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공부하러 왔다가 민박집 차리고, 레포츠사업까지… 21살 당찬 유학생 박아름씨 내달엔 옥스퍼드 음대 입학
[조선일보]
“언~니! 식사하셨어요? 뭐 더 필요한 거 없어요? 오빠~. 여기~ 과일 좀 드세요.” 체코 프라하의 민박집. 한 여성의 대구 사투리가 온 방을 휘젓는다. 코맹맹이 앳된 목소리지만 사람들 다루는 말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올해 스물한 살의 박아름씨. 그녀는 ‘풀하우스’라는 이름의 이 민박집을 경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프라하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을 다녀 봐도 스물한 살밖에 안 된 민박집 여사장님은 찾기 어렵다.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냘픈 체구의 그녀가 낯선 나라 도시에서 하루 30명 가까운 손님들이 들락거리는 작지 않은 규모의 민박집을 꾸려 가고 있다.
박씨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성공하기 위해 유럽에 음악 유학 온 대학생이다. 체코 프라하 콘서바토리 1학년을 마치고 올 9월 영국 옥스퍼드 음대에 입학 예정이다. 이 음악도는 “여기서 민박집까지 운영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했다.
“처음엔 원룸에 살았는데, 오후 6시 이후엔 연습을 못하게 돼 있는 거예요. 겨우내 영하 15도나 되는 아파트 지하 창고에 바이올린 들고 내려가 몇 시간 동안 있다가 손이 얼어 버려 펑펑 울기만 했어요.”
박씨는 안되겠다 싶어 어릴 때부터 저금했던 통장을 깨 2층집을 빌렸다. 그러다 길에서 헤매는 배낭여행객들을 보곤, 힘들게 유학생활을 하던 자신이 생각나 선뜻 재웠다. 연락처가 퍼지고 소문난 끝에 지난 4월부터 본격 민박업으로 나섰다. 한 달간 한식 조리도 배웠다.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불고기와 열무냉면이 특히 자신 있다고. 김치도 직접 담근다. 일주일에 30포기씩 담가도 모자란다. 배낭여행객들은 “여기서 살쪄서 가요!”라며 즐거운 불만들이다. 손님이 늘어나자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쪼개 옆집도 함께 빌려 두 채로 장사를 한다. 스물한 살. 아직 ‘사회인’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데 그녀는 이미 ‘억척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최근엔 민박뿐 아니라 레저·스포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여기 프라하에선 스위스 융프라우보다 더 높은 번지 점프를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거든요. 스카이 다이빙이랑 래프팅도 끝내줘요. 그간 번 돈을 투자해서 관련 회사 하나를 인수하고, 유럽 스포츠 에이전트 회사랑 정식 계약도 했어요. 여기 오시는 손님들이 싼값에 레포츠 즐길 수 있게요.” 그럼 전공인 바이올린 공부는 언제? 마루 한가운데 있는 보면대(譜面臺·악보를 펼쳐놓는 받침대)가 대답을 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11시까지 아침상을 해결한 뒤, 손님들이 대개 나가 있는 낮 시간이 연습시간이다. 그녀의 연주를 들으려 그냥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영국에 가서도 자주 오가며 민박집 운영은 계속할 예정. “보육원 아이들에게 1년간 바이올린을 가르친 적이 있어요. 한국 돌아가면, 정서적으로 지친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싶어요.” 몸은 좀 힘들어도 절대 후회해 본 적 없다는 그녀, 작은 몸에서 에너지가 철철 넘친다.
출처 : 조선일보 (프라하=최보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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