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률 개정안 국회서 낮잠…사실혼도 늘어 대책 시급
새 가정 꾸린 탈북자 혼인신고 거부에 분통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면 불륜을 저지르며 살라는 말입니까?”
북한 이탈 주민 이아무개(40·광주광역시 광산구)씨는 2003년 5월 한국 입국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새로 만든 이씨의 호적엔 헤어진 아내와 딸이 올라 있다. 한국에 도착한 뒤 관계 당국에 가족관계를 진술한 내용에 따라 호적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이씨는 중국에 머물면서 만난 새터민(탈북자) 김아무개(42)씨와 광주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이씨는 “아내 김씨와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더니, 북한 아내와 먼저 이혼해야 한다며 거부됐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는 2004년 8월 서울가정법원에 북한의 배우자를 상대로 각각 이혼소송을 냈지만, 아직까지 판결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탈북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2년 전 간암 판정을 받았다”며 “아내와 법적인 가족이 돼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에 배우자를 둔 새터민들이 이혼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4일 서울가정법원 집계 결과, 북한에 배우자를 둔 새터민들이 북한의 배우자를 상대로 청구한 이혼소송은 207건에 이른다.
서울가정법원은 2004년 2월 한 탈북 여성이 북한의 남편을 상대로 낸 이혼 청구 소송에서 “북한의 남편과 법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이후 비슷한 처지의 탈북자들이 법원에 잇따라 이혼소송을 냈다.
하지만 서울가정법원은 “국내법의 이혼사유에 해당하지 않고, 이혼의 당사자인 북한의 배우자에게 소송서류를 전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 등을 들어 첫 판결 이후 재판을 모두 중지했다. 서울가정법원 박종택 공보담당 판사는 “이들의 사정이 절박하긴 하지만, 법적인 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재판을 중지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북한 이탈 주민들이 새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아도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등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탈북 여성 정아무개(36·서울 노원구)씨는 새터민인 남편과 사실혼 관계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못해, 지난달 아이의 첫돌을 맞고도 호적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새터민들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새터민끼리의 사실혼 또한 늘어나는 추세여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한나라당 김학원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이 2004년 10월과 2005년 9월 각각 ‘북한 이탈 주민 보호와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이혼특례 조항을 추가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 계류중이다. 이 개정안엔 △배우자 없이 홀로 입국한 뒤 국내 호적을 얻고 3년이 지나면 △‘배우자가 북한에 있어도 소재를 알 수 없다’는 통일부의 확인서를 받고 △법원 게시판에 공지하는 공시송달을 통해 이혼소송을 낼 수 있도록 돼 있다.
출처 :한겨레 광주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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