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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家長이 된 어머니…일당 5만원에 청소부·파출부로2005-12-07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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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찾아 나서는 50대 여성들]

- 54%가 취업전선에
… 상당수 남편 실직·노후자금 ‘0’ 저성장·조기 퇴직의 그늘
… 기술없어 인력시장 몰려

2일 새벽 5시30분 서울 남구로역 앞 새벽 인력시장. ㈜남부인력개발의 25평 남짓한 사무실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다. 뽀얀 담배 연기와 기침 소리, “용접, 전기공 한 사람씩!”이라며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떠들썩하게 흔들어 놓는다. 그 틈에 박형진(52·가명)씨도 끼어있었다. 추위를 막느라 옷을 겹겹이 껴입고는 비슷한 또래의 여성 2명과 함께 오도카니 앉아 있다. 남자들은 쉼없이 이름이 불리고, 누군가의 인솔에 따라나가지만 여성 일손을 찾는 소리는 좀처럼 없다. 6시가 넘어서야 겨우 박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파트 공사) 현장 청소, 5만5000원. 아줌마, 여기 현장 약도하고 연락처 받아가세요.”

하루를 공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인 박씨로선 이것저것 따질 입장이 아니다. 그는 “아침을 주지 않는 곳이네요”라고만 묻고는 약도를 받아들었다.

◆생계를 위한 ‘강요된 취업’

“돈이 있으면 왜 이런 데 오겠어요?”

왜 ‘노가다판’에 왔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남편은 전직 은행원. IMF 직후에 명예 퇴직당했다고 한다. 남편이 지금 뭘하는지는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취업 전선에 초로(初老)의 50대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 과거 같았으면 손주들 재롱을 지켜볼 나이. 하지만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남편들 퇴직도 빨라지면서 뒤늦게야 생계를 위한 취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 50대 여성 취업은 생계를 위한 사실상의 ‘강요된 취업’이라는 점에서 자기계발 목적이 강한 20·30대 여성 취업과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00명 중 54명이 취업 전선에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방배동의 산후(産後)조리 도우미 파견업체 A사. 10평쯤 되는 교육장에 아기용 욕조가 놓여 있다. 그 주위를 둘러싼 50대 여성들이 인형을 안고 신생아 목욕법을 배우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아이 눈에 비누가 들어가지 않도록 머리를 감기는 것부터 쉽지 않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지켜보던 강사의 지적이 용서없이 떨어진다.

실습 중인 김영임(가명·54)씨. 그는 결혼 후 27년간 외교관인 남편과 두 딸의 뒷바라지만 해온 전업주부였다.

“2년 전에 남편이 퇴직했어요. 남편 앞으로 나오는 연금 수입만으로는 세 가족(큰딸은 결혼) 생활비와 둘째 딸 교육비도 대기가 벅차요. 둘째 결혼자금과 우리 부부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여기 있는 사람들 처지가 저랑 대부분 비슷해요.”

이 업체에서 매일 5시간씩 10일간 교육을 이수하면 접수 순서에 따라 산후조리 도우미로 일할 수 있다고 한다. 교육비는 5만원. 출산 직후 한 달간 산모의 산후조리를 돕는 산후조리 도우미의 보수는 입주(入住)의 경우 월 170만원, 출·퇴근(9~18시)은 월 120만원 선이다.

구로여성인력개발센터 한명희 관장은 “저성장과 조기 퇴직이 일반적 추세가 되면서 50대가 돼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가 안 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0대 여성 취업자는 139만9000명으로 지난해보다 9.1% 증가했다. 완만하게 늘다 지난해(5.3%)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5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취업 중이거나 일자리를 찾는 사람 비중)은 54.2%. 100명 중 54명꼴로 취업전선에 나섰다는 뜻이다.

◆돌아오는 것은 형편 없는 일자리뿐

최주영(가명·58)씨는 올 연초부터 남편과 떨어져 주말 부부가 됐다. 최씨가 경기도 일산 30대 맞벌이 부부 집에서 입주 도우미(파출부)로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서 출·퇴근하면 괜히 남편과 다툴 일만 생기고 생활비도 더 드니까 아예 입주가 편하다”고 했다.

“세월이 이런 걸 누굴 탓하겠어요. 우리 세대가 원래 힘겹게 살도록 돼 있나 봅니다.”

최씨는 평일에는 입주한 집에서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둘을 돌보면서 식사 준비와 청소·빨래 등을 챙기고, 주말에는 집에 가서 밀린 집안일을 처리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50대 여성들은 회사라는 조직에서 너무 일찍 쫓겨난 남편을 대신해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조건이 형편없는 일자리를 찾아나서고 있다”며 “노인세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가슴 아픈 세대”라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나지홍, 염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