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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5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윤혜란씨 선정.200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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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만큼 후배 활동가에게 사랑 전해줄 터"

불법도청과 타락 인디밴드의 몰염치, 그리고 찜통같은 무더위까지 어둡고 우울한 소식만 들리던 와중에 어제 밤 단비같은 소식을 들었다. 먼길가는 길손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주는 산들바람같은 청량한 소식을 들었다.

윤혜란(37·천안시 쌍용동) 전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복지세상) 사무국장이 올해 떠오르는 지도자로 '2005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 막사이사이상이 무슨 상인가? 1957년 항공기 사고로 숨진 막사이사이 전 필리핀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제정,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도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수상자들의 이력도 쟁쟁해 그동안 한국에서는 장준하, 오웅진 신부 등이 수상했다. 지난 2002년에는 북한동포돕기운동에 앞장서온 정토회 법륜스님이 평화 및 국제 이해 부문에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세계적인 상인만큼 윤혜란 국장(작년 12월자로 윤 국장은 복지세상 사무국장직을 후배활동가에게 이임했다. 현재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전 사무국장인 셈이지만 내게는 아직도 '윤혜란 국장'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다) 자신도 막사이사이상 재단으로부터 지난주 수상자 선정 소식을 처음 통보받았을 때 믿기지가 않았다. 믿지 못했던 것은 윤 국장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들 현식(11·초등5학년)군도 재단의 정식발표가 나오기까지는 영 믿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국장님의 막사이사이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들었을 첫 생각은 "받아야 될 사람이 받게 됐구나"라는 반가움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충남 천안이라는, 아시아의 점 하나에도 못 미치는 작은 귀퉁이에서 지역복지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가는 윤 국장을 수상자로 선정한 막사이사이상 재단의 내공(?)에 대한 놀라움과 안도감이었다.

지역복지운동의 새로운 전형 만들어가

내가 윤혜란 국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98년 봄. 대학을 갓 졸업하고 비슷한 무렵 천안에서 새로 창간된 지역주간신문의 신출나기 취재기자로 채용돼 기관·단체를 방문하다가 만나게 됐다.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당시 윤 국장과 나는 비슷한 처지였다. 그때 윤혜란 국장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3년 3월부터 98년 2월까지 줄곧 일해 온 천안YMCA 활동을 정리하고 동역자들과 함께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이하 복지세상)이라는 새로운 시민단체 결성 준비로 분주했다. 같은 해 6월 복지세상은 창립됐고 윤 국장은 사무국장직을 맡았다.

돌이켜보면 복지세상의 창립은 많은 의미를 갖고 있었다. 복지세상 창립 전에도 천안에는 YMCA를 비롯한 몇몇 시민단체들이 존재했지만 지부형태가 기본이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과 무관하게 완전한 독립적인 형태로 더구나 아동과 여성, 장애인 등 각 복지영역을 아우른 운동을 천안에서 시도하기는 복지세상이 처음이었다.

지역사회에서 복지세상의 창립은 절실한 요구였다. IMF경제환란으로 천안에서도 가정이 해체되거나 위기를 겪으며 방치되고 소외받는 아동들이 늘고 있었지만 국가와 자치단체의 힘은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이듬해 천안에서 발생한 '다니엘의 집 사건'은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차별 속에 신음하는 여성장애인의 문제를 지역사회 전면에 내세웠다.

이들 복지현안에 윤 국장을 주축으로 복지세상은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일회적인 활동뿐 아니라 복지세상의 역할을 '사회복지단체인큐베이터'로 설정, 각 영역의 활동이 자생적인 운동성을 갖추도록 도왔다.

실제로 이런 인큐베이터 시스템은 ▲충남장애인부모회(2000년) ▲충남여성장애인연대(2003년) ▲미래를여는아이들(2003년) ▲노인복지건강센터 느티나무(2003년) 창립이라는 커다란 열매를 낳았다. 윤 국장과 복지세상은 새로운 단체의 창립뿐 아니라 기존 사회복지 단체나 기관간의 연계망 구축에도 힘썼다.

특히 지난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복지세상이 걸개못 역할을 하며 결성된 '살고싶은복지도시천안네트워크'는 지역복지 연대운동의 수준과 폭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이런 노력들로 천안은 2003년부터 매년 가을이면 복지분야 시민단체는 물론 기관과 시설 등이 총망라된 자원봉사박람회가 개최되는 등 어느 지역보다도 높은 '복지활력'을 자랑하고 있다.

주부활동가로 어려움 토로, 휴식은 활동가에게 디딤돌

보람이나 영광 뒤에는 그러나 고달픔도 컸다. 지난 2일 오전 복지세상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윤 국장은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된 뒤 몇 번인가 활동을 그만둘까도 고민했다"며 주부활동가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리고 후배 여성활동가들을 위한 배려와 관심도 주문했다.

"늘 아이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다행히 시어머님 등 가족들의 도움이 커 육아부담을 얼마쯤은 덜 수 있었죠. 그런 점에서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주부활동가들이 모두 저처럼 운이 좋을 수는 없겠죠. 주부활동가들의 육아고민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더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지역사회에서 헌신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자간담회에서는 대학졸업 뒤 왜 고향인 천안으로 와 지역운동이라는 고생을 자처했느냐는 물음도 나왔다. 어느 기자는 이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할만큼 전국적, 아니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만큼 '탈천안'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던졌다.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을 아는 윤 국장의 대답은 짧고 명쾌했다.

"저 스스로도 운동을 통해 성장하고 많이 만들어진 만큼 운동에 대한 낯설음은 없었습니다. 천안에서 뜻있는 분들과 YMCA를 만들고 지역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사실 제 삶에서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죠. 천안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지역의 열악함을 체감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몫이라도 청소년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 천안 YMCA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외연은 천안을 벗어나 넓어질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내가 태어나 자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천안을 어떻게 떠날 수 있나요?"

복지세상과 사회복지인큐베이터에 대해서는 자연스런 연결이었다고 말했다. 지역복지운동이 단순히 시혜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직접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도록 지지하고 함께 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 현재진행형이지만 많은 좋은 사람들이 동반했기에 복지세상과 사회복지인큐베이터도 더불어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난 15년의 활동으로 건강이 많이 약해진 윤혜란 국장은 현재 휴식중이다. 무엇을 위한 휴식이 아니라 요가와 등산,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휴식 자체를 즐기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만 현장에서 쏙 빠져나온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휴식이 거북하기도 했지만 이제 점점 휴식의 재미에 빠져가고 있다. 아니 아예 휴식 예찬론자가 되고 있다.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절실합니다. 매일매일 현안 일들에 치이다 보면 내가 왜 운동을 하는지, 초심도 잃어버리고 사람들 관계도 삐걱거리는 경우가 종종 있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풀뿌리운동이 얼마나 힘듭니까? 바닥에서 하는 일이잖아요. 장기적인 비전과 자기 확신이 없다면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휴식이 바로 그런 힘들을 제공하고 인생의 디딤돌이 되는 시간입니다."

휴식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사랑을 받은 만큼 후배 활동가들에게 사랑을 전해 줄 수 있는 일을 구상중이라고만 밝혔다. 윤혜란 국장은 8월말 필리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남편인 이원근(38)씨와 아들 현식군과 참석하며 다음달 2일에는 2시간 동안 현지에서 수상연설도 한다.


지역사회 전체의 '경사'
지인들, "모두의 상이다" 화색만연, 건강 당부도 잊지않아

윤혜란 전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사무국장의 '2005 막사이사이상' 수상 소식을 접한 천안 시민운동 활동가들과 지인들은 "윤 국장 개인뿐만 아니라 모두의 상"이라며 기뻐했다. 또한 앞으로 윤 국장의 활동에 기대도 크지만 우선 건강을 각별히 챙길 것을 공통적으로 주문했다.

윤 국장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이며 천안YMCA 창립에도 큰 도움을 준 이정로 천안복자여고 교사는 "어른으로 잘 성장한 자녀를 보는 부모의 마음 같다"며 "혜란이는 고교때도 문제에 대한 분석과 대책에 뛰어나는 등 논리적인 아이였다"고 말했다.

특히 분석 능력뿐만이 아니라 실행력도 좋았다고 회고했다. 이 교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에도 힘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은 "사회복지에서는 그동안 연대의 틀이 쉽지 않았지만 윤 국장과 복지세상이 연대 틀을 마련하고 약자들의 단체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윤 국장을 '내어놓기와 반응'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꼽았다.

"뜨거운 것을 뜨겁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인데, 윤 국장은 지역사회의 복지현안에 맨먼저 '앗 뜨거워'라고 반응하며 힘들을 모은다. 그리고 책임을 진다. 그것이 윤혜란 국장의 매력이다."

장기수 천안시민사회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윤혜란 국장은 물론 천안지역 시민운동과 지역사회 전체에도 이번 막사이사이상 수상은 큰 경사"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척박한 지역운동의 풍토에서 지역나름의 창의적이고 특색적인 운동으로 성과를 이룬 복지세상은 천안은 물론 전국에서도 모범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김기연 미래를여는아이들 사무국장은 복지세상 창립 당시 간사를 맡아 윤혜란 국장과 오년여 동안 호흡을 맞췄다. 윤 국장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활동한 김 국장은 감개무량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어려운 재정여건에도 모두들 밤늦게까지 일했다. 특히 윤 국장의 열정으로 많은 후배 활동가들이 배출됐다. 막사이사이상 수상은 그것이 헛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사람에 희망을 거는 사람"으로 윤 국장을 소개한 김기연 국장은 "휴식기간에 충분히 건강을 회복, 지역에 더 좋은 역량을 선물해달라"고 말했다.


윤평호 (뮈토스)기자 : 98년부터 천안지역주간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음.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