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화가 박사가 됐다. 평생 노래만 불러온 줄 알았던 그녀가 팬들에게 참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책을 다시 잡은 지 딱 10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을 다뤘고, 25일 박사모를 썼다. 논문 제목은 '사회 변동기의 대중가요와 대중정서의 상관성 연구'. 한국가요 75년사는 물론 한국 연예계에서도 처음 있는 경사다. 여섯 살 때부터 무대에 서서 노래만 한 하춘화.
'국민가수'란 칭호까지 얻으며 가요계에서 일가를 이룬 그녀가 50줄에 이룬 결실이라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2년간 고3처럼… 책 잡으면 5~6시간 거뜬
▶난 이렇게 공부했다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96년이었다. 방송통신대 가정학과에 편입해 2년 만에 졸업했고, 98년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이미 박사의 꿈을 품었다. 공연예술을 전공해 2000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데 법을 공부하고 싶어 박사과정은 법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3차례 도전해 모두 탈락했다. 전공이 안 맞는다고 교수들이 반대했다. 결국, 고집을 꺾고 대학교수인 동생의 권유로 2003년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최근 2년간은 거의 고3 수험생으로 살았다. 새벽 1시에 잠들어 5시에 일어났다.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 영어공부를 했고, 9시 반에 서울 서초동 집 근처의 독서실로 달려가 오후 3시까지 물만 먹고 버티며 논문에 매달렸다. "나중엔 엉덩이에 감각이 없어지더라고요. 몸도 많이 상했고, 특히 눈이 아파 뜰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공부도 습관이더란다. 처음엔 책만 잡으면 그렇게 졸리더니 이제는 대여섯 시간은 너끈하단다.
▶대중가요 연구의 배경
여섯 살 때인 1961년 음반을 내고 무대에 섰다. '세계 최연소'라는 기록이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로 화려한 데뷔였다. 하지만 가족의 속내는 말이 아니었다. 당시 대중예술에 대한 천시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무조건 '딴따라'로 매도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뒷받침과 격려가 오늘의 국민가수 하춘화를 만들었지만 그때부터 그녀의 뇌리엔 '대중예술가들에 대한 나쁜 인식을 바꾸고 말겠다'는 오기가 꿈틀거렸다. "대중가요에 대한 편향되고 왜곡된 인식을 돌려놓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식의 오류를 실증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죠." 논문의 완성도를 위해 설문조사도 전문기관에 의뢰해 신뢰도를 높였다. "대중가요가 저속하고 상업적이라는 건 근거 없는 일각의 주장일 뿐이에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일 때는 대중가요로 마음을 달래고 눈물도 흘리면서 애창곡을 물으면 꼭 '오 솔레 미오'라고 하니까요."
▶토익시험 여덟 번 본 사연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토익이 700점을 넘어야 한다. 시험 때 잠시만 딴전 부려도 몇 문제가 휙 날아가는 게 토익이다. 하춘화는 이 시험을 무려 여덟 번이나 봐야 했다. 감독관들 때문이었다. 시험칠 때 본인 확인을 위해 책상에 꺼내놓은 주민등록증을 보고는 '진짜 하춘화'인지 보려고 책상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시험치는 사람을 올려다보는 통에 번번이 집중력을 잃고 마는 것이다. "하춘화는 제 본명이거든요. 나쁜 뜻 없이 하춘화 한번 보겠다고 그러는데 화낼 수도 없고, 참 많이 난감했죠."
▶공부보다는 노래가 쉬워
하춘화는 지금까지 8000회 넘게 콘서트를 해왔다. 이것 또한 기네스 기록이다. 아무래도 일이다 보니 매번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사과정을 거친 후 생각이 싹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공연은 휴식이에요. 공부하다가 잠시 머리 식히는. 정말 멋모르고 덤볐지, 지금 다시 박사과정 밟으라고 하면 단박에 거절할 겁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 보니 정말 고생깨나 한 모양이다.
▶너무 젊은 하춘화
요즘 TV에 얼굴을 내밀면 오해를 많이 받는다. 이른바 성형수술 논란이다. 사람들은 하춘화가 예순은 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요계 45년이니 얼추 계산해도 환갑이기 때문이다.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해 수십 년간 브라운관을 장식하다 보니 생긴 오해다. 그녀의 나이 이제 51세. 55년생 양띠다. 한데 가까이 얼굴 맞대고 봐도 전혀 50대 초반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손하나 대지 않은 '자연산'임에 틀림없다. "운동 효과인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1시간 이상은 운동을 하거든요.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뛰기고 하고, 등산도 다니죠. 체력 만큼은 20대 때와 차이가 없습니다."
▶하춘화의 두 가지 꿈
이제 서서히 연예계 활동을 줄여나갈 참이다. 꿈을 위해서다. 그녀는 크게 2가지 꿈을 품어 왔다. 하나는 이제 막 이룬 박사의 꿈이다. 내년부터 대학 강단에 설 생각이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활동을 줄여야 한다. 또 하나의 꿈은 '대중음악 전문학교'의 설립이다. "너무 거창한 꿈이긴 하지만 훌륭한 대중예술인의 양성을 위해 기회가 닿으면 꼭 만들고 싶어요." 하춘화가 활동을 줄이겠다고 마음먹은 또 하나의 배경은 양보다. "이제 서서히 후배들에게 무대를 내줘야죠. 좀 더 나이 들면 꼭 필요로 하는 자리에만 설 생각입니다."
출처 : 스포츠조선 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