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별법 중단”…청와대 “장차법 입법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정부와 청와대의 모호한 입장이 장애인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 15일과 17일 3일 사이에 정부와 청와대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관련해 상반된 것으로 보이는 입장을 각각 밝혔다.
복지부는 개별 차별금지법 제정을 중단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고, 청와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조만간 입법화될 것이라는 소식을 알렸다. 사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정부와 청와대의 모호한 입장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2003년 초부터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정부와 청와대의 입장 변화를 정리했다.
노 대통령 공약은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
엄밀히 말하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사항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자시절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과 국가차별시정위원회 설치를 약속했다. 당시 사회적차별금지법은 장애인, 학벌, 남녀,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 5가지 영역에 대한 차별 해소를 위한 법률이다.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구체적으로 못 박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계는 줄곧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사회적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도 장애인차별을 제대로 해소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사회적차별금지법과는 별도로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 장애인계가 뭉쳐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라는 역사적인 연대체를 구성, 세부작업에 돌입했다.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언한 것을 보건복지부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3년 4월 4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장애인이 사회 각 분야에서 체감하고 있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장애인계와 보건복지부와는 달리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잠시 사회적차별금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관계 정립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뚜렷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결국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사회적차별금지법 제정은 각각 추진되기 시작했다.
대통령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약속을 안한 것도 아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0월 25일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 “금년 겨울방학부터는 결식아동에 대한 중식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노 대통령이 직접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못 박은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마치고, 공청회까지 개최하는 등 차근차근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곧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난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004년 11월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로 차별시정기능을 일원화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대통령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가 연이어 이러한 소식을 전했다. 이는 곧 현실이 됐다. 2005년 6월 29일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국가인권위원회로 차별시정기능이 일원화됐다.
장애인계는 지난 4년여에 걸친 장애인차별금지법 조문 작업을 마치고 지난 9월 16일 의원 입법발의 형식을 빌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국회로 보냈다. 대표발의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맡았다.
복지부 “개별 차별금지법 중단”
하지만 ‘차별시정기능의 일원화’는 ‘차별금지법의 일원화’로까지 이어졌다. 본지는 지난 10월 29일 자체적으로 입수한 보건복지부 문건을 인용해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지시로 차별시정기구가 국가인권위원회로 일원화됨에 따라 각 부처가 진행하고 있던 개별 차별금지법 제정을 중단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통일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방침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지난 11월 17일 열린 제256회 국회 제10차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다. 복지부 송재성 차관은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이 “정부에서 따로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을 내지 않는 것으로 결정이 났느냐”고 묻자 “차별금지법을 일괄 제정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즈음 청와대측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입장을 밝혀 주목을 끌었다. 대통령부인 권양숙 여사가 지난 11월 15일 ‘2005 전동휠체어 나눔식’에 참석해 “참여정부는 장애인의 인권과 권익 신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됐고,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조만간 입법화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장애인계가 보낸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을 아직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고 있다. 아직 정부등의 의견수렴을 끝내지 않아 검토보고서를 만들 수 없고, 검토보고서 없이는 안건상정이 안된다는 것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측의 설명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중단된 상황이고, 청와대에 따르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조만간 입법화되는 상황이다. 과연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하겠다는 것인가, 말겠다는 것인지 정부와 청와대의 말 한마디에 장애인계는 일희일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 * * "차별금지법관련 정부·청와대 발언록" * * *
장애인차별금지법? 사회적차별금지법?
“장애인, 학벌, 남녀,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 5가지 영역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사회적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 대선공약)
"장애인이 사회 각 분야에서 체감하고 있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2003년 4월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 청와대 업무보고)
“금년 겨울방학부터는 결식아동에 대한 중식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제정하겠다.”(2004년 10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정기국회 시정연설)
“노무현 대통령 지시로 차별시정기구가 국가인권위원회로 일원화됨에 따라 각 부처가 진행하고 있던 개별 차별금지법 제정을 중단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통일된 차별금지법을 제정함.”(2005년 10월 29일 본지가 입수한 보건복지부 내부 문건)
“참여정부는 장애인의 인권과 권익 신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됐고,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조만간 입법화될 것으로 알고 있다.”(2005년 11월 15일 대통령부인 권양숙 여사 ‘2005 전동휠체어 나눔식’)
“차별금지법을 일괄 제정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2005년 11월 17일 보건복지부 송재성 차관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출처 : 에이블뉴스 소장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