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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지친 소 벌떡 일어난다는 '세발낙지의 힘'2005-11-17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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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낙지를 통째로 못 자셔 봤다고? 아이고, 세상 덜 살았네 그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대전발 0시50분”의 종착지인 목포로 갑니다. 하지만 ‘대전 부르스’처럼 자정 넘어 떠나는 완행열차가 아니라 훤한 대낮에 KTX로 갑니다. 낙지 먹으러 갑니다. 그 유명한 목포 세발 낙지 먹으러 갑니다. 기력이 빠져 모든 게 심드렁해진 한 해의 끝자락, 힘센 낙지 다리에 칭칭 휘감기고 싶습니다. 낙지는 단비 맞은 화초처럼 불끈 활력을 돋게 해줍니다.

농사가 한창 바쁠 때 전라도 해안가에선 낙지를 호박 잎에 싸서 지친 소에게 먹였답니다. 낙지 먹은 소는 신기하게도 금세 원기를 되찾아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자산어보’나 ‘동의보감’ 같은 조상님들의 기록에도 낙지의 효험이 자자합니다. 그야말로 바다에서 나는 산삼인 셈입니다.

낙지라고 다 같은 낙지가 아닙니다. 뻘(개펄)에서 잡은 세발낙지가 단연 최고로 맛 있습니다. 부드러운 개흙에 맛사지 한 탓에 무척 부드럽습니다. 그리고 씹을 수록 깊은 맛이 나지요. 뻘에서 다양한 먹이를 섭취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낙지는 아낙네들이 개펄 밭에서 구멍을 쑤시며 잡아온 것이 참 맛이라 하겠습니다.

발이 세개가 아니고 한자로 가늘다는 뜻의 세(細)자를 써서 ‘가는 발의 낙지’라는 뜻입니다. ‘새’의 발처럼 가늘다고 ‘새발’이었는데 문자께나 한다는 분들이 유식한 척 하려 한자로 ‘세발’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린 세발 낙지는 짭짤하면서도 달디 달고 쫄깃쫄깃 하면서 감칠 맛이 납니다. 세발낙지는 나무젓가락에 꽂아 입안에 밀어 넣고 먹어야 제 맛인데 큰 놈은 아무래도 위험하고 흉측하죠. 얼마 후면 세발 낙지 맛 있는 철이 지나 간답니다. 그러니 서둘러 목포로 가야겠습니다.

목포역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간 곳은 낙지 식당으로 꽤나 유명하다는 20년 역사의 ‘독천식당’(061-242-6528). 목포역에서 걸어서 5~6분 거리입니다. 낙지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가 나오는 이곳은 연포탕(1만3000원)·낙지 비빔밥(8000원)·낙지구이(3만원)·산낙지(3만원) 등 메뉴가 20여가지나 됩니다.

과연, 독천식당의 낙지 맛은 기가 막힙니다. 첫 느낌은 ‘정말 연하다!’ 그리고 그 요동치는 힘. 온 정신을 집중해서 씹고 씹는데도 낙지가 입안에서 계속 끈질기게 저항하는 바람에 혹시 목에 걸릴까 슬며시 겁도 납니다. 첫 느낌은 연한데, 금방 가지 않는 끈질김. 이 이상한 모순이야 말로 낙지의 매력 같습니다.

독천식당에서 소비하는 세발낙지는 하루 평균 300~400마리. 전량 무안에서 옵니다. 낙지하면 목포라고 하지만 사실 목포에는 낙지가 잡힐 뻘이 없습니다. 그전엔 더러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간척지로 변해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모두 인근 무안이나 신안 또는 영암, 고흥, 함평 등에서 잡아 올린 낙지들이 목포서 집합, ‘목포 낙지’라 불리는 겁니다. 좋은 뻘 낙지가 많이 나는 무안군이나 신안군 같은 곳에선 몹시 억울할 것도 같습니다.

독천식당 손님은 열에 아홉이 외지인. 10여명에 달하는 일본인 단체 손님도 보입니다. 이들은 진도 운림산방과 해남 땅끝 마을로 여행을 왔다는데 알고 보니 모두 서울 사는 주재원들이었습니다. ‘너무 부드러워요’를 연발하던 일본 사람들은 나무 젓가락에 양념한 세발낙지를 돌돌 감아 석쇠에 구운 ‘낙지 호롱구이’를 특히 좋아했는데요. 먹는 법을 몰라 쩔쩔매면서도 맛 있게 쩝쩝거리는 폼이 재미있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북항(뒷개)에서 배를 타면 고작 10분 거리에 있는 섬 ‘압해도’를 다녀왔습니다. 신안군 압해도에서는 뻘낙지 잡이가 한창이더군요. 목포로 돌아와 앞 선창 중간 쯤에 있는 ‘우리 음식점’(061-244-8200)으로 갔습니다. 오전 6시부터 문을 여는 이곳은 목포 어부들, 상인들이 즐겨 찾는다고 하네요. “아가! 파 썰어 넣고 마늘 조사 넣고 연포탕 거시기 해라.” 딸과 며느리를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는 할머니가 주방을 지키고 계십니다. 산 낙지 4마리를 통째로 넣고 끓인 연포탕(3만원) 맛이 담백하면서도 칼칼한 게 아침 바다의 비릿함에 끈끈하게 절여졌던 몸을 시원하게 풀어줍니다.

해발 228m의 유달산을 올라가 목포 시내를 휘 둘러보고 내려왔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곰집 갈비’(061-244-1567)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포 세무서 근처에 있는데요. 이곳에서 먹은 낙지 회냉면(1만원)은 참으로 별미 중 별미였답니다. 벌겋게 양념한 메밀로 만든 함경도식 비빔 냉면에 어린 세발낙지 한 마리가 꿈틀꿈틀. 냉면 그릇에 코를 박고 먹다가 낙지와 눈이 마주칩니다. 낙지는 냉면 그릇 안을 마구 휘젓고 다니고요. 어찌나 힘이 센지 젓가락으로 떼어내기가 힘들 정도랍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모양새가 영 안 좋습니다만, 아무튼 맛 만은 감동적입니다. 고소한 참기름과 맵지만 깊은 초장 맛이 세발낙지와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목포 세발낙지 맛에 포로가 된 1박2일이었습니다. 목포를 떠나면서 외쳐 봅니다. “산낙지를 통째로 못 자셔 봤다고, 아이고 그랬다면 당신 세상 덜 살았네 그려~.”

출처 : 조선일보 사석원 화백


>> 낙지 요리 상식

● 연포탕= 부드러울 연(軟)자에 거품 포(泡). ‘포’는 두부라는 뜻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연포탕에는 두부가 들어가지만 최근에는 낙지 연포탕이 너무나 유명해 졌기 때문에 연포탕 하면 낙지탕으로 오인하기도 합니다.

● 조방낙지= 일제 강점기 때 부산 자유 시장 자리에 있던 조선방직 앞 낙지 집에서 유래. 고된 일과 후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 위해 사람들이 매운 고추장 듬뿍 넣어 얼큰한 낙지 볶음을 먹었다네요. 지금은 부산진구 범천동 평화시장과 자유시장 주변에 조방낙지 거리가 형성돼 있습니다.

● 기절낙지= 낙지를 바구니에 넣어 민물로 박박 문지르면 낙지가 기절하고 맙니다. 정신 나간 낙지 다리를 손으로 하나씩 찢어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 내놓습니다. 무안군에서 개발한 요리법으로 순두부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산 낙지의 쫄깃함이 살아 있습니다. 낙지가 소스에 닿는 순간 다시 꿈틀거리는데 그것이 기절 낙지의 묘미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