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때 물리학 낙제… 오기로 물리학과 갔죠”
‘꼴찌에서 노벨상까지’ 고시바 마사토시 박사
사회가 너무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과학자들이 조급함을 가지는 겁니다. 한국의 황우석 교수 사태도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하고요.”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고시바 마사토시(80·일본·사진) 박사.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와 X선을 세계 최초로 관측해 ‘중성미자 천문학’이란 분야를 창시했다. 그는 황우석 사태를 낳은 한국적 특성을 지적하며 “그냥 과학자들을 내버려 두고 넓은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노벨상을 탔지만, 마사토시 박사의 인생은 ‘초고속’ ‘조기’ ‘영재’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도쿄대 물리학과를 꼴찌로 졸업했다. 29명의 동기생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도 뛰어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소아마비에 걸려 수개월 학교를 휴학했고, 그 바람에 고등학교 진학도 1년 늦었다.
그때부터 오른쪽 팔을 쓰지 못한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 고등학생 때부턴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 진학 후에는 직업군인이던 아버지가 공직에서 쫓겨나 중고등학생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그는 “늘 공부할 시간이 모자랐다”고 했다.
그가 물리학을 택한 동기는 오기였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 원서 넣기 1달 전이었지요. 우연히 학교 물리선생님과 제 친구가 하는 얘기를 엿들었습니다. 저에게 물리학 낙제 점수를 주신 선생님이었지요. 그 선생님이 제 친구에게 ‘설마 낙제생인 고시바군이 물리학을 하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말을 들은 고시바 박사는 한 달간 밤낮으로 물리 공부만 했다. 그리고 3개월 뒤, 도쿄대 물리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대학교 3학년 때, 그는 장학금을 받아 볼 생각으로 논문을 쓰기 시작했고, 몇 가지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이 점점 재미있어졌고,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물리학 외길을 걸은 그는 1987년 중성미자 검출에 성공했고, 결국 2002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끝으로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특강을 들었던 한국학생들에게 “즐기라”고 조언했다.
“제 강연에 참석한 한국 학생들을 보고 참 밝고, 건강한 학생들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활발함으로 무슨 일이든 자유롭게, 재미있게만 한다면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출처 : 조선일보 김영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