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선 ‘로비’가 판치고…아래선 ‘조폭’과 손잡고…
업체 대표가 말하는 상품권 ‘복마전’ 실상
“처음에는 경품용 상품권으로 지정을 받는 게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한참 뒤에 몇몇 선발 업체들이 역로비를 벌였다는 소문을 듣고서야 무슨 일이 있었던지 이해가 됐죠.”
지난해 8월 상품권 지정제도가 시행된 뒤 여섯달 남짓 기다린 끝에 겨우 경품용 상품권으로 지정을 받은 한 상품권 업체 임원 ㅅ씨는 “정치권이나 공무원들에 대한 업체들의 로비가 없다고 가정하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상품권 업계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고 털어놨다.
실사나와서 “문턱 높다” 어처구니없는 트집 나중에야 “선발업체 로비 있었다” 얘기 들어
조직폭력배가 오락실 상품권 공급 ‘쥐락펴락’ 장당 얼마씩 건네주고 유통시키는 지역 많아
ㅅ씨는 지난해 다른 여러 업체와 비슷한 시기에 함께 상품권 지정 신청을 냈다. 다른 업체들은 모두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의 실사를 받느라 바빴지만, ㅅ씨의 회사 실사는 두세달 동안 마냥 미뤄졌다고 한다. 한참 기다린 끝에 실사를 받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어처구니없는 지적을 하며 보완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지적된 내용은 ‘사무실 복도 폭이 좁다’, ‘문턱이 너무 높다’는 따위의 내용이었다. 지적을 받으면 이를 보완해 다시 실사를 받는 데 한달씩 걸렸다.
여섯달 이상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ㅅ씨의 업체도 경품용 상품권 지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발행한도는 선발 업체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 ㅅ씨는 “다만 몇달이라도 후발 업체들의 진입을 막으면 선발 업체들은 그동안 엄청난 독점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지정을 받고 나서야 후발 업체 진입을 막기 위한 역로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ㅅ씨는 구체적 언급은 회피했지만, 자신의 업체도 로비를 벌였음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지정을 받는다고 곧바로 돈벼락을 맞는 것도 아니었다. 성인오락실에 상품권을 유통시키려면 곳곳마다 진을 치고 있는 깡패들과 마주쳐야 한다. 조직폭력배나 지역 건달들이 자기들 구역의 오락실에 들어가는 상품권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조건에 상품권을 공급해주겠다고 해도 성인오락실 업주들이 거들떠보지 않는다.
다른 상품권을 썼다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상품권 업체의 영업담당 간부 ㅇ씨는 “어쩔 수 없이 장당 얼마씩 조직폭력배한테 주기로 하고 상품권을 유통시켜야 하는 지역이 많다”며 “지정받을 때에는 윗선을 찾아 죽기살기 로비에 나서야 하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할 때에는 오락실의 상품권 시장을 장악한 조폭과 손잡아야 하는 게 상품권 사업”이라고 말했다.
상품권은 원래 오락기에서 한 번 배출되면 발급업체로 돌아가 폐기되도록 되어 있다. 이런 상품권이 폐기돼야 새로 상품권을 발급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성인오락실들은 상품권 수수료를 더 많이 챙기고, 소득세 납부의 근거가 되는 상품권 대장을 조작하기 위해 상품권을 여러 차례 오락기에 넣는다.
업계에서는 오락실 업주들이 상품권 1장을 평균 5차례 정도 돌려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ㅇ씨는 “대도시는 그나마 단속이 어느 정도 이뤄져 재사용이 덜하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상품권이 새까맣게 변하도록 돌려쓰고 있다”고 말했다.
* 바다이야기 시작부터 의혹...
‘1.1버전’ 편법으로 심의통과
‘새 등급분류’ 절차대신 ‘일부변경’으로 위장 신청
성인오락기 ‘바다이야기’가 편법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규 등급분류 심의 대상인데도, 기존에 통과된 오락기의 일부 변경 내용에 대해서만 심의를 받는 변경심의를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이 시기 게임물 등급분류소위 위원 7명 가운데 4명이 갓 위촉된 신임 위원이어서, 기존의 소수 위원 중심의 서류만 검토한 졸속 심의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상한 버전 변천사=18살 이용가로 심의통과된 바다이야기는 모두 4개로, 버전 ‘1.0’, ‘1.1’(이상 2004년 12월), ‘2.0’(2005년 8월)은 ‘신규 심의’를 받았고, ‘1.1 변경’(2005년 4월 통과)은 오락기 일부 내용에 대한 부분 심의만 받고 통과됐다. 그 가운데 현재 시장을 점령한 핵심 기종은 ‘1.1 변경’ 버전이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 1.1 변경 버전은 넉달 뒤에 신규 통과된 2.0과 별 차이가 없다”며 “변경심의가 아닌 새 등급심의 대상인데 편법 통과됐다”고 말했다. 새 경품고시 등에 연동한 일부 내용을 넘어 오락기 사양 자체를 구분하는 게임 아이템, 진행 내용까지 바꾼 새 버전으로서 신규 등급심의를 받아야 했다는 주장이다.
개발업체는 오락기의 심의 속도에 운명을 건다. 영등위의 심의물이 적체된데다 비슷하게 개발될 유사 오락기를 얼마나 앞서느냐에 따라 수익이 천양지차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전 스크린 경마의 아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며 사행성 오락시장을 점령한 바다이야기의 주력 기종은 ‘1.1 변경’ 버전이다. 반면 2005년 4월 신규 신청돼 4개월 만에 겨우 통과된 ‘2.0’은 정작 이후 1년 동안 한 대도 팔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심의위원인 유청산(34)씨는 “바다이야기를 변경 승인할 당시, 일부 위원이 신규 신청과는 다르게 간단한 서류로만 심의해도 된다는 주장을 합리화해 기계는 보지도 않고 무작정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가 생명을 얻은 배경이다.
수상한 그때 영등위=‘바다이야기 1.1 변경’ 버전이 심의통과될 당시 영등위의 아케이드게임 소위 위원 7명 가운데 4명이 그해 1월에 갓 부임한 신임이었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소위 위원이었던 유씨는 그때 상황을 정리한 글에서 “1월 위촉된 첫날부터 충분한 교육도 없이 심의를 하게 됐다”며 “일부 심의위원의 주장에 어떤 의견도 제시할 수 없었고, 하더라도 묵살되기 일쑤였다”고 털어놓았다.(사진 참조)
그는 2005년 초 게임물 세부규정을 만들 때도 사행성을 제한할 수 있는 ‘확률제한’ 등을 거론했지만 영등위 사무국 간부나 일부 심의위원이 묵살했다고 말했다. 특히 사무국의 한 간부는 이런 지적에 대해 “의자를 걷어차며 일부 심의위원을 모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하루에 50~100건의 심의물을 매일 처리하는 강행군을 해야만 했다”면서도 “게임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정책의 공백이 오늘의 도박공화국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직접 오락실에 나가 심의를 통과한 ‘바다이야기’에서 250만원이 (배당금으로) 터지는 것을 보고, ‘2.0’버전 심의 때는 (이런 고도의 사행성을 보장하는) 예시·연타의 문제점을 언급했다”고 했다. 하지만 ‘2.0’ 버전 역시 유씨가 사퇴한 뒤 결국 통과됐다.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관계자는 “바다이야기 1.1 변경 버전이 지금 상황이라면 통과 안 됐을 텐데, 결국 그 오락기가 주도해 상품권이 과다 배출되는 환경도 다져졌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는 햇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애초 호미로 막을 수도 있었을 사태를, 현재 온 정치권이 ‘남탓’ 하며 굴착기로 막고 있는 형국이다. 임인택 기자
출처 : 한계레 유신재,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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