 연구 과제를 맡은 대학들은 대부분 동북 3성 쪽이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한 연구원은 “최근 베이징대에 한국 유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쑹청유 교수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유석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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