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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돈 밝히는 아이들2006-05-17
작성자요즘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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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업선택 기준 4명 중 1명 "돈이죠"

● 1. '남이 버린 물건을 탐하라. 얻어먹는 걸 부끄러워하지 마라. 공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라.' 서울 양천구 A초등 6학년 김모(12)군의 지갑 안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어린이 재테크 서적 '빈대가족의 가난 탈출기'에서 베낀 것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돈 내 놔!'. 친구들에게 100원을 빌려줘도 반드시 이자까지 받는다. 장래 희망은 은행원, 의사, 벤처사업가 등으로 수시로 바뀌지만, 그 기준은 항상 '돈을 많이 벌 수 있느냐' 여부다. 그는 "젊었을 때 빨리 돈을 번 다음 조기 은퇴해서 편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 2. 서울 도봉구 S초등 5학년 박모(11)군은 열흘마다 5,000원 씩 용돈을 받지만 늘 부족하다. PC방 게임비, 게임 사이버머니 등을 충당하려면 용돈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박군은 지난 3월부터 동네에 있는 치킨가게, 태권도 도장 등의 전단지를 아파트 단지에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물론 엄마 아빠는 모른다. 수당은 100장 당 1,000원. 지금까지 2만원 가량 벌어 모두 사이버머니를 사는 데 썼다.

'돈 밝히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규모 있게 용돈 쓰는 법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는 정도로 '돈에 밝은' 게 아니다. 어른들도 깜짝깜짝 놀랄 만큼 '대박 심리'와 '금전 만능주의'가 팽배해 있으니 문제다. '돈'이 직업선택의 기준이 되고, '돈 많이 벌어 편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있다. 돈 버는 법을 미리 배우기 위해 주식투자를 하는 어린이, 돈을 벌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어린이들은 이제 새삼스러운 풍경이 아니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D초등학교 6학년생 348명과 성북구 종암동 S초등학교 6학년생 274명 등 총 62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장래 직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에 대해 전체의 25%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응답(53.8%)이 가장 높기는 했지만, 돈벌이에 따라 직업을 고른다는 응답은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직업'(15%)이라는 답보다 월등히 높았다.

또 집 밖에서 전단지 돌리기, 빈병 팔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본 초등학생이 13.7%나 됐다. 경찰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돈벌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초등학생이 크게 늘었다"면서 "이 중 상당수는 학업장애와 탈선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에게 돈을 뜯기는 등 범죄피해까지 잇따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성균관대 김경수(경제학) 교수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어른들의 '돈 벌기 열풍'과 '대박 심리'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며 "사회공동체에 대한 인식도 서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해서든 부자가 돼야 한다'는 천민적인 사회의식이 확산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2. 조기 경제교육 바람직한가 ?
어린이 조기 경제교육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일반 경제교육과 재테크식 교육, 비영리 목적과 영리 목적의 교육이 난립하는, 지금의 과도한 조기 경제교육 열풍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들이 많다.
긍정론, “합리적ㆍ논리적인 사고력 키워준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조기 경제교육이 돈 버는 방법에만 치중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키우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경제교육이 어린이들에게 일상생활에서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경제사회 현상을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눈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국민은행 박 철 연구원도 “경제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결국 빈부격차의 원인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기 경제교육은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할 뿐 아니라 신용대란에 대한 ‘예방주사’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긍정론자들은 조기 주식교육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다. 어린이 경제학원의 한 관계자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이나 세계적 투자가 워렌 버핏도 어릴 때부터 돈과 주식을 가까이 했고, 미국 어린이들은 학교 정규 수업시간에 모의 주식투자를 한다”고 소개했다.

어린이들이 기업의 주주가 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경제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고, 경제뉴스를 통해 경제현상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정론, “편협한 사고만 길러줄 우려가 높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자들은 초등학생에까지 시장경제 원리를 가르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지적한다. 성균관대 김경수 교수는 “지역 사회나 가족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미국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면서 “공동의 이익이 무엇인지 훈련조차 안된 상태에서, 개인의 수익률이 최고 미덕인 주식교육과 모의투자를 하게 하는 행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돈 번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남 다르다고 하지만, 내 아이라면 조기 경제교육을 안 시키겠다”면서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고, 경제교육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못박았다.

지금과 같은 조기 경제교육이 결과적으로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주입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경제교과서가 가르치고 있는 경제원리는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며 “비판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경제교육을 시킬 경우, 오히려 편협한 사고만 길러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과 가격은 경제의 해결사이고, 사익을 추구하다 보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식의 원리가 비판 없이 전달될 경우, 오히려 잘못된 경제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요즘 전교조의 교육내용이 비판 받고 있지만, 재계의 조기 경제교육 또한 이념적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 대상의 경제교육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경제뉴스를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시장경제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균형 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지금의 조기 경제교육이 외환위기와 카드대란이 낳은 일종의 ‘과유불급(過猶不及)’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출처 : 한국일보 고재학(팀장)·유병률·안형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