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문서 서식 모아놓은 ‘유서필지’ 번역본 나와
“삼가 소지(所志)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상전은 어버이의 병이 한 달 전부터 갑자기 깊어져서 의원에게 물어보니 풍허(風虛·눈 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어지러운 증세)라고 진단하였습니다. 의원은 ‘반드시 전우고(全牛膏·우황)를 복용한 뒤에야 나을 수 있다’고 말하였으나 우금(牛禁), 주금(酒禁), 송금(松禁), 삼금(三禁)은 실로 나라에서 금하는 일이라 감히 이것을 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저의 상전은 그저 혼자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노비가 병든 상전 부모의 치료에 우황이 필요하다며 물금첩(勿禁帖·관아에서 특정 사안에 대해 금지한 것을 특별히 허락해 준다는 내용을 적은 문서)을 작성해 줄 것을 탄원한 ‘위친환용전우고소지(爲親患用全牛膏所志)’의 내용이다.
소지는 백성이 관에 탄원하거나 청원할 때 작성하는 문서를 말한다. 농본사회로 소를 잡는 것을 국법으로 금지했던 조선시대에는 소의 다리가 부러졌거나 부모의 병환치료에 우황이 필요한 경우 등 부득이한 때에만 도살이 예외적으로 허용됐다. 노비의 청원에 사또는 도살을 허락하며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길 때 아전들은 침탈하지 말 것”이라고 지시(판결)한다.
조선후기에 널리 사용된 공·사문서의 서식들을 모아놓은 ‘유서필지(儒胥必知·사진)’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연구실(실장 전경목 교수)팀에 의해 번역돼 사계절출판사에서 나왔다. ‘유서필지’는 ‘유학자와 서리(하급관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책’이란 뜻으로 사대부와 서리 등이 임금이나 관청에 올리는 문서, 또는 개인 사이에 오고가는 문서 등의 규식이 수록돼 있다.
백성들이 국왕에게 청원하거나 탄원할 때 작성하는 문서인 상언(上言)과 소지, 지손(支孫)이 종가(宗家)에 제수(祭需)를 올리거나 상가(喪家)에 부의(賻儀)할 때 작성하는 단자(單子), 가옥·전답·노비 등을 사고 팔 때 작성하는 각종 문권(文券) 등 7종의 문서식이 소개되고 있는 책은 ‘조선시대 문서 작성의 길라잡이’이자 조선후기 사회사와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가령 소의 도살을 청원한 노비의 소지에서 당시 궁궐 건축이나 배를 만드는 데 쓰이는 소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었으며 가뭄이나 흉년 때는 술을 제조하거나 마시는 것도 금지돼 있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유서필지’는 아직 편찬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초간본의 편찬시기도 새 법전인 ‘대전통편’이 간행된 1785년(정조 9) 이후부터 현존하는 ‘유서필지’ 판본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무교갑진본(武橋甲辰本)’이 간행된 1844년(현종 10) 이전 사이의 어느 시기로 추정된다.
다만 19세기 서울과 전주 등지에서 영리목적의 방각본으로 수차례 간행돼 대량으로 유포된 사실에서 당시 이 책의 수요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을 효자나 열녀, 또는 충신으로 공식 인정해 달라는 청원서나 조선후기 커다란 사회문제였던 묘자리를 둘러싼 분쟁인 산송(山訟)과 관련된 소지가 상세하게 제시돼 있는 유용한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목사나 부사에게 서리들이 휴가를 청할 때 올리는 소지나 외읍의 서리가 방임(房任·지방 관아에서 육방이 맡고 있던 직임)을 간청하는 일로 올리는 고목(告目)처럼 지방 아전들이 옛 상전이나 고위인사에게 인사청탁을 할 때 작성하는 문서의 서식이 실려 있는 것도 흥미롭다. ‘하옵거든(爲白去等)’과 같이 조선후기 문서에 자주 사용된 이두 244개를 글자수 별로 구분해 소개하고 있는 ‘이두휘편(吏頭彙編)’ 등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출처 : 문화일보 최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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