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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뇌성마비 장애학생의 ‘힘겹지만 아름다운’ 수능도전2005-11-22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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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경운동에 위치한 정신지체장애 학생들의 배움터인 경운학교.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낮 12시30분. 서울 화곡고등학교 3학년 정노윤(19)군은 예비소집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남들보다 먼저 시험장을 둘러보고 싶어서다.쌀쌀한 날씨도 정군의 열정 앞에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서울 발산동 집에서 한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힘들게 왔지만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정군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1층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서 수험표를 받았다. 마치 보물을 받은 것처럼 수험표가 든 봉투를 꼭 껴안은채 ‘난 해낼 수 있어’라며 속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정군은 소감을 묻자 불편한 발음이 마음에 걸렸는지 멋쩍은 미소만 보였다. 오후 1시가 가까워지자 정군은 예비소집장인 4층 체육관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체육관 앞에는 시험을 볼 교실 지도와 수험번호가 적혀 있었다. 교실을 확인한 정군은 자리에 앉아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 정군이 향한 곳은 2층에 있는 시험장. 아버지의 부축을 받아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내려간뒤 ‘87 시험실’ 이라는 팻말을 본 후 천천히 교실 안을 살펴봤다. 책상은 모두 5개. 일반 학교 책상보다 넓어 시험을 보는데 큰 불편함이 없을 듯했다. 인솔 선생님이 정군에게 “가운데 자리”라고 말하자 역시 미소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수능시험은 정군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정군은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장애 2급이었다. 평평한 곳은 혼자서도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지만 언덕길에서는 쉽게 넘어졌다.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없다. 정군이 마음먹은대로 쓸 수 있는 손가락은 왼손 엄지 검지 등 다섯개 뿐이다. 하지만 그는 다섯개 손가락으로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

정군의 꿈은 시인. 초등학교 때부터 산과 바다,꽃과 달을 보며 시를 지었다. 노력 덕분에 정군은 지난해 경원대 주최 창작 백일장에서 ‘아름답게 우는 새벽’이라는 시로 대상을 받았다. 이미 써놓은 시가 100편을 훌쩍 넘어 시집을 내라는 권유도 받았다.

물론 꿈을 이루기 위한 정군의 수험생활은 정상 학생보다 너무 힘들었다. 허리디스크도 앓고 있는 정군은 의자에 오래 앉아서 공부하는 게 힘들었다. 통증 때문에 집에 일찍 온 날은 누워서 버텨야 했다.

예비소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미소로만 마음을 표시했던 정군이 “나와 같은 장애우에게 내 이름으로 된 시집을 선물하고 싶다”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고 싶지만 장애 때문에 답답하다”며 “자연스럽게 글로 옮기다보니 어느새 시인이 꿈으로 굳어졌다”고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물론 시험을 잘 보고 싶다는 소망도 잊지 않았다.

정군처럼 2006학년도 수능을 치르는 장애인 학생은 모두 649명. 이들에게 23일은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출처 : 국민일보 쿠키뉴스 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