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게시판 ▶ 소식란
소식란

제목아내가 다시 웃는 그날까지2006-05-01
작성자관리자
첨부파일1
첨부파일2
첨부파일3
첨부파일4
첨부파일5
아무리 어려워도 내게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

병실 천장만 멍하게 바라보다 눈마저 감은 아내의 깡마른 몸을 안고서 이규목(63)씨는 주변에 아랑곳없이 “우리 마누라가 얼마나 미인이었다고. 이쪽으로 조금만 움직여봐. 여보”라며 큰소리로 사랑의 말을 건넨다.

이를 지켜보던 같은 병실의 환자들과 간병인, 환자 가족들. 이런 그의 모습을 어지간히 많이 보아온 탓인지 “이제 ‘사랑타령’은 그만 하라”며 한마디씩 타박을 하지만 싫어하는 눈치는 보이지 않는다.

이씨의 부인 강애신(63)씨는 치매에 뇌경변으로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중증 환자. 여기에다 욕창으로 용산 중앙대병원에서 6개월째 입원하고 있다. 입원 초기 배에 관을 넣어 음식을 공급할 정도로 위독했던 상황이 밤낮을 가리지 않은 남편의 보살핌으로 호전됐지만, 주변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남편의 손길이 오면 반갑다는 듯 눈빛만 바뀔 뿐이다.
강씨가 병에 걸린 것은 지난 10년 전 건설현장에서 철근을 시공하던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면서부터. 유복한 편이었던 생활이 일시에 무너져 버린데다 모친이 별세했을 때 장례에도 가보지 못한 죄책감이 겹쳤는지 강씨는 5년 전부터 거의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그 후 이씨는 아내의 병세가 위중해진 지난 5년 간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아내를 자기 생활의 중심에 놓고 극진히 보살피고 있다.

“혹시나 아이들이 자기 엄마가 저질러 놓은 일을 보기라도 하면 ‘이쁜 엄마가 또 실수를 했네’라며 둘러대며 치웠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이 잘 자라나 한 몫을 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

경기지역에 있는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아들 성준(29)씨는 100만원 남짓한 월급이 담긴 통장을 부친에게 아예 맡겨 버렸다. 용돈을 제외한 모든 돈을 집안을 위해 쓰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딸 상희(27)씨가 버는 돈도 거의 모친의 병원비로 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씨가 사는 서울 용산구 용문동 주민들 사이에서 훌륭한 가족의 귀감이 되고 있을 정도.

“요즘 같은 세태에 아이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없는데 이렇게 잘 해주니 때론 아이들에게 민망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이씨는 회사가 10년 전에 망했지만 아직도 공사판에 직접 나가 철근 시공 일을 한다. 물론 하청업자가 아닌 피고용인의 입장이지만 그래서 모은 돈으로 아내 병구완을 하며 최근에는 동네에 기원을 열어 재기를 꿈꾸고 있다.

매일 저녁부터 아침까지 병원 보조침대에서 자면서 아내를 보살피는 이씨는 낮 동안 일을 하다가도 점심 때면 발길을 병원으로 돌려 아내를 보살핀다.

“이제 관을 떼고 죽을 간신히 먹을 수 있게 됐는데 제가 아니면 아내에게 죽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다시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나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

출처: 세계일보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