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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청년장애여성 취업을 꿈꾸다-①2005-11-29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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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인이 당당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그날까지"

5년 전, 뇌종양 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았던 제게 '뇌종양'은 큰 병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부랴부랴 수술을 받았지만 생각지 못했던 후유증으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한 달 이상을 누워 있던 탓에 모든 근육과 관절이 굳어 버리고, 소뇌에 종양으로 균형감각도 잃고, 시신경도 많이 손상되어 시력까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혼자서 앉을 수도 없고 목을 가누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주시는 음식이나 받아먹고 살아야 한다니 기가 막혔습니다.

그 시점에서 제가 안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부모님은 서둘러 자퇴를 시키셨습니다. 그 상태로 학교에 다니기는 불가능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뒤 재활만을 열심히 하기로 했습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 할까요?

아버지께서는 23년간 다니시던 직장도 그만두신 채, 제 재활에 온갖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좋다는 병원마다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습니다. 정말 죽음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힘든 치료 시간도 많았지만, ꡒ아ꡓ하고 외마디 비명만 지를 뿐 치료를 거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제게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저는 중학교 중퇴자로 머물러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 서울과 수도권의 장애학교에 연락도 해 보고, 방문도 해 보았지만 저에게 맞는 장애학교는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처음에는 몸도 성치 않은데 웬 공부냐며 반대가 심하셨지만 절실하게 새벽까지 공부하는 제 모습을 보신 후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공부에 재미가 붙었습니다. 대입 검정고시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지체 장애로 학원에 다니기 불편하여 고입검정고시 때처럼 동영상 강의를 수강하며 확대경을 이용해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저는 대학 진학까지 꿈꾸게 되었습니다. 수학능력시험을 위해 교육부에 몇 차례 문의해 보았지만, 소수의 저시력자를 위해 제도를 개편할 수 없다는 안일한 태도였습니다. 중복장애인으로써 무리라는 생각이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글쓰기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 학창시절 각종 교, 내외 글짓기 상을 독차지하여 경희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진학 후 외출이 잦아졌습니다. 저 같이 중도에 중복장애인에게 혼자만의 외출은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갑작스런 장애로 아무 정보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제 외출에 부모님 중 한 분은 동행해야 했습니다.

‘사이버 수강’을 위해‘노원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정보화 교육’을 받았습니다. 장애를 갖기 전에도 컴퓨터를 능숙하게 사용했던 터라 확대 프로그램을 이용해 정보의 바다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실로암 시각장애인 복지관’ ‘성북 시각장애인 복지관’ ‘서부 종합장애인 복지관’ 등 꼼꼼히 정보를 찾아 교육을 받으러 가보면 그럴싸하게 이름만 좋을 뿐, 차라리 운동이나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그냥 되돌아 온 경험이 여러 번 입니다. 또 참여인원이 적어 폐강되는 프로그램도 있는가 하면, 치료를 목적으로 기초적인 부분만 다루어 실망하였습니다.

장애인 신문 ‘에이블뉴스’의 광고를 보고 알게 된 ‘청년 장애 여성 <삶,꿈 그리고 일> 인텐시브 2차 캠프’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틀’을 보냈습니다. 중도 장애인에게 또래들과 어울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같은 20대 여성장애인 이라는 공통점으로 더욱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캠프 첫째 날에는 MBTI검사와 이미지 찾기 게임 등을 통하여 자신의 삶과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즐거운 일 찾기’와 ‘글쓰기의 즐거움’ 그리고 ‘나를 표현하는 좋은 방법’ 시간으로 실질적인 일을 찾아보고 이력서, 면접에서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나 20대에는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방황한다고 합니다. 장애인에게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나 보장이 비장애인보다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캠프로 인해 ‘작가’라는 꿈이 확실해졌고, 확실해진 꿈으로 일도 찾고, 더욱 윤택해진 삶을 영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박2일 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빡빡한 교육 일정에 얽매여 어렵게 만난 동료인데 서로 친해질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2박3일 정도로 기간을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 남습니다. 그리고 캠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번 정도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 친목도 다지고, 더욱 계속적인 교육을 통해 장애여성도 당당한 사회일원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뇌병변 장애’라고 하면 나이 드신 분들의 ‘뇌출혈, 뇌졸중’정도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운동하는 ‘서부재활체육센터’에서만 보아도 저보다 어린 ‘뇌병변 장애인’이 많습니다. 의학이 발달하였다고 하지만, ‘뇌병변 장애’는 중도 장애가 많을 뿐더러 하루아침에 낫는 병이 아니라 점을 찍듯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며, 그로 인한 후유증도 오래 가다보니 자신과의 싸움이 길어집니다. 의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데다가 미래를 생각하다보면 암담하며 두려움까지 엄습해 옵니다. 이럴 때 ‘뇌병변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삶과 꿈을 생각해보게 되는 이번 캠프 같은 실질적인 프로그램이 꼭 필요합니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어린 나이에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속적인 교육으로 전문적인 일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는 이론적인 것에만 능할 뿐이지 장애인의 편에서 진정 원하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고 합니다. ‘장애여성문화공동체’에서 주최한 이 캠프에서는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못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정부에서 이 같은 NGO단체를 지원함으로 더 좋은 프로그램이 개발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제 꿈은 아나운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소식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얻고, 어눌한 발음과 저시력을 고려해 ‘작가’로 꿈을 수정했습니다. 저는 욕심이 많습니다. 시로 시작하여 소설, 시나리오, 문학의 꽃 수필까지, ‘문학 만능 엔터테이너’가 제 꿈입니다. 부디 장애 여성도 당당한 사회인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저희 장애 여성들을 대표해 멋지게 살아가시는 ‘장애여성문화공동체’ 김미주 대표님께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제가 지은 시 한 편을 낭송하겠습니다.

시인으로…

나는 저시력 일지라도
슬프지 않아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은 걸 볼 수 있거든요.

나는 지체장애일지라도
슬프지 않아요.

시인의 다리로
세상에 발을 디딜 때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넓은 세상을 걸을 수 있거든요

내가 불편한 몸일지라도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시의 향기와 맛에 취하고
그 감흥을 전할 수 있기에…

*김빛나씨는 경희대 학생으로 뇌병변장애를 가진 청년장애여성입니다. 이 글은 장애여성문화공동체가 지난 11월 24일 서울여성플라자 NGO센터에서 개최한 ‘삶, 꿈 그리고 일’ 결과워크숍에서 발표된 원고입니다.
에이블뉴스는 2차례에 걸쳐 청년장애여성들의 취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다음 차례는 서울대 박윤정 학생입니다.

기고/김빛나 (bich0717@hanmail.net)

출처 : 에이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