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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노후 준비의 최대 敵은 자녀2006-09-04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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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생활 탐구]

결혼한 자녀에겐 금전적인 지원 끊어야
경매 넘어가는 집 20%가 자식 빚보증
사업자금까지 대주다 길거리 나앉는 은퇴자 급증

자식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한국 부모들은 자녀 교육과 혼사에 억(億)대의 돈을 쏟아 붓는다. 많은 부모들은 이것도 모자라 자녀에게 집을 사주고 사업자금까지 대준다. 세계에서 이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자녀들을 상전처럼 모신 결과 한국 부모들의 노후생활은 파탄나고, 청소년들의 부모 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여성부의 청소년 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 청소년들의 93%가 대학 학자금을 부모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또 87%가 결혼비용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74%는 결혼할 때 부모가 집을 사주거나 전세자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취업 자녀의 용돈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청소년도 76%에 달했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부모 입장에서 볼 때 노후생활의 가장 큰 적(敵)은 자녀”라며 “자녀를 이렇게 기르다간 자녀들의 미래도 망치고 부모들의 노후도 망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공무원사회에선 자녀 때문에 노후가 불행해진 전직 장관들의 얘기가 화제를 모았다. 자식이 사업을 하다 재산을 들어먹는 바람에 A장관은 미국으로 도피성 이주를 했고, B장관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강연회에 자주 나간다는 것이다. 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은 “주변의 눈 때문에 말은 못하고 있으나 자녀문제로 노후가 위기에 빠진 유명 인사들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삼성이 운영하는 수원 ‘노블 카운티’는 상류층의 노후 주거단지로 유명하다. 이곳에선 60대 입주자가 보증금(4억원)을 빼내 아들 사업자금으로 내주었다가 길거리에 나앉는 일이 벌어졌다. 이호갑 상무는 “자식을 외면할 수 없다며 보따리를 싸던 노인의 모습이 생생하다”면서 “아들 사업이 망한 후 사글세 방을 떠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고소득층은 자녀들이 재산을 축내도 버틸 여력이 있지만 저축통장이 얇은 중산층과 서민들은 곧장 길거리로 내몰린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대출금을 갚지 못한 2100건의 주택담보 대출을 경매 처리했다. 이런 경매 물건의 20%가 부모 집을 담보로 자녀가 사업자금을 빌려 쓴 것이라는 은행측의 분석이다.

신한은행 김길래 경매팀장은 “70대 노인들이 은행을 찾아 와 ‘살려 달라’고 읍소(泣訴)하는 것을 보면 부모 노후자금까지 말아먹는 자식들이 너무 밉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이 경매에 부치는 대출 연체 부동산은 연간 40만 건에 달한다. 이 중 20%가 부모 집을 담보로 잡힌 대출이라고 하면 매년 8만명의 은퇴자가 파산 위기에 몰린다는 얘기다.

이런 시대 상황을 맞아 많은 은퇴자들이 자녀로부터 노후자금을 지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퇴직 공무원들이 퇴직금을 연금으로 수령하는 비율이 98년 47%에서 지난해 95%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한꺼번에 목돈을 받았던 선배 공무원들이 자녀들에게 주택구입, 사업자금으로 나눠주다가 금방 거덜이 난 사례를 지켜본 교훈 때문이다.

재산 상황을 숨기는 은퇴자들도 늘고 있다. 은행 PB(프라이빗 뱅킹)센터를 이용하는 재산가들의 경우 절반이상이 예탁잔고증명서를 집 밖에서 수령한다. 자녀들이 재산 상황을 알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나은행 조성욱 PB팀장은 “돈이 있어야 자식에게 대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상속을 사망 직전까지 늦추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금은 해약 불가능한 ‘종신형 즉시연금’에

미국과 유럽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대학 교육을 마칠 때까지만 뒷바라지를 해준다. 자녀 교육을 마친 뒤 벌어들이는 돈은 모두 노후 자금으로 쓴다. 한국의 부모들과는 딴판이다. 신한은행 서춘수 PB 지원팀장은 “비참한 노후를 맞지 않으려면 한국의 부모들도 정신 바짝 차리고 노후자금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젊어서 노후자금을 효율적으로 확보하는 방법은 자녀들의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이다. 도시 가계가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돈은 연간 26조원이 넘는다. 이를 절반만 줄여도 노후자금을 일년에 13조원 정도 더 쌓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자녀가 결혼한 뒤에는 금전적 지원을 끊는 것이 옳다. 손자·손녀는 돌봐줄 수 있지만 가정을 꾸린 후 생기는 문제는 어떻게든 본인들이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은퇴 후에는 목돈을 직접 관리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부모에게 수천만원, 수억원의 큰돈이 있는 걸 알면 자녀들이 쉽게 손을 내민다. 따라서 목돈이 생기면 해약이 어려운 금융상품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특히 자녀들이 요구한다고 하여 늘그막에 집을 담보로 제공하는 것은 금물이다. 노후자금이 바닥나면 집은 생계비를 조달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국재무설계 오종윤 이사는 “젊은 자녀는 사업에 실패해도 재기할 기회가 있으나 60세 넘은 은퇴자가 길거리에 한 번 나앉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고 말했다.

직장을 그만둘 때 받는 퇴직금은 보험사의 ‘즉시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안전하다. 3년 전 삼성생명을 퇴직한 김희수(62)씨는 퇴직할 때 받은 3억원을 즉시연금에 ‘종신형’으로 가입했다. 종신형 즉시연금은 가입과 동시에 연금 지급이 시작되고 해약이 불가능해지는 게 특징이다. 김씨는 “한번 가입하면 돈을 절대 뺄 수 없기 때문에 확실한 노후자금인 셈”이라고 말했다. 퇴직 때까지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집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일정기간 동안 생활비를 받아쓰는 ‘역(逆)모기지’를 활용하면 좋다.

출처 : 조선일보 송양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