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야, 언제까지 차가운 길바닥에 나를 눕혀 놓을 테냐."나지막한 음성이 들렸다.
1988년 최일도 목사(49ㆍ사진)는 청량리역 광장에 쓰러진 한 할아버지를 돌보다가낯선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소명이 이 땅에 있음을 깨닫는다.
신학대학원을 갓 졸업한 최 목사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 독일 유학을 결심한 후였지만 그가 들은 말씀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버너와 코펠을 들고 광장에 앉아 끓이던 라면을 먹기 위해 40명의 걸인이 몰려들었고, 이렇게 마련한 식사들이 지금껏 모여 지난 5월 300만그릇을 넘어섰다. 당시 주말에만 실시하던 무료진료소는 이제 개신교 첫 무료 병원인 '다일천사병원'으로 이어졌다.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을 18년 동안 한결같이 따르고 있는 최일도 목사. 그를 다일천사병원에서 만났다.
최 목사는 최근 머리 뒷부분에 있는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터라 핼쑥해 보였다. 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이곳을 이용할 수 없다.
"혹이 정맥을 누르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시간이 없어 며칠 전에야 수술을 했죠.이곳은 의료보험조차 안되는 분들에게 혜택을 드리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저희봉사자들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매월 1만원씩 후원하는 5800여 명의 손길로 2002년 병원 문을 열었다. 정부기관 후원 없이 순수 민간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다일천사병원은 환자에게뿐만 아니라 정부에도 의료보험수가를 신청하지 않는다.
"병원에 찾아가 수술비가 없어도 쫓겨나지 않고 아픔을 치유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땅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돈이 없는 환자에게 '왜 왔느냐'고 물어선안됩니다. 치료부터 해준 다음 돈이 없다고 하면, 그 다음은 사회복지사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요."최 목사가 펼치는 사랑의 실천을 함께하고자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시인을 비롯해기업의 임직원, 심지어 다른 종교인 원불교에서도 이곳을 찾았다.
"민간의 후원은 언제나 환영하지만 정부에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이 있어야만 자선사업을 한다는 생각을 불식시키고 싶었습니다."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병원을 후원하고 싶다고 했지만 거절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장관께 '도와주시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죠. 아끼고 저축한 돈으로 후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미화원 아저씨들이 꼬깃꼬깃 모은 돈을 들고 오시는데 그런 분들의 정성이 하나씩하나씩 모여서 공동체가 이뤄지는 것입니다."다일천사병원은 현재 아름다운 변화 프로젝트 때문에 분주하다. 구순구개열 장애(일명 언청이)를 지닌 채 살아가는 외국 어린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주는 수술이 매월이어진다.
"현재 아이들 5명과 부모 5명이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아이당 250만원의 수술비는 감당할 수 있는데 비행기 왕복비와 숙박비가 빠듯하네요. 누군가가 나서서 저희와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그가 펼치는 봉사 활동 중심에는 예수의 가르침이 있다. 다일공동체는 단순한 NGO가 아닌 나사렛 예수의 영성 생활을 실천하는 곳이다. 사역공동체인 밥퍼나눔운동본부, 다일천사병원, 다일장학회를 운영하는 것 외에도 영성수련 공동체인 다일평화의마을, 다일교회를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를 실천하는 것이다일공동체의 본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천국이 있다'고 말씀하신 의미를 헤아려야 합니다. 대다수 한국 교회들이 예배당을 먼저 짓고 남은 돈으로 이웃을 돕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과 다름없습니다."남은 생애를 영성수련에 집중하고 싶다는 최 목사는 현재 맡고 있는 다일교회 담임도 50세 중반이 넘기 전에 후배 목사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묵상과 기도 그리고 침묵을 통해 영성생활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55세가넘기 전에 담임목사를 물려주고, 현재 맡고 있는 CBS '새롭게 하소서' 진행도 4년뒤에는 다른 분에게 맡기고 싶습니다."최 목사는 병원운영 기금 모음, 다일교회 담임 목사, 방송 프로그램 등 바쁜 일정으로 하루를 쪼개 써야 한다.
"하루에 4시간반 이상 자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사역할 때는 수면부족으로 굉장히고생했지만 지금은 몸에 익었죠. 내가 고통받는 만큼 사랑은 전달된다고 믿기 때문에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최근 맡고 있는 '새롭게 하소서'에서 고정 진행자로 출연해 만나 보고 싶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인사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방송사 측에서 초대 손님을 선정하기도 하지만 제가 꼭 모시고 싶은 분들에게 말씀을 부탁드리는 것은 우리 이웃에게 진실한 사랑을 전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들려드리고 싶은 것이지요."
출처 : 매일경제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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