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하루 3시간만 자면서 법대 4년 내내 장학생으로 다니다가 갑자기 ‘보석 디자이너’가 된 사람은?
월간지 ‘톱클래스’ 10월호는 보석 매장 ‘디미첼리’ 아트디렉터 이정인(35·여)씨를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 떠난 사람’이라 소개한다.
이씨는 부모님 뜻에 따라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뒤 유명한 미국 로스쿨의 입학 허가까지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홍익대 금속공예 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꾼다.
그는 ‘톱클래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고 나니 더욱 당당하게 원하는 일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홍대 대학원에 입학한 뒤 ‘물 만난 고기’였다고 한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이 가능한 공간에서 그는 마음껏 상상하고, 만들어냈다.
‘셀린스 다이어리’라는 이름을 붙인 목걸이와 귀걸이가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었다고 잡지는 전한다. 셀린은 이정인씨 딸의 영어 이름으로, 딸과 함께 하던 인형놀이와 동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날아다니는 신발인 ‘플라잉슈’, 어리버리 악마 ‘미피’, 얄미운 천사 ‘푸피’ 등 주변 캐릭터들까지 세트로 준비해 동화 속 이야기를 재현했다.
현재 ‘셀린스 다이어리’는 미국과 영국 매장에서 이미 마니아층이 형성됐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보석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한 후 외국 업체들로부터 라이선스 제안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씨가 1년 반 전에 국내에 선보인 ‘디미첼리’ 매장은 판매 공간이라기보다 작품 전시 공간에 가깝다고 잡지는 전했다. 대중성보다는 작품성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고, 가격도 비교적 비싸다. 그는 “마치 글을 쓰듯, 보석 디자인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들을 풀어놓는 것”이라고 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라고 답했다. “대학 때까지는 법조인이 되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열심히 공부했지만, 졸업 후에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대학 시절 내내 참 답답했어요. 제가 예쁜 거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이씨는 인터뷰에서 “딸이 법조인이 되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반대와 실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동안은 딸의 전시회를 한번도 찾지 않으셨는데, 요즘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 주신다고 했다.
19살에 만나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동갑내기 남편 김주현씨가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 결혼 9년차인 지금도 매주 화요일을 ‘화이트 데이’로 정해 저녁 시간을 온전히 아내를 위해 쓴다고 한다.
‘법의 지배’보다는 ‘예술의 지배’를 받는 삶. 이정인씨는 그렇게 태어났다.
출처 : 조선일보 원정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