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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법 앞의 불평등(1)-김우중 귀국·X-파일 소동2005-07-25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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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성의 칼럼 <상식론>.
호랑이와 토끼에게 동일한 법이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하나의 억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과연 이러한 동일한 법 적용 원칙이나마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추측컨대 토끼에게는 강하게, 반면에 호랑이에게는 약하게 법이 집행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을 것이다.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절규는 바로 이런 억하심정의 직접적인 반증 아닐까.


[호랑이의 법]

우리나라에서 특히 법의 집행이 과연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답변하기 위해서는, 근래의 대표적인 사례 몇 개만을 제시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얼마 전 이른바 김우중 ‘귀국 시나리오’라는 게 호들갑을 떤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의 측근이나 과거 대우 임직원들이 무슨 대단한 영웅이라도 들어오는 양 요란한 귀국 맞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김우중 재평가를 요구하고 그의 공과를 따지는 포럼을 준비하자는가 하면 그가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대대적인 환영식을 갖자는 소리도 들려왔다. 또 한편에선 과거 김씨가 대우그룹 회장 때 사용했던 모 호텔의 집무실을 재단장하고 그가 설립한 대학병원의 호화 전용병실을 새로이 꾸미는가 하면 한남동에 부인 명의로 새로 집을 짓는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러나 이들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시민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면 대우 부도사태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과연 이런 모습들이 일반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다시 한번 냉정히 심사숙고해보는 겸허함을 보이지 않았을까.

뭐니뭐니해도 ‘김우중 귀국 시나리오’의 핵심은 무엇보다 그의 사법처리 수위의 ‘최소화’라는 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해외도피 행각의 시작이 그러했듯이 이번 그의 귀국 결심도 정치적 판단이 게재된 것으로 보이는 데다 70세의 고령이나 건강 이상 등의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의 사법처리와 관련해 사면 설 등 이런 저런 소문이 나돌고 그 중에서도 1심 재판 뒤 적당한 때 병 보석을 통한 석방 설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형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정설로 굳어버린 현실

어쨌든 많은 국민들이 김우중씨에게 공정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리라 믿지 않는다는 게 정설로 굳어져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그 얼마 전 ‘대상’ 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이 또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검찰은 수사 초기 임 회장에 대해 체포영장까지 발부 받고 이미 기소된 전직 임원들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임 회장이 공모한 것으로 공소장 변경까지 시도했다. 임 회장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인 증거였다. 그러나 수사 도중 임 회장이 도피했다가 수사 팀이 바뀐 뒤에야 자진 출두하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수사가 1년여를 끌었다. 결국 검찰은 임 회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다. 또 임 회장 공모 부분을 빼는 것으로, 공소장을 다시 변경하려고까지 했다 한다.

임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 과정이야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강력한 입증자료라는 게 중론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7월 초 국무회의를 통과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은 부칙 각 조항마다 삼성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아니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삼성의 요구를 조목조목 그대로 ‘받아쓰기’한 것과 다름없다”는 혹심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를테면 정부가 삼성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유지와 경영권 보호를 위해 총대를 맨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이런 취지에서 ‘참여연대’는 특히 금융감독위원회를 “삼성 법률 자문단”이라 혹평하기도 했다.


[재벌과 언론]

이런 와중에 이른바 X-파일이라는 게 만천하에 공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MBC는 지난 7월 22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97년 안기부 내부 보고용으로 만들어진 삼성 불법 대선자금 도청테이프의 핵심내용을 전면 공개했다. 또 도청테이프에 등장하는 홍석현(전 중앙일보 사장) 주미대사와 이학수(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 삼성그룹 구조조정 본부장의 실명을 그대로 밝혔다. 실명을 적시하지 말라고 결정한 법원의 가처분 결정조차 뒤엎은 ‘파격’인 것이다.

불법도청으로 다른 사람들의 대화내용을 은밀히 엿듣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비열하고도 추악한 행위임이 명백하다. 하지만 안기부의 도청 테이프에 드러난 삼성과 중앙일보사 최고위층의 대화내용은 도청수법의 추악성에 대한 분노를 잠시 잊게 할 정도로 더욱 더 가증스러운 것이다.


X-파일속 일부 인사들 아직도 현직 거물로 근무

MBC는 “녹취록에는 삼성이 97년 9월 추석을 앞두고 당시 검찰 간부 10명에게 500만~2000만원을 건넨 것으로 나와 있다”며 “전직 법무장관인 ᄀ씨와 ᄎ씨, 전 차관인 ᄒ씨, 당시 지청장 ᄀ씨, 서울지검 부장인 ᄒ씨 등이 적혀 있다”고 보도했다. 현직 검찰간부들에게 거액의 ‘떡값’을 뿌렸음을 시사하는 내용인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검찰 인사들은 대부분 퇴직했지만 몇몇 인사들은 아직 현직 고위 간부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성그룹 스스로도 굴지의 로펌과 맞먹는 수준의 막강한 법무 팀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변호사는 110명(국내 변호사 50명, 외국 변호사 60명) 수준인데, 국내 변호사 50명 중 판·검사 출신 전관(前官) 변호사가 30여명, 이중 검사 출신이 10여명을 차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여튼 이 도청테이프를 통해 우리는 한국 재벌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얼마나 저열한가, 그리고 언론계의 윤리의식이 얼마나 천박한가 하는 것을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참혹하고 참담할 정도다.
권력과 자본을 감시해야 할 언론 사주가 ‘돈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장면들이 적나라하게 폭로된 것이다. MBC가 보도한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은 삼성그룹 및 이건희 회장의 정계 로비스트이자 불법 비자금 ‘배달부’였던 셈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주 미국 대사로 명성을 휘날리고 있다.
어쨌든 MBC는 “계획대로 됐다면, 이회창씨에게 지원된 자금이 100억은 넘을 것”이라 단정지었다.


재벌-정치-언론 검은 고리는 정치발전에 깊은 해악 남길 것

그러나 일반 국민들에게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로 각인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에 더욱 극심한 해독을 끼칠 부분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또 하나의 다른 측면이다.

그것은 바로 대법관과 감사원장까지 역임하여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대쪽’ 정치인의 전형처럼 자신을 부각시키면서 주저 없이 자신을 ‘법대로’라 선전하며 정가를 활보한 한나라 당의 이회창 후보 역시 검은 돈에 추하게 연루되었음이 폭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후보는 대략 40% 가까운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않았던가.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도대체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하나 하는 극심한 정치적 허탈감과 참담한 사회·윤리적 배반감에 시달릴 것이다. 북핵 문제와 독도 문제 타결, 경기 불황 타개 등 수많은 대내외적 난관을 헤쳐가지 않으면 안 될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우리 국민은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든든한 단합과 결속력으로 뭉치는 대신에, 극심한 정치적 불신과 자포자기 의식, 미래에 대한 기대감 상실로 실의의 늪에 빠져 허덕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통탄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의혹이 더 증폭되기 전에 정부가 앞장서서 재벌그룹의 대선 자금 지원 등에 관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련자들의 불법이 드러날 경우 그들 모두를 엄정히 사법 처리함으로써 국민적인 의혹을 해소하고, 참여정부가 지향한다고 스스로 선언한 반 부패사회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실적 위기를 극복하고 장미 빛 미래를 함께 가꾸어나갈 단합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또 머뭇거리는 눈치다.

도청 테이프가 불법 자료일 뿐만 아니라, 정치 자금법 위반죄의 공소시효(3년)가 끝났다는 이유를 들이대며 수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여론의 질타를 맞고 있다. (계속)

◎박호성 교수;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정치사상을 전공했다.
출처:국정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