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장애인당사자주의를 말한다-⑨
일부 단체의 당사자주의 논리는 납득 안돼
당사자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 정리 필요
나는 초등학생 발달장애아 둔 부모이고 비장애인이다. 내 아이는 자기 생각과 의사표현에 어려움이 있고, 어떤 교육과 어떤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느냐에 따라서, 담는 그릇(사회 수용력)이 어떤 모양이냐에 따라 달라질 우리 아이는 ‘인조인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동일성향으로 반복 학습, 훈련이면 교육 가능한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무능한 장애인으로 성장하고 자립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장애인 교육 기본권 보장해 달라고 정신없이 외치며 살고 있지만 내 아이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온전히 자립하기에는 어려운 사람으로 클 것이다. 이 사회의 장애인 사회안전망과 지원구조가 걱정스러워 정신없이 뛰다보니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얼떨결에 장애인 운동 안까지 들어와 섰다.
우리 부모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을까 부모 사후에 무엇을 하고 살까라는 고민과 걱정으로 이부자리를 뒤척이며 세상 눈 감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슬픔 속에 산다. 그렇다고 해서 이 걱정은 부모가 죽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2009년까지 총 158개 생활시설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 자립 지원체계구축을 위한 체계적인 계획 없이 장애인 생활시설만을 늘리겠다는 것은 착복과 착취,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시설 장애인들의 삶에 국가와 정부는 관심도 없다는 뜻이다. 시설 생활인들의 당사자주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가족 구성원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고스란히 개인 가정이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구조가 없으니 시설이라도 만들어 내라는 ‘장애부모’의 심정을 국가와 정부가 정확히 알고 있는지 또한 왜 ‘탈 시설화’해야 하고, 왜 사회통합을 해야 하는지 국가와 정부는 장애인 기본 인권에 대해 고민해봤는지 궁금하다. 가족 중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장애인 본인만이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다. 당사자주의 주장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은 사회적 차별에 칼질을 당할 것이며,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구조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남아 있는 가족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살게 되거나 ‘인권부재’ 중인 생활시설로 끌려가 사육 될 ‘장애인’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모의 걱정은 사회 변혁을 꾀하며 태동하고 있다. 현재 지역 편차는 있지만 전국에 부모들이 조직화되고 확산되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부 단체의 당사자주의 논리는 납득되지 않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나 우려스런 점이 있기도 하다. 장애인 자립체제에 있어 지원 형태와 방법은 장애유형별, 성별, 장애정도에 따라 달리해야 하는 것이지 전체 장애 운동틀에서부터 나눠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 운동하는 제 세력들 간의 ‘아름다운 토론’ 문화가 필요하다.
여러 사안과 법안을 두고 공동투쟁단, 공대위 등 많은 연대체들이 꾸려지고 투쟁하고 있으나 이러한 법과 제도만으로 비장애인 세계와 화해하여 사회통합과 자립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은 더디 발전하는 장애인 문제를 일반 사회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사회 통합을 좀 더 빨리 유도하자는 이유이지 않을까싶다. 아무리 좋은 법률안이더라도 비장애인의 사회적 수용능력이 성숙되지 않는 한 사회통합과 장애인 자립의 실효성은 담보되지 않을 텐데 ‘당사자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장애인 운동성을 방해하고 있다. 정치적, 행정적, 장애인복지 서비스 주체로서의 ‘당사자주의’와 장애인의 삶 전반의 복지 서비스 확대 그리고 장애인 자립을 위한 투쟁의 ‘당사자주의’ 등 여러 해석에 대해 개념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장애 운동을 하는 제 세력들 간의 ‘아름다운 토론’ 문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장애운동도 장·단기적 목표와 계획이 함께 논의되어야 투쟁의 기획력과 현실 대응력이 훨씬 높아질 것이고,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신의와 결의로 결코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신뢰감이 있어야 가열 찬 투쟁으로 진행될 것이다. 각 단체의 역할 분담과 결정에 대한 책임성을 가져야만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에 더 빠르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림하는 주부 소견으로 하나 더 제안하자. 장애운동 단체간 신뢰감이 형성되는 시기가 오면 장애인 예산 운영에 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 보자.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 예산 절대 부족하다. 하지만 각 단체에 지원되는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이벤트성 사업을 정리해 장애인 예산을 모은다면 그것도 무시하지 못할 예산규모일 것이다. 상호 정보 교류를 통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우선순위를 정하고 복지 서비스의 중복과 누락 점검하여 효율적 쓰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좋은 정책제안들도 나올 듯싶다. 이 토론이 가능할까 지금은 의심스럽지만 단체들이 투쟁 대가(전리품)로 받은 소유물이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차별 없는 사회통합은 법과 제도의 변화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와 일반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로 비장애인 사회가 성숙해져야 또한 그 속에서 장애인의 사회적 자립 지원 구조가 마련되어야만 ‘장애인 탈시설화’가 가능하다. 이 목표를 위해 장애인 부모들은 사회변혁을 꿈꾸는 집단의 큰 뜻에 자기인식을 같이하고 행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주의(?) 이념적 사고를 갖는 비장애 동지들과 함께 투쟁할 것이다. 부모는 사랑하는 아이가 인간답게 살아갈 기회와 행복한 삶을 진정 원하기 때문에….
*에이블뉴스는 12월 1일 창간 3주년을 맞아 ‘장애인당사자주의를 말한다’를 주제로 특별 기고를 받았습니다. 이번 글은 장애인교육권연대 김경애(장애인참교육학부모회장) 공동대표님의 글입니다. 장애인 부모가 바라보는 당사자주의에 대해 적어주셨습니다. 이번 글로 에이블뉴스가 받은 원고를 모두 실었습니다. 앞으로 더 기고를 원하시는 분은 에이블뉴스 편집국(전화 02-792-7785, 팩스 02-792-7786)으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기고/김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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