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15일 홈페이지를 통해 주택값 불안의 진원지로 이른바 '버블 세븐'을 지목하면서 부동산 거품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강남.서초.송파.목동.분당.용인.평촌 등 7개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 거품 붕괴가 임박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 관료들은 연일 구두탄(口頭彈)을 쏴대며 '버블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올려 시중에 많이 풀린 돈을 은행으로 빨아들여야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오랫동안 유지돼 온 저금리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이 늘면서 아파트값을 올렸다는 것이다. 특히 11일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연 4%로 동결한 뒤 한은 인터넷 홈페이지엔 "저금리로 전국을 투기화한 한은은 콜금리를 즉각 올려라"라는 네티즌들의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거품이 정말 존재하는지, 금리가 과연 거품을 일으킨 장본인인지, 금리만 올리면 거품을 잡을 수 있는지 전문가들이 만나 의견을 나눴다.
▶강치원(사회)='버블 세븐' 논란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부동산 가격에 정말 거품이 끼었는지부터 따져 보자.
▶배상근=부동산이나 주식의 실제가치보다 시장가격이 크게 높으면 거품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당시엔 몰랐으나 나중에야 거품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현재 부동산 가격이 미래의 가치를 반영해 오른 것인지를 판단하긴 어렵다. 다만 정부는 지금껏 실제가치보다 높게 시장가격을 만드는 쪽으로 부동산정책을 펴 왔다. 충분하게 아파트를 공급하지 않았고 결국 어느 정도 거품을 끼게 했다는 얘기다. 중요한 건 부동산 거품 문제를 다룰 때 전국적 현상인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상황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지금 전국적으로 거품이 있다고 하면 거품론자들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품은 있지만 국지적 현상일 뿐이다.
▶정원석 =부동산값 상승은 거품이 아니라 희소성에 따라 가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버블 세븐도 그렇다. 수십 년간 관공서며 학교 등이 옮겨 가면서 인프라를 잘 갖춘 곳으로 부상한 지역들이다. 당연히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데 다른 곳과 단순 비교하는 건 옳지 않다. 부동산 가치는 시장이 정하는 것 아닌가. 소득이 늘수록 큰 집을 선호하는데 주택 정책은 보급률을 높이는 데만 주력해 소형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중대형 아파트값이 많이 오르게 된 것이다.
▶신용상=거품을 판단할 때 아파트 전셋값과 매매가 차이를 많이 사용한다. 강남은 높은 매매가에 비해 전셋값은 낮다. 그 외 지역은 전세.매매가격이 거의 붙어 가는 판국이다. 따라서 버블 세븐이란 말은 상당 부분 맞다. 거품이 국지적 현상이라고 하지만 원래 거품은 특정 지역, 특정 평수에서 출발해 확산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국민주택 규모보다 약간 큰 평수이고 버블 세븐 지역도 아닌데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최석원=어떤 자산 가격이 미래 가치를 지나치게 반영하면 그게 거품이다. 사실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런데 지금은 기업대출에 비해 가계대출 비중이 커진 상태다. 특히 가계의 담보대출 비중이 크다. 이런 담보대출을 통해 부동산의 미래 가치를 미리 당겨 올려놓은 것이다. 한도 끝도 없이 오르면 문제가 없지만 가격 상승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게 골칫거리다. 소득과 비교해 봐도 거품은 존재한다. 최근 집 사는 행태를 보면 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매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7공주(버블 세븐)라는 지역은 더 심하고 다른 지역도 이런 흐름이 퍼지고 있다.
▶사회=저금리로 시중에 많이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주택값을 올렸다는 시각이 있다. 거품의 근본 원인이 저금리 때문인가.
▶신용상=거품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는 분명히 있다. 좋은 주거 여건을 갖춘 강남의 대형 평수 아파트를 찾는 수요가 많은 건 인정한다. 그러나 시중에 돈이 많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가격의 부동산을 지속적으로 사려는 수요가 생길 수 없다. 돈이 많이 풀린 건 저금리 때문이니 결국 낮은 금리가 거품 형성에 일조한 것이다.
▶최석원=부동산에 거품이 생긴 건 투자할 대상이 많지 않아서다.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는데 돈을 많이 푸는 정책을 쓰다 보니 시중 자금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쪽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으로 간다. 이와 함께 정책적 오류도 짚어 봐야 한다. 과거 기준에 맞춰 소형 평수 아파트를 늘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무엇보다 세금으로 부동산값을 내리려 하면서 부동산 시장을 매도자 우위로 만들었다. 주택은 기본적으로 정보가 비대칭적인 시장이다. 매도자가 줄어들면서 매도 호가를 높여 매수자들을 따라오게 만드는 구조가 되면서 끝없이 호가가 상승한다. 결국 투자 부진과 저금리 및 풍부한 유동성, 그리고 정책적 오류가 거품을 만들었다.
▶정원석=저금리 때문에 유동성이 늘어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국민연금의 자산이 150조원을 넘는다. 생명보험사와 은행들도 많은 돈을 갖고 있다. 개인들도 편중돼 있지만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자산이 많이 쌓이면 그대로 둘 수 없고 운용을 해야 한다. 이런 거대 자금을 운용하다 보면 (돈이 많이 풀리면서) 금리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옛날에 금리가 20%였어도 부동산 투기는 있었다. 꼭 저금리라고 투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대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배상근=거품이 생긴 건 다른 투자 대상보다 부동산이 더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채권의 투자 수익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확신을 줬으면 돈이 부동산으로만 가진 않았을 것이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다고 하는데 6개월 미만의 단기수신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54.4%에서 올 3월 현재 52.4%로 비슷한 수준이다. 갑자기 시장에 돈이 확 늘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회사들의 행태 변화도 부동산 상승을 부채질했다. 기업 대출에 초점을 맞추던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로 방향을 튼 것이다. 금융회사 총대출의 32%가 주택담보대출이다.
▶사회=거품의 주된 원인이 저금리라는 주장엔 서로 의견이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 거품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도 틀린 것인가. 무엇보다 세계경제가 긴축으로 가면서 한국도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배상근=자산 가격에 거품이 있어 금리에 손을 대면 모든 국민이 영향을 받는다. 강남에 집을 가진 사람들만 금리 인상의 영향권 안에 드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상승이 전국적인 현상이라면 금리 인상이라는 칼을 뽑을 수 있겠지만 특정 지역을 타깃으로 금리를 올리면 대출을 많이 받은 농어민은 어떻게 이자를 내겠나. 집 공급을 늘리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를 금리 인상이라는 대증요법으로 풀어선 안 된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의 수급 불일치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금리 인상의 칼을 빼는 것은 부적절하다.
▶정원석=지금 한국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 아닌데 왜 금리를 올리나. 지방 거주자가 실수요자로서 집을 샀는데 강남 집값이 올랐다고 자신의 대출금리가 오르면 받아들이겠나. 단지 부동산이 상승했다고 금리를 올리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최석원=금리를 올려 생기는 부의 재분배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저축을 많이 한 개인은 좋아할 것이고 기업들은 이자 부담 때문에 싫어할 것이다. 금리가 낮을 때는 기업들의 투자 증가 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 이런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현재 수준에서 금리를 더 올리는 것을 긴축정책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지만 적정 수준보다 낮았던 금리를 정상화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금리가 낮아 나타난 자산 거품 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신용상=미국.영국.호주 등도 금리를 올렸더니 실제로 부동산 가격이 잡히고 있다. 금리를 올리면 투자와 소비가 위축된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마땅한 대상이 없어 투자를 안 하는 것일 뿐이다. 금리를 올리면 저소득층 부담이 늘고 고소득층 소득이 증가해 소비가 줄 것이란 주장이 있지만 정확한 분석이 나온 적은 없다. 저금리를 유지해 투자.소비 진작 효과가 없고 시중 자금은 많아 부동산 가격의 불안정성을 키운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 무엇보다 1분기 성장률이 6.2%였다. 향후 경기 하락세를 감안하면 지금 안 올리면 기회가 없을 것이다. 금리정책이 경기를 진작하거나 침체시키는 효과가 떨어진 상황에서 금리를 조금 올려 왜곡된 시장가격과 자산배분을 시정하는 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그렇다면 부동산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다른 복안은 무엇인가.
▶정원석=금리 인상 등 국내에서 문제를 풀려 해선 안 된다. 최근 100만 달러 이내에서 해외에 투자용 부동산을 살 수 있도록 허용됐는데 이렇게 밖으로 자금을 내보내야 한다. 그러면 (시중 자금이 줄어) 저금리 문제도 해소될 것이다. 대출 비용을 차별적으로 부과하는 것도 방법이다. 예컨대 버블 세븐의 부동산을 살 때 담보대출을 받으면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 이자를 더 물리는 것이다. 다만 이런 정책도 결국은 수요 억제책일 뿐이다.
▶배상근=시중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쏠림 현상을 빚는 건 역시 투자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공급을 늘려야 문제가 풀린다는 얘기다. 강남처럼 특정 지역의 아파트를 선호하는 수요자들의 변화한 요구를 맞춰 줘야 한다. 억제책도 필요하지만 공급이 관건이다.
▶최석원=저금리가 유지되는 한 대출받기도 쉽지만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올라갈 것이란 기대가 형성된다. 따라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공급을 확충하는 것이지만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기대 수익을 줄여 줄 필요도 있다. 금리를 지금보다 올려 정상화해야 한다고 자꾸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처 :중앙일보 김준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