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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는 날, 그때 헤어지겠습니다"200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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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아내 23년간 손발 되어
금산중·고 김기창 교사... "죽는 날, 그때 헤어지겠습니다"

"...전생의 수많은 인연을 스쳐 부부로 맺어진 제 아내는 제 몸이며 제 살입니다. 죽으면 어차피 헤어지는 것, 죽는 날까지 아내의 손발이 되어서 지켜주고 싶습니다. 제 생명이 다 하는 그 날, 그 때 헤어지겠습니다."

얼마 전 MBC <사과나무>에서 2부작으로 방송되었던 김기창(54), 유영희(47) 부부의 말입니다.(2005년 7월 6일, 7월 20일 방송) 무심결에 보게 된 이들은 낯익은 얼굴이었습니다. 이십여 년 전 필자가 다니던 김제시 금산중·고등학교 기술 선생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가에 맺힌 눈물로 이미 희미해진 화면이었지만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방송을 보고 이 가족의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김기창 선생님과 여러 차례 통화를 한 내용을 싣습니다. 사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수는 없었지만, 전화 통화로나마 오래 이야기 하는 동안 제가 받은 감동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23년이란 세월 동안 아내의 손발이 되어 오늘의 아내와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김 선생님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여보, 조금만 아플 게요"라고 말하는 아내에게

당신이 아픈 세월을 사느라고 나보다 더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 잘 아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이젠 '미안하다' 든지 그런 이야기는 앞으로는 다시 하지 말았으면 하오. 당신이 살아가는 동안 덜 아팠으면 좋겠는데 주어진 아픔은 어쩔 수 없고,아픔도 살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이겨내야 하는 것이고, 여보, 우리 더 열심히 서로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하오. 언젠가는 당신의 그 아픔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최선을 다해 삶의 길을 걸어갔으면 하오. 여보, 사랑하오.

유영희(47)씨는 1급 지체장애인 입니다. 몸에는 인공관절이 여기 저기 심어져 있고, 오직 손가락 3개를 간신히 쓸 수 있는 몸으로 자판을 두드려 오늘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자신의 혹독한 병의 고통을 짊어지고, 자신의 손발이 되어준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 그 뜨거운 가슴 속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쓰고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처절하였던 지난 시절,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지난 시절, 그 어려운 역경을 헤쳐 나온 아픈 이야기를 세상에 밝혔던 것은 오직 이런 이유뿐입니다.

"우리 가족의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가 지금 어려움에 처한 단 한 사람에게라도 힘이 되어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전신류머티즘관절염'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23년 전 유영희씨가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선고 받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병명입니다. 김기창씨와 연애로 24세에 결혼한 유영희씨가 신혼의 꿈이 채 식기도 전인 27세에 받아들여야만 했던 병이었습니다. 이 병은 부부의 청춘을 앗아갔으며, 이제 부부에게 '오십대 부부'라는 표현이 붙었습니다. 유영희씨의 병과 함께 시작된 남편의 헌신적인 간병과 가족들의 사랑은 주변 사람들의 눈시울을 끊임없이 적셨으며, 언론 매체나 텔레비전을 통하여 전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적시었습니다.

'전신류머티즘관절염'은 연골이 없어지는 병으로 손가락, 발가락이 휘어지고 입까지 벌릴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고 굳는 병입니다. 유영희씨는 꼼짝 못하고 누워서 배변은 물론 모든 걸 남편의 손에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양말 한 짝 자신의 의지 대로 신을 수 없었으며, 숟가락도 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급기야는 '스테로이드 중독'과 '극심한 합병증'으로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선고까지 받으며 스스로 삶을 포기해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스스로 삶을 포기하라는 친정아버지의 냉엄한 권유를 받아들여야 할 만큼 처절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하였지만 남편은 결코 물러서주질 않았습니다. 오죽하였으면 친정아버지께서 사위에게 차라리 딸과 이혼해 줄 것을 요구했을까요. 그럴 때마다 남편 김기창씨는 아내와 장인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생의 수많은 인연을 스쳐 부부로 맺어진 제 아내는 제 몸이며 제 살입니다. 죽으면 어차피 헤어지는 것, 죽는 날까지 아내의 손발이 되어서 지켜주고 싶습니다. 제 생명이 다 하는 그 날, 그 때 헤어지겠습니다."

둘째를 임신한 후 선고받은 병이어서 간신히 아이를 낳았지만 단 한 번도 어미로서 안아주지도, 젖을 물리지도 못하였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 아이에게 어미 젖 대신 젖병을 물려 키우는 것도 남편 몫이었고, 시어머니 몫이었습니다.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첫째를 키워야 하는 것도 남편 몫이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집안일을 한 후 출근한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도 쉴 틈 없이 아이들과 집안일로 지쳐가도 어떻게 움직일 도리 없이 남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녀였습니다.

남편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들여 주는 것,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살아 주는 것만이 그녀가 남편의 헌신적인 간병에 보답하는 길이었습니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해 줄 수 없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 주어야 하는 걸로 나마 엄마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남편 김기창씨는 어떻게든 아내의 병을 치료해보려고 좋다는 약 이야기만 들으면 집요하게 찾아 나섰습니다. 인골이 아내의 병에 좋다는 소문에 비 오는 날 인골을 찾아 무덤까지 헤매기도 하였습니다. 아내의 병이 조금이라도 치유 될 수 있다면, 아니 죽는 날까지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아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면 어디든 약을 찾아 갔으며, 어떤 방법이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던 날들이었습니다.

'10번의 대 수술', 남편은 ‘만일의 경우에 아내의 생명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수술 때마다 써야만 했습니다. 아내의 치료비로 빚은 늘어만 갔습니다. 아이 돌 반지를 팔고 살던 집마저 팔아도 아내의 치료비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힘든 내색 한 번 없이 늘 밝게 웃던 김기창씨였습니다. 집에서는 아내의 손발이 되어 아내의 간병은 물론 어린 아이들을 키워냈고 낮이면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소임을 다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갓난 아이가 배고파 울어도 아이를 들어 젖을 먹일 수가 없었다. 머리맡에 놓인 젖병을 누운 채 물리다 보면 아이는 늘 사래가 들렸고, 기침을 하다가 젖을 토했다. 배가 고프다는 네 살짜리 큰 녀석 손에 동전을 쥐어 주며 빵과 우유를 열심히 가르쳐서 보내면 아이는 배부르지 않을 껌이나 사탕을 손에 들고 왔다.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줄 수 없다는 내 설움에 펑펑 울어 제치면, 아이는 덩달아 서럽게 따라 울었다. 어미도 굶고, 두 아이도 굶고…. - ‘내가 사는 이야기’ 중에서, 공모전 수상작

어미로서 젖 한 번 물리지 못한 아픔을 회한하는 글입니다. 치유할 수 없는 병으로 대소변조차 남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어미의 뼈저린 회한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배고파서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어미의 아픈, 그 마음을 수도 없이 담아야만 했던 유영희씨. 이제는 의젓하게 자라 난 두 아들입니다. 이제 엄마를 보호해주는 두 아들입니다.

큰아이가 다섯 살 때 친정식구들과 휴가를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편한 몸으로 매트리스에서 벗어나 맨바닥에서 잠이 든 그녀를 매트리스로 옮겨 눕히려 하였지만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아픔을 호소하는 딸에게 "병신…"이라며 무심코 탄식한 친정 엄마였습니다. 옆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큰 아이는 외할머니가 무심코 탄식하며 한 말에 “우리 엄마 병신 아니에요!”라며 외할머니께 따져 들어 휴가를 갔던 그날 밤 식구들 모두 눈물로 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끝내 말을 맺지 못하던 목메임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 런지요. 다만 이 가족에게 변함없는 격려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드릴 뿐입니다. 이렇게 알게 된 인연, 두고두고 마음의 후원을 변함없이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김기창, 유영희' …위 부모는 20여 년 동안 자식들을 훌륭한 인재로 성장시키기 위해 갖은 고생과 역경을 극복하셨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행복과 평화 그리고 사랑을 느끼며 자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세상을 살며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힘과 지혜를 가르쳐 주신 바 크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항상 깊은 사랑과 정으로 감싸 안아 주시며 그대들보다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애써 주신 점을 높이 감사드립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시고 자식들의 사랑 안에서 평안하시길. 부모님 사랑합니다!… 2004년 12월 25일, 큰아들 김신철, 작은아들 김재완, 최고 부모님 상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며 방송 출연을 한사코 거절한 남편 김기창씨였습니다. 그러나 방송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은 "우리 가족의 아픈 이야기, 역경을 극복해낸 이야기가 단 한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단 한 가족에게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는 9월 발간을 계획했던 아내의 책을 앞당겨 얼마 전에 냈습니다. 역경을 극복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어서 접해보고 싶습니다.

“아픈 아내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며 아내에게 고마워하는 남편 김기창씨는 오늘도 아내의 손발이 되어 집안일을 하고, 4년 전 노환으로 병중에 있는 어머니(82)를 병간하고 있습니다. 23년간 변함없이 바쳐 온 아내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고, 아내의 자리를 같이 해주신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 아들 김기창씨입니다.

아내 유영희씨는 2001년 전북평생교육원에서 본격적으로 수필 공부를 시작, 지난해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습니다. 비록 불편한 투병의 몸이지만 일주일에 꼭 한 편의 글을 써낸 열정으로 신인상을 받는 등 크고 굵직한 상도 4개나 받았습니다. 죽음의 강을 극복해 낸 그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자신의 간병으로 청춘을 바친 남편을 위하여 제목도 '남편의 외박을 준비하는 여자'로 정했습니다.

병을 선고받던 당시 막 걸음마를 하였던 큰아들 신철군은 공군 사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얼마 전 소위 임관을 받았습니다. 둘째 역시 금오공대를 수석으로 합격해 군 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두 아들 모두 등록금 한 번 부모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장학금을 안겨 주는 의젓하고 믿음직한 자식들입니다. 100세까지 오래 오래 살아 달라는 마음을 담아 어머니께 빨간 장미 100송이를 바치는 두 아들입니다.

아내 유영희씨는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깜짝 이벤트를 오늘도 변함없이 하고 있으며, 남편 역시 반은 속아 주고 반은 당해주고 있습니다. 남편의 장난 만큼 아내의 장난도 다양하여 늘 웃음이 있는 이들 부부는 주변에 '닭살 커플'로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남편 김기창씨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중학교 기술선생님이자 풍물 반을 운영하는 선생님입니다. 지난주까지만 하여도 방학 보충학습 야간 지도를 하며 방학 중에도 쉬지 못하고 학교에 출근했다며 평범한 교사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또한 <오마이뉴스> 열혈 독자라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하루에 열댓 번도 더 드나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활동을 맘껏 못하는 아내에게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려거든 <오마이뉴스>에 열심히 드나들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잊지 않고 아내에게 입맞춤을 해주는 남편과 아이들보다 더 철부지가 되기도 하는 유영희씨 가족 이야기를 MBC <사과나무>를 통해 보고 다시 보면서 목 메다가 끊임없이 불쑥 불쑥 나타나는 장난에 어이없어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녀 스스로 샤론 스톤을 닮았다고 자청하니 며칠 후 여름휴가 가는 길에 선생님 댁에 들러 반드시 확인을 해보아야겠습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장난과 웃음을 있게 한 아픔을 극복한 가족의 사랑이 참으로 소중해 보입니다.

죽는 날까지 완치할 수 없는 병으로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며, 일어서고 앉기는 여전히 불편한 몸입니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오늘도 자신의 이야기가 단 한사람에게라도 힘이 되길 바라며 불편한 몸으로 글을 쓰는 유영희씨입니다.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하기도 하는, 가족의 의미와 부부의 소중한 인연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이 부부의 사랑이 복음처럼 전해졌으면 합니다.

김현자(ananhj) 기자
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