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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배고픈 박사, 공장으로 가다2005-11-28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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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인천시 남구 인천직업전문학교. 기자가 다가가자 박문희(40·가명)씨는 자리를 소리 없이 옮겼다. 한사코 인터뷰는 싫다고 했다. 출판인쇄 실습실에서 박씨는 묵묵히 A4용지 한 장 분량의 원고를 두 페이지짜리 책으로 만들었다.

박씨는 서울소재 K대 문과대에서 석사를, 사범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엘리트다. 그러나 인천직업전문학교 생활지도 교사도 지금까지 박씨가 박사과정을 마친 지 몰랐다. 이 학교에선 공식적으로 ‘고졸’이었다. 그녀는 기술을 배우러 지난 3월 이곳에 왔다. 책이나 전단 디자인을 배워 출판사나 인쇄업체에 취업할 계획이다. 그녀에겐 학력이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대학원 동기들을 보면 시간강사로 일해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법니다. 여기서 기술을 배워 취업해도 그 정도는 벌어요.” 1980년도엔 고졸자들도 학력이 높다고 ‘입학 거부’를 했던 직업전문학교. 15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료로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졸업 후엔 용접공, 선반공, 건설현장 전기기술자 등으로 취업하는 이곳에 요즘 대졸자들이 몰린다. 산업인력관리공단에 따르면 올해 21개 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한 6461명 중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자는 31%로, 2004년 17.6%에 비해 급증했다. 강릉직업전문학교에서는 2004년부터 아예 대졸자들을 위한 고급반까지 만들었다.

지난 2002년 경북 D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이 학교에 입학한 김정훈(27)씨. 아침7시 조회에 이어 자신이 맡은 작은 화단 청소를 끝낸 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정말 막판까지 갔다는 심정으로 이곳에 왔지요. 처음에는 날카로운 선반 속으로 손을 넣는 것도 무서워 적응하는 데 두 달이나 걸렸습니다.”

김씨는 수료검정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매일 밤 9시30분까지 선반실습을 한다. “하루종일 선 채 선반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있어야 하고, 쇳가루를 많이 마셔 목도 아프고….” 강원 S대 정보통신공학과 출신인 이기훈(28·가명)씨는 2004년 강릉직업전문학교 공조냉동과를 졸업했다. 이씨는 가스기사, 공조냉동기계산업기사, 보일러산업기사 등 자격증 7개를 취득해, 현재 모 산업병원에서 일한다. 이씨는 “대학에서보다 여기 경험이 훨씬 도움이 돼요. 일류대를 나와도 취업난을 겪는데, 지방대는 말할 것도 없어요”라고 했다.

대졸자들이 직업전문학교를 나와도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대졸 출신은 ‘고졸’ 경쟁자에 비해 나이가 많다. 취업해도 연배가 비슷한 이들이 이미 ‘반장’급이다. 또 “얼마 버티지도 못할 텐데…”라며 자리를 주지 않는 곳도 있다. 지방대 법대를 졸업한 김종인(31·가명)씨도 “초봉 80만원, 한 달에 50시간 이상 잔업해야 월급 150만원을 겨우 맞출 수 있는데, 사실 걱정”이라고 했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