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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드디어 정규직이 되었어요"2005-11-15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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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증 치료 받고 있는 27세 구직자 취업기

그를 눈으로만 보고 있으면 위태로워 보인다. 속삭이는 바람에도 금방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하지만 그는 결코 위태롭지 않다. 마음의 귀를 열어놓으면 어느새 부유물이 아닌, 세상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그는 현재 당당한 27세 직장인이다.

오전 시간에 그가 찾아왔다. "근무할 시간인데, 어쩐 일이에요." 마음 속에서는 에고, '이번에도 또'라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일감이 줄어서 생산라인이 모레까지 쉬어요. 그래서 인사할라고 왔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는 3년 전, 우리 고용안정센터를 찾아온 심층상담대상 구직자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충격에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 그는 자그마한 동네에서 식육점을 하고 있는 고모집에서 누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의 최대 목표는 취업이었다. 어서 빨리 취업을 해서, 위출혈로 피를 토하면서도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누나의 건강을 찾아주고 싶어 했다.

이력서, 자기소개서 쓰는 법, 면접 보는 법을 아무리 연습을 해도, 눈에 띌 만한 진척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거의 매일 고용안정센터를 찾아왔다. 하루라도 건너뛰면 어제는 왜 올 수 없었는지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곤 했다.

그의 말에 특히 귀를 기울여준 이는 내 파트너인 정 선생이었다. 소매부리가 헤어진 옷을 입고 온 그가 안타까워 정 선생은 우리 아들 사 놓고 한번도 안 입는 옷이 있는데 갖다 주면 안 될까? 밥은 제대로 먹고 왔는지, 혹시라도 배가 고플까봐 프로그램실에 있는 다과를 챙겨서 호주머니에 넣어주곤 했다.

그런 탓에 정에 목말라 있던 그는 유독 정 선생을 따랐다. 직접 찾아오지 못하면 전화로라도 기어이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는 사이 취업알선을 통해 여러 번 취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달을 견뎌내지 못했다. 체력이 워낙 약한 탓도 있지만, 우선은 그가 앓고 있는 병 때문이었다. 헛것이 보이고,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그를 주변에서 이해를 못했다.

그렇게 직장을 들락거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세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꾸준히 전화를 걸어왔고, 시간이 나면, 제 집처럼, 와서 머물다갔다.

그에게 또 다시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이 온 것은 초여름이었다. 반가운 마음 반, 얼마나 견뎌낼 수 있으려나 걱정 반이었다. 그런 그가 5개월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축하해주세요. 어제부로 일용딱지를 떼고, 정규직이 되었어요."
"우와, 축하해요."

이쪽저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탄성이 터진다.

"딱 두 명만 되었거든요. 근데 그중에 제가 끼었어요."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웃는다. "대단해요. 대단해. 언젠가는 될 줄 알았다니까요." 정 선생이 어깨를 다독거린다.

"그동안 누나한테 미안했는데 이제는 덜 미안하고 회사에도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좋아요. 누나한테 선물도 사 줄 수 있고. 일하니까 좋아요." 연신 싱글벙글이다. "일을 해서 그런지 얼굴도 더 멋있어졌네." 정 선생의 말에 그는 "진짜예요"라며 얼굴을 붉힌다.

"정규직까지 됐는데 힘들어도 꼭 이겨내야 돼요."
"네. 이제 누나가 건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치료는 지금도 받고 있죠."
"한 달에 한 번씩 가서 약만 타 가지고 와요."
"그래요. 건너뛰지 말고 꾸준히 먹어요. 건강해야 일도 잘 할 수 있잖아요. 이제 정규직인데 금방 퇴직할 수는 없잖아요."

정 선생과 나는 진심으로 그가 정규직이 된 것을 축하했다.

그를 알게 된 지 삼 년. 그래도 가장 오랫동안 근무를 하고 있는 곳이 현재 다니는 곳이다. 일이 조금 서툴러도, 몸이 조금 불편해도, 이해를 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고 한다.

그가 앓고 있는 병은, 니체가 말한 기억술의 가장 강력한 보조수단인 '고통'의 대치품인지도 모른다. 어려서 받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상처가 되어 그것을 재현하기보다는 왜곡하거나 과장하게 만든다는.

이제 겨우 일용딱지를 뗀 그가, 자신이 싸우고 있는 병마도 거뜬히 이겨내 직장에서도, 인생에서도, 주변인이 아닌, 당당한 정규직이 되었으면 좋겠다.


출처 : OhmyNews 이명숙(lhmms)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