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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수능 치는 장애인이 신기한 사회2005-11-25
작성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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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대입 수능 고사장 취재 후기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이하 수능)이 치러진 지난 23일 아침.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경운학교에는 이곳에서 시험을 치르는 학생 수만큼의 취재진이 몰려왔다.

이 곳은 다름 아닌 서울지역 정신지체 및 뇌성마비 장애인 수험생이 시험을 치르는 장소. 모두 27명의 장애인 학생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일간지, 방송국 등에서 몰려든 취재진의 숫자도 그만큼은 되어 보였다.

수능 고사장을 취재하기 위해서는 교육청에서 발급한 출입증이 있어야 한다. 이는 만의 하나 생길 수 있는 부정행위를 막는 한편 수험생에게 부담이 되는 과도한 취재를 제한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 출입증의 뒷면에는 아주 친절하게 취재진이 ‘지켜야 할 사항’이 적혀있다.

“지나친 취재는 수험생의 심적 동요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수험생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여 사진 또는 비디오 촬영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입실을 완료해야 하는 시각은 오전 8시 10분. 늦어도 입실 30분전에 가서 대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찌감치 출발하긴 했으나 기자가 고사장에 도착한 시각은 7시 45분. 시험에 늦은 수험생마냥 헐레벌떡 뛰어 들어갔다. 고사장 1층 로비에는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움켜쥔 취재진이 모여 있었다.

숨을 고르며 카메라를 꺼내는 사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 수험생이 친구의 보조를 받아 고사장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곧바로 대기 중이던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이 두 학생을 향해 일제히 터졌다. 기사작성법 6하 원칙에 따른 질문들도 함께 터져 나왔다. 당황한 두 학생은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험을 치를 교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수험생 입실 후 취재가 허용되는 시간은 8시 10분부터 30분까지. 취재진들은 재빨리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고사장으로 몰려갔다. 한 교실에 20명이 넘는 수험생들이 모여 시험을 보는 비장애인 학생 고사장과는 달리 이곳은 1~5명 정도의 수험생이 한 교실에서 시험을 보도록 돼 있었다.

수험생 중에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 한 명 있었는데 고사장 측에서는 그 학생이 바닥에 앉아 시험을 볼 수 있도록 교실 하나를 비우고 바닥에 매트를 깔아 주는 조치를 취했다. 또 수험생이 OMR 카드를 작성하는 것 등을 보조할 감독관도 배치했다.

‘시험’을 취재해야 한다면 감독관이 시험지를 배포하고 수험생이 긴장한 표정으로 시험지를 받아드는 장면은 훌륭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기자들이 그 중증장애인이 시험지를 받아드는 장면을 찍기 위해 몰려갔다. 매사에 한 발 늦는 것이 특징인 본 기자는 다른 교실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이때도 어김없이, 한발 늦게 그 교실에 도착했다.

뒤늦게 교실에 도착하고 보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수험생의 코앞에서 앉고 구부리고 엎드려 열심히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수험생은 플래시 빛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앉아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해도 모자랄 시험 시작 5분전이었다.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학생한테 연필 좀 쥐어 주세요’, ‘영상 기자들을 위해서 한 번만 더 해주세요’라며 감독관과 수험생에게 연기를 부탁하는 일부 기자들의 모습. 기자들은 수능이 곧 시작하던가 말던가, 수험생이 심적 동요를 일으키거나 말거나, 열심히 찍고 또 찍었다. 다른 고사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취재가 이뤄질까? 궁금했다. 그리고 이내 씁쓸해졌다.

시험이 시작되고 자녀를 시험장으로 들여보낸 학부모들을 만나기 위해 학부모 대기실로 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인터뷰 요청에 고개를 내저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한 학부모는 “우리 애들 시험치는데 왜 이렇게 몰려와서 난리인지 모르겠다. 장애인들도 수능시험 친다니까 신기해서 온 것인가. 평소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가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만 장애인에게 관심을 보이나”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분주한 기자들, 플래시 불빛, 인터뷰 요청…. 시험 전 우리 기자들에게 지나치게 취재당한 수험생들은 과연 시험을 잘 치를 수 있었을까? 본 기자도 가해자가 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출처 :에이블뉴스 김유미기자