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게시판 ▶ 세상보기
세상보기

제목로비스트와 브로커, 그 경계는 ?2006-09-16
작성자관리자
첨부파일1
첨부파일2
첨부파일3
첨부파일4
첨부파일5
그 의원실엔 누가 다녀갔는가 ?

철저히 감춰져서 정당한 민원과 불법 청탁을 구분할 수 없는 국회 로비의 늪… 로비스트 등록과 활동 공개 의무화하는 법안 논의, 공직자 윤리 규정도 바꿔야..

여의도 국회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국회란 온갖 개인과 단체, 법인과 기관의 상충되는 이해와 그 목소리를 조정하는 통로다. 문제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왜 다녀갔는지,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등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진다.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것은 법안과 정책, 이권 등을 둘러싼 뒷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이다. ‘바다이야기’의 불똥이 국회로 튀고 게임업체의 돈으로 외유를 다녀온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과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이 결국 문제가 된 것도 이러한 토양 위에서 빚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고였다.

지역구 브로커, 학교 선배 공무원…

#장면1. ㄱ의원실에 ‘브로커’가 찾아왔다. 한 손엔 민원이 들려 있었다. 교육부가 정이사 체제로 전환해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10여 년째 계속 사학에 관선이사를 파견한다는 내용이었다.

브로커는 사학재단 관계자가 아니었다. 물론 사학의 설립자 쪽에서도 한두 달 새 대여섯 차례나 의원실을 찾아왔다. 의원실은 민원 사항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재단 관계자는 고맙다며 의원실을 다시 찾아와 수백만원의 돈봉투를 건넸다. 의원실은 문제가 될까봐 돈을 돌려줬다. ㄱ의원실엔 이같은 민원인과 브로커들이 하루에 한두 명꼴로 찾아온다.

#장면2. 지난 8월 ㅈ의원실에 건설교통부 공무원이 들렀다. 의원은 “어서 오세요, 형님! 무슨 일이세요?” 하며 반갑게 맞았다. 둘은 학교 선후배로 보였다. 공무원은 부처에 차관직을 하나 늘려야 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의원은 자신도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교통부도 있는데 차관 자리가 하나는 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와드려야죠. 형님, 나중에 메일로 설명서나 하나 보내주시죠.” 손님이 있는 가운데 서서 진행된 두 사람의 얘기는 3분을 넘기지 않았다. 공무원의 손엔 공문서 한 장 들려 있지 않았다.


공무원은 또 다른 의원실을 향해 빠져나갔다.

국회가 ‘불법 로비’의 깊은 늪에 빠져 있다. 장면 1엔 명백히 현행 변호사법에 위배될 만한 브로커의 개입이 있다. 뇌물이 오갈 뻔도 했다. 그렇다고 의원실의 문을 걸어잠근 채 안 만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원의 지역구에서 사업을 하는 업자들은 이런 약점을 잘 이용할 줄 안다. 브로커도 마찬가지다.

칫솔꽂이 제조업체 사장은 최근에 ㄱ의원에게 대형 할인마트에 제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힘을 써달라고 대놓고 요구했다. 자신이 지역구민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청탁을 뿌리쳤지만 지역구 의원이 구민의 ‘표’에 약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업자가 활용했다. 정당한 민원과 청원은 불법 로비나 청탁과 뚜렷한 경계선 없이 늘 국회에 상존한다.


수사권 조정 둘러싼 검·경의 접대


장면2는 불법 로비는 아니지만 정부 부처의 입법부를 향한 부적절한 방식의 로비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정부 부처도 입법에서 예산, 정책, 조직 개편 등 다양한 문제로 입법부를 향한 로비를 하기 마련이다. 통상 연락관을 통해 상시적인 일을 처리하지만 은밀한 협조가 필요할 땐 사적인 네트워크와 술자리를 활용해 공문서 없이 로비가 이뤄진다.

이러한 부적절한 로비는 지난해 있었던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극단적인 양태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검찰과 경찰은 각각 여의도 국회 앞에 1인당 5만원씩 하는 ㄷ한정식집에서 국회 법사위와 행자위 소속 보좌관들을 단체로 불러 두 차례씩 접대했다.

모임엔 매번 10여 명의 보좌관들이 참석했다. “우리 입장을 들어주시면 이것보다 더한 자리도 마련해드리겠습니다”는 약속과 함께 2차, 3차도 이어졌다. 검경 수뇌부들도 개별 의원들을 상대로 전화와 술자리를 통한 로비에 한창 열을 올릴 때였다. 이들은 국가기관끼리의 적절한 업무 협조의 방법과 수준을 넘어선 음성적 방식으로 로비를 펼쳤다.

장면 1, 2의 공통적인 문제는 이런 모든 과정이 제3자에게 하나도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행 법과 제도로는 이같은 기형적인 현상을 막을 방법이 없다. 특히 기업들은 더욱 체계적이면서도 은밀하고 사활적으로 국회와 정부를 향한 로비를 벌인다

(<한겨레21> 제561호 ‘로비스트는 여의도에서 작업 중!’ 참조). 국회의원은 자신이 누구를 만나 뭘 했는지 공개할 의무가 없다. 민원인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음성적인 로비를 줄여나가자는 문제의식들이 로비의 법제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뼈대는 이익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로비활동을 공식화하고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데 있다.

이은영 열린우리당 의원은 9월4일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와 공동으로 ‘로비스트 vs 브로커, 그 경계를 묻다’는 제목으로 로비활동 공개와 로비스트 등록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9월 안으로 발의될 예정인 이 법안은 로비스트의 등록을 의무화하고 그 활동을 공개함으로써 입법활동 및 행정 작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로비스트는 국회사무처에 등록한 뒤 매년 두 차례씩 로비활동 내역과 지출한 비용, 수임한 비용 등을 포함한 활동보고서를 제출해 공개하고, 로비활동시 1회 5만원, 총 20만원이 넘는 금품 및 향응 제공을 할 수 없다.

이에 앞서 이승희 민주당 의원은 비슷한 내용의 ‘로비스트 등록 및 활동 공개에 관한 법률안’을 지난 7월에 발의했으며,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도 ‘외국 대리인 로비활동 공개법’을 발의해 현재 국회 법사위에 올라가 있다.


국회의원 윤리 강령 구속력 떨어져


로비를 하는 쪽뿐만 아니라 받는 쪽에서 접근하는 시각도 필요하다. 로비의 법제화 여부와 별도로 공직자들의 윤리 규정 강화를 통해 불법 로비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의원 윤리 강령과 실천 규범이 제정돼 있지만 구체적이지 못해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윤리 실천규범 제4조, 5조에서는 “국회의원이 직위를 남용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그로 인한 대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거나 “법률안, 기타 의안과 관련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자로부터 금품,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해서는 안 된다”고 막연히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미 하원의 경우엔 한 곳에서 연 100달러가 넘는 선물을 받을 수 없고, 어떤 청탁과 관련해서도 선물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그나마 민주노동당에선 당규를 통해 선출직 공직자 윤리에 관한 규정을 비교적 면밀하게 갖췄다. 당규는 직무와 관련이 있는 자로부터 1회 5만원, 동일인으로부터 연 20만원을 초과하는 금전 및 선물, 향응의 수수를 금지했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회가 불법 로비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로비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출처 : 한겨레 류이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