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종남의 워싱턴 편지>>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75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2년 가까이 내무부(행정자치부)와 원호처(국가보훈처)에서 일하다가 1977년 5월부터 경제기획원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 경제기획원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한 해의 나라 살림살이 규모를 계획하는 소위 경제운용계획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법과대학 출신이었던 필자로서는 한국의 경제운용계획의 첫 머리가 왜 세계경제 전망으로 시작돼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계 경제 여건이 한국경제 운용의 중요한 전제가 되고 이에 대한 전망 없이는 우리의 경제운용계획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경제의 현 주소: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부존자원 하나 변변히 없는 우리 대한민국은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 매고 열심히 일한 덕택에 62년 개발연대를 시작한 지 40여년 만인 2005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6000달러를 넘어 서게 됐다. 경제전체 규모로는 2004년에 이어 2005년에도 10위를 유지한 것으로 추정되어, 한국은 2년 연속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상품과 서비스를 망라한 교역 규모로도 2005년 세계 12위에 해당하는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제 한국은 경제 전체 규모로 보나 교역 규모로 보나 더 이상 동아시아 조그마한 반도의 보잘 것 없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가히 세계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경제 속의 우리의 위상이 이 정도에 이르렀으니 세계경제 흐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한국경제 운용계획을 수립하거나 전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세계경제 속에서 한국경제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06년 세계경제: 강한 성장세 지속 예상
올 해 세계경제는 2005년의 4.3% 성장에 이어 강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측된다. 주요 국가의 경제전망을 살펴보면 우선 새로운 세계경제 성장엔진으로 떠오른 중국과 인도 경제가 각각 8% 중반과 7% 중반의 높은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지난 해 다소 주춤했던 미국경제는 올 한해 전반적으로 양호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여 지며, 그동안 부진했던 일본과 유럽경제는 견실한 회복세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바야흐로 성장기운이 세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1월 중순경 세계유수 전망기관들의 전망을 평균해 발표하는 컨센서스 전망 또한 이러한 세계경제 성장에 대한 우호적 기대를 반영한 듯 전년 11월 예상보다 좀 더 낙관적인 세계경제 전망치를 발표했다.
단기 불안요인: 고유가 지속, 금리인상 기조
이러한 세계경제성장에 대한 단기적 불안요인으로는 국제유가의 고공행진과 세계적 동반 금리 상승의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중국과 인도의 고성장에서 촉발된 원유에 대한 강한 수요 요인이 지속될 것이고 단기에 석유 공급을 늘릴 수 없는 현실 등을 감안해 볼 때 고유가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갈등이 석유 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또 다른 단기 불안 요인은 미국 연방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기조와 보조를 맞춘 세계적인 긴축정책의 동조화 가능성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데 힘입어 인플레이션이 비교적 잘 통제되고 있고, 세계공장인 중국으로부터의 값싼 공산품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세계는 유례없는 물가안정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인플레이션 조짐이 다시 서서히 나타나고 있고, 고유가에 따른 물가의 2차 파급효과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한 주요국들의 연속적인 동반 금리인상 가능성이 세계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단기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금리인상이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고 인상기조가 범세계화될 경우 이는 전 세계적인 투자 감소와 소비둔화 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구조적 불안요인: 세계불균형
세계경제의 구조적 불안요인은 2004년 봄 무렵부터 또 다시 국제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여타 세계 여러 나라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흑자로 대변되는 세계불균형으로 종합될 수 있다. 최근 석유수출 국가들이 고유가 덕으로 아시아 국가들을 능가하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내면서 흑자국 대열에 동참함에 따라 종전보다 세계불균형 전선은 더욱 확대되는 모습이다.
특히 미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의 7%(약 8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적자는 세계 금융자금 흐름의 70%를 미국으로 끌어들여 옴으로써 간신히 메꿔 지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불균형은 과잉 투자가 불러온 일련의 경제위기, 즉 일본의 자산버블 붕괴, 아시아 및 중남미의 위기와 최근의 IT버블 붕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세계 불균형은 아시아 국가에서의 투자부진과 미국의 소비활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위기를 겪은 후 신중하고 보수화된 아시아 국가들이 무역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제대로 투자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저금리와 확장적 재정정책 등으로 소비가 지나치게 늘어난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세계적 불균형이 불안정한 환율변동에 따라 급격한 금융시장 혼란으로 이어져 결국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국제경제 흐름을 잘 살펴야 할 필요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불균형이 전세계적인 현상이므로 이해 당사국들의 쌍방에 대한 책임전가로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진단하고, 국제사회 모두의 공동책임의식과 협력적인 정책 공조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재정적자 축소, 일본과 유럽의 구조개혁 추진, 아시국가들의 환율신축성 확대(특히 중국과 일본의 통화가치 상승) 및 석유수출국들의 수요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월 2일 미 재무부 국제담당차관 팀 애덤스는 전 세계 환율문제에 대한 IMF의 보다 강력한 역할 제고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편 지난해 12월 워싱턴 소재 국제경제연구소(IIE)는 인위적인 통화가치 조정(미국달러가치 하락과 일본·독일 등 선진 4개국의 화폐가치 상승)을 초래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가 또 다시 필요한 상황이라며 신흥국들을 포함한 20개국(G20)이 참여하는 제2의 플라자 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도 19% 추가 원화가치 상승이 필요하다고 진단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적과 동지의 구분이 없는 냉엄한 국제경제사회의 움직임을 몸소 지켜보면서 세계경제 흐름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하며, 또 이러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어떠한 상황으로 전개되어 질지 예의주시하고 대비하는 일이 국익차원에서 얼마나 절실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1952년생. 1975년 서울대 법대 졸업, 17회 행정고시 합격. Southern Methodist Univ.(SMU) 경제학박사. 통계청장 역임. 현 국제통화기금(IMF)이사. 주요저서로 전환기의 한국경제, 경제계획 및 거시경제정책의 역할, 한국인 당신의 미래 등 다수.
※ 외부 칼럼은 국정브리핑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